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강의실 >  한국산문마당
  소네치카 (러시아 고전읽기반)    
글쓴이 : 심희경    16-12-24 13:10    조회 : 4,184

소네치카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1943~ )

 

안동진 선생님의 <소네치카>특강이 올해의 종강으로 피날레를 장식했습니다.

안선생님은 인문학의 위기 속에서 일주일에 한번 러시아 문학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는 말씀으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쉽지 않은 책읽기<소네치카>를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말 이었습니다.

소네치카는 책을 읽는 사람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독서광이던 그녀의 삶으로 남편 로베르트와 딸 타냐, 딸의 친구였다가 남편의 애인이 된 야샤가 들어와서 한바탕 삶의 놀이를 하고 떠납니다. 그들이 떠나가고 혼자가 된 늙은 소네치카는 다시 책을 읽는 사람으로 돌아갑니다.

이 간단한 구조의 중편소설은 대하소설처럼 한 사람의 일생을 다 다루고 있습니다. 제목은 독자가 텍스트를 만나는 첫 번째 지점인데 소네치카라는 제목이 주인공의 이름인 것은 작가가 독자에게 인물자체에 주목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소설 속의 주인공은 주인공 같지도 않은 주인공입니다. 그저 그녀의 인생으로 들어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고 받아주는 수동적인 모습뿐입니다.

또한 소네치카는 러시아의 질곡을 거치며 살았지만 그녀의 삶은 특정 역사에 종속되지 않은 삶으로 그려집니다. 이 소설 속에는 혁명, 전쟁, 공포정치, 해빙기등 중요한 사건들의 연도가 나타나있지 않고 역사적 사건들이 거의 배경에 깔리지 않습니다. 작가 울리츠카야는 역사와 유리된 소네치카를 통해 책읽기란 보편적 가치로 읽혀야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역사와 관계없이 단테의 신곡은 단테의 신곡일 뿐이고 고전은 보편타당해야하며 그저 인생이 왔다가 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그것의 역할이라는 것입니다.

울리츠카야와는 반대로 솔제니친은 역사 속에서 인물을 묘사했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중요한 연도가 많이 등장하며 인간은 역사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인식이 강한 작가였습니다. 그에 비하면 울리츠카야는 역사가 인간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는 그냥 흘러가는 것 이라는 것을 소네치카를 통해 알립니다.

너그러운 수용과 포용으로 보듬었던 사랑하는 이들이 떠나고 나서 소네치카가 처음의 책읽기로 돌아가는 것은, 구조상 시작과 끝이 동일한 액자구조의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 액자구조 속의 단순함은 인간의 삶이 복잡한 것 같아도 사실은 단순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안선생님의 책을 읽는다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한분이 살아있다는 증거라는 답변을 했습니다. ‘책읽기는 소네치카에게도 삶의 여정에 있는 우리에게도 귀한 것 같습니다.

 

90년대 소련붕괴와 동시에 등장한 류드밀라 울리츠카야는 1943년 구 소련의 우랄 연방지구에서 태어나 모스크바에서 성장했습니다. 모스크바 국립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유전학 연구소에서 근무 중 지하 출판물을 읽는다는 이유로 해고당합니다. 1992년 발표된 첫 중편 소설 <소네치카>로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고 2001<쿠로츠키의 경우>로 부커상 수상, 2012년 박경리 문학상을 수상합니다.

20세기에 러시아는 세 번에 걸친 작가들의 추방으로 작가 부재, 문학 부재의 시기가 있었습니다. 1917년 레닌에 반대한 귀족 출신의 작가들 16,000명 정도가 러시아를 떠나야했고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별로 교육받지 못한 프롤레타리아 작가들이 채워져서 목소리만 높은 작품을 내었기 때문에 좋은 문학이 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 후 1940년대에 스탈린에 반대한 작가들 추방과 1970년대 브레즈네프 때 솔제니친을 포함한 작가들의 추방으로 러시아의 문학은 암흑기였습니다. 그러다가 1990년대 들어서 해빙기가 도래하자 떠오른 작가들 중 울리츠카야가 있었습니다.

문학의 권력과 권위를 차지하고 있는 남성 중심의 문학토대 속에서도 울리츠카야는 문학사에 영원히 남을 것 이라는 말씀으로 안선생님은 열정적인 강의를 마치셨습니다.

 

저는 이 작품에서 한없는 모성을 보았습니다. 모든 것을 품어주는 모성, 그러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바람난 남편과 그 애인에 대해 전혀 분노하지 않고 그들을 사랑하는 소네치카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분은 남편을 진정으로 너무나 사랑한다면 이해할 수도 있겠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어쨌든 책 읽는 할머니의 모습은 아름다울 것입니다. 그것이 투르게네프의 <어두운 가로수 길> 이거나 <봄의 물결> 이라면 더욱더...

 

수업이 끝난 뒤 겨울비가 촉촉히 내리는 가운데 인사동 헐리우드에서 송년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김정희샘이 가져오신 우크라이나 백포도주를 곁들여 우아한 식사를 하고 났는데 어느 틈에 이영희샘 께서 식사비를 계산하셨습니다. 후식으로 엄선진샘이 사주신 먹태 구이도 일품이었습니다. 식사를 못하고 가신 유병숙샘의 롤케익도 감사합니다.

손주 보느라 바로 가신 이순례샘, 감기 걸려 못 나오신 임명옥샘, 제사라서 못 나오신 정진희 회장님, 딸이 있는 캐나다에 가서 못 나오신 박화영샘, 그리고 우리 러시아 고전읽기반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1년이 후딱 지나갔어요. 내년 15일 개강 날 푸쉬킨의 <스페이드의 여왕>으로 만나요. ^^

 


이영희   16-12-24 17:51
    
댓글 상이라는 ...거한 타이틀에 민망하였습니다.
거기다  그루지아 와인까지 받고...ㅎ
내년엔 더 젊른 분들이 타기룰 ....저는 그만 물러갑니다.

임팩트에  퀄리티 넘치게
강의 해주신 안동진선생님...*소네치카*...오래 기억될것입니다.
소설속에 한사람 한사람이 주인공 소네치카가 읽어내는 소설이었음을....
남편이라는 이름의 소설 ..딸 타냐라는 소설
야샤의 삶....책을 읽듯 관계지어진 사람들을  ..그저 책안의 줄거리처럼  이어나가는
독특한 형식  ..  ..세상에  작가로서  이름을 남기려면 ..*분서*나 *금서* 엔  낄 수 없어도
센세이션을 일으킬만한 ...남다른 형식이나 글감을 찾아야겠다는....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