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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연기가 없다면 집과 나무들과 호수가 얼마나 적막할 것인가 (일산반)    
글쓴이 : 한지황    16-12-26 19:04    조회 : 6,835

연기 / 브레히트

 

호숫가 나무들 사이에 조그만 집 한 채

 

그 지붕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이 연기가 없다면

 

집과 나무들과 호수가

 

얼마나 적막할 것인가.

 

 

인간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사랑과 그리움을 담고 있는

휴머니즘이 가득한 시입니다.

아무리 아르다운 풍경일지라도 사람이 빠져있다면 의미가 없는 것이지요.

사상은 있으되 노골적이 아닌 감추면서 살짝 드러내었기에 좋은 시가 되었습니다.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임 브레히트는

1차 세계대전 중에 위생병으로 육군병원에서 근무하였습니다.

반전적이며 비사회적 경향을 보였던 그는

제대군인의 혁명 체험의 좌절을 묘사한 밤의 북소리

클라이스트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 브레히트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이 시에서 강한 자는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은 자를 말합니다.

결국 자기 밖에 모르는 자가 될 수 있겠지요.

앞서 간 친구들에 대한 우정과 회한으로 죄책감을 느끼는 시인은

철학이나 이념처럼 체계적이고 일관성이 있지는 않지만

일정한 감정에 휩싸여 있는 생각의 조각을 시에 담고 있습니다.

유용성과는 상관없는 토막생각일지언정

무상의 즐거움을 전달할 수 있으면 문학이 됩니다.

 

나비/ 송찬호

 

나비는 순식간에

째크나이프처럼

날개를 접었다 펼쳤다

 

도대체 그에게는 삶에서의 도망이란 없다

다만 꽃에서 꽃으로

유유히 흘러 다닐 뿐인데,

 

수많은 눈이 지켜보는

환한 대낮에

나비는 꽃에서 지갑을 훔쳐내었다

 

사상과 이념은 없지만 표현 때문에 즐거움을 주는 좋은 시입니다.

날아다닌다가 아닌 유유히 흘러 다닐 뿐이라는 표현이

부드러움을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산토끼 똥 / 송찬호


산토끼가 똥을

누고 간 후에

혼자 남은 산토끼 똥은

그 까만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

지금 토끼는

어느 산을 넘고 있을까

역시 사상은 없지만 읽는 이로 하여금 재미를 느끼게 해주므로

좋은 시가 되었습니다.

 

 

추억에서 / 김윤성

   

낮잠에서 깨어보니

빈방엔 어느새 전등불이

켜져 있고,

아무도 보이지 않는데

어딘지 먼곳에서 단란한

웃음소리 들려온다.

 

눈을 비비고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니

집안 식구들은 저만치서

식탁을 둘러앉아 있는데,

그것은 마치도 이승과 저승의

거리만치나 멀다.

 

아무리 소리질러도

누구 한 사람 돌아다보지 않는다.

그들과 나 사이에는 무슨 벽이 가로놓여 있는가.

안타까이 어머니를 부르나

내 목소리는 산울림처럼

헛되이 되돌아올 뿐…….

 

갑자기 두려움과 설움에 젖어

뿌우연 전등불만 지켜보다

울음을 터뜨린다.

어머니, 어머니,

비로소 인생의 설움을 안

울음이 눈물과 더불어 한없이 쏟아진다.

 

유년경험의 완벽한 재생산을 했다는 점에서 이 시는 성공했습니다.

이 시는 교훈도 가르침도 추상적 사고도 아닌

공감의 공유라고 요약할 수 있는 경험의 교환을 전해줍니다.

공감 능력의 향상을 위해서 우리는 인문학을 공부하지요.

엄격한 제약 즉 형식 속에서 언어를 자유자재를 구사하고 표현할 수 있어야

시 안에 담겨 있는 사상과 철학도 의미가 있습니다.

결국 모국어의 탁월한 마술사가 되어야 하겠지요.

 

좋은 글을 많이 접하다 보면 모방 충동이 생깁니다.

식별력도 생겨나지요.

식별력은 글쓰기 능력과 상당히 관련이 있습니다.

좋은 책을 많이 읽어야하겠습니다!

올해의 마지막 수업을 마치며 함께 했던 스승님과 벗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새해에도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요!


진미경   16-12-26 19:57
    
반장님,  후기로 다시 배우니 좋아요.
유용성은 없어도 생각의 조각일지언정 무상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이 문학임을
배웠습니다. 스승님이 외국 시인 중 가장 좋아한다는 브레히트의 두 편의 시도 좋구요.
2016년도 며칠 남지 않았네요. 우울했던 병신년이 저물고 있어요.
다시 추위도 강렬해졌고요. 송구영신 ! 2017년이여. Be happy!
한지황   16-12-26 21:14
    
속사포 처럼 댓글을 쓰셨네요.ㅎ미경샘!
오늘은 잔뜩 흐린 날씨로 자칫 우울해질 뻔 했지만
그래도 벗들과 함께여서 하루를  잘 보냈어요.
새해에는 더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만나요!
생각의 조각들을 차곡차곡  모아서 멋진 글로  엮어보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