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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거움을 주는 글쓰기, 명심하세요! (일산반)    
글쓴이 : 한지황    16-12-19 19:11    조회 : 2,843

시래기 / 윤중호

 

곰삭은 흙벽에 매달려

 

찬 바람에 물기 죄다 지우고

 

배배 말라 가면서

 

그저, 한겨울 따뜻한 죽 한 그릇 될 수 있다면…….

 

누군가에게 시래기 한 그릇의 따뜻함을 베풀어 줄 수 있는

이타적인 삶을 꿈꾸지만

사소한 음식에 담긴 뜻만큼이라도 이웃을 위해 살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지만

그 보잘 것 없는 행동조차도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나를 자책하는 시입니다.

애국심이란 어렸을 때 먹은 음식을 기억하는 것이라는 말처럼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어린 시절의 음식들이 그리워집니다.

 

문학은 언어예술입니다.

예술은 곧 아름다움이지요.

언어를 통하여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이 문학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표현이 아름다워야 합니다.

내용만 전달해서는 문학이라고 할 수 없지요.

즐거움 제공 능력을 문학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즐거움이 없는 글은 아무도 읽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실을 전달하는 신문기사도 재미가 있다면 문체의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기자의 역량이지요.

정보전달을 중점으로 하는 글도 즐거움을 줄 수 있다면

문학성이 잠재해있기 때문인데 동화나 동시가 좋은 예가 됩니다.

 

감자 / 김태웅

 

자주 꽃 핀건 자주 감자

파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보나 마나 하얀 감자

 

이 짧은 시는 시골에서는 상식적인 식물학 정보를 제공하지만

그 자체가 즐거움을 주지는 않습니다.

감자와 감자꽃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어린이가 감득하게 되는 즐거움이

그렇지 않은 어린이보다 훨씬 큰 까닭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을 재확인시켜주기 때문입니다.

이 동시는 부분적 변화와 어울려 있는 같은 말 되풀이

그리고 막힘없는 리듬 때문에 즐거움을 주고 있습니다.

리듬 속에 주술성이 있으니까요.

 

 

산 너머 저쪽 / 이문구

 

 

산 너머 저쪽엔

별똥이 많겠지

밤마다 서너 개씩

떨어졌으니.

 

 

산 너머 저쪽엔

바다가 있겠지

여름내 은하수가

흘러갔으니.

 

아무런 정보도 전달하지 않는 이 시는

어린이의 상상력에 가하는 신선한 충격 때문에

아름다운 시가 되었습니다.

경험적 사실의 허를 찌르는 대담하면서도 그럴 듯한 상상놀이가

신선한 즐거움을 줍니다.

 

 

가을비

 

오다 멀마 가랑비

가을 들판에

아기 염소 젖는

들길 사오리

 

개다 말다 가을비

두메 외딴집

어물 쑨 굴뚝에

연기 한 오리

 

이 동시의 매력은 깔끔한 사생 능력에서 나옵니다.

시골 풍경이 선명하고 또렷하게 경제적으로 처리되어 있어서

마치 한 장의 예술사진을 보는 듯합니다.

인상적인 그림을 보는 것 같은 즐거움도 줍니다.

   

 

민지의 꽃 / 정희성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청옥산 기슭

 

덜렁 집 한 채 짓고 살러 들어간 제자를 찾아갔다

 

거기서 만들고 거기서 키웠다는

 

다섯 살 배기 딸 민지

 

민지가 아침 일찍 눈 비비고 일어나

 

저보다 큰 물뿌리개를 나한테 들리고

 

질경이 나싱개 토끼풀 억새……

 

이런 풀들에게 물을 주며

 

잘 잤니,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게 뭔데 거기다 물을 주니?

 

꽃이야, 하고 민지가 대답했다

 

그건 잡초야, 라고 말하려던 내 입이 다물어졌다

 

내 말은 때가 묻어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키지 못하는데

 

꽃이야, 하는 그 애의 말 한마디가

 

풀잎의 풋풋한 잠을 흔들어 깨우는 것이었다

 

분별력이 없는 아이의 세계에

어른들은 쓸데없는 분별력을 갖고 침범할 때가 많지요.

?아이들이 훨씬 시적인 마음을 기지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어린이의 세계 향유 능력을 처음부터 제한하려드는 것은

행복추구에 대한 중대한 침해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몇 편의 동시를 통해서 어떻게 시와 수필을 쓸 것인지 공부했습니다.

리듬감이나 상상력 그리고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독자에게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주는 글이 완성되겠지요.

글을 쓰는 내내 나도 즐거울 수 있고

아름답다고 감탄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즐거움을 주는 글쓰기, 명심하세요!

 


진미경   16-12-21 21:53
    
반장님 ! 후기 쓰시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다채로운 동시를 읽으며 즐거움을 주는 글쓰기란 이런 것임을 다시 배웁니다.
그래서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듯이 서서히 온기를 느끼게 되네요.

지난 주 한국산문 총회에서 반갑습니다! 로 웃음꽃을 안겨준 우리들이 생각납니다.
등수에 상관없이 행복했으니 그것으로 올 한 해 마무리 잘 한듯하여 뿌듯합니다.
해피 성탄!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시고 담 주 만나요. ^^
한지황   16-12-25 10:26
    
장기자랑 연습하면서 웃음보를 터뜨리던 일이 어느새 추억으로 남아있네요.
반갑습니다는  언제나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을거에요.
함께 무대에 설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미경샘!
성탄절 아침, 얼마 남지 않은 올해를 돌아보며 마음을 가담듬어봅니다.
모두의 마음이 평화롭게 되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