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드 여왕>
푸쉬킨 (1799~1837)
‘그녀는 사교계의 모든 쓸데없는 짓거리에 참여했으며 옛날식 화장과 몸치장을 하고는 무도회마다 몸을 질질 끌고나가 무도장에 없어서는 안 될 흉측한 장식물로서 구석에 앉아 있었다.’
이 문장을 읽을 때 어떻게 늙어갈까를 생각했습니다. 동화 같은 분위기의 이 소설은 허황된 꿈을 꾼 사람의 몰락을 보여줌과 동시에 ‘나이 듦’과 ‘이 세상에서의 소멸’에 대한 깊은 사유를 갖게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러시아의 시인으로만 알려진 푸쉬킨이 20여년의 창작기간 동안 시 뿐만이 아니라 소설, 희곡, 평론, 기행문 등 다양한 장르의 문학작품을 집필한 것에 놀라게 됩니다.
푸쉬킨은 1799년 전형적인 귀족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외증조부는 아비시니아의 어린군주로 표트르 대제의 양자 였으며, 푸쉬킨은 미완의 역사소설 <표트르 대제의 흑인>에서 외증조부의 이야기를 썼습니다.
유모 이리나와 외할머니 마리야를 통해 러시아 민담과 설화를 듣고 자라면서 러시아 민중들의 삶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이는 후에 작품 속에서 유럽적인 것과 러시아적인 것의 융합을 통해 세련된 문화적 분위기를 표현할 수 있는 기반을 형성하게 됩니다.
귀족학교에 다닐 때부터 시를 쓰며 당대 쟁쟁한 문인들로 결성된 문학클럽 ‘알자마스’ 회원으로 활동합니다. 졸업 후 외무성에 취직했으나 업무는 등한시하고 진보적인 무리들과 어울리며 농노제도, 전제정치를 공격하는 시를 발표하여 남러시아 예카테리노슬라프로 추방됩니다. 이곳에서 낭만주의가 잘 표현된 작품 <루슬란과 루드밀라>를 출판하고 오데사로 전보된 뒤에는 운문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의 집필을 시작합니다.
데카브리스트난을 계기로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복귀하고 황제가 직접 푸쉬킨의 작품 검열관이 될 것을 공언합니다.
‘예브게니 오네긴‘을 7년 만에 완성하고 ’벨킨 이야기‘ 등 많은 작품을 집필 하던 중 나탈리아 곤차로바와 결혼합니다. 이후 ’스페이드 여왕‘ ’대위의 딸‘ 등을 발표하고 황제의 ’시종보’로 임명됩니다.
1837년 아내 곤차로바와 프랑스인 단테스와의 염문설 때문에 단테스와 결투를 하게되고 치명상을 입어 사망했습니다.
푸쉬킨은 러시아 근대문학의 창시자로 기존의 고전주의, 당시 소개되기 시작한 서구 낭만주의 및 19세기의 주류인 사실주의 요소를 두루 포함한 작품들 속에서 러시아인의 정체성 고민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스페이드 여왕’ 은 9번이나 영화화 되고 차이콮스키의 동명 오페라의 모델이 될 정도로 매력적입니다. 이는 ‘유사낭만주의‘ 작품으로 현실과 환상이 혼재된 환상문학입니다.
강한 욕망을 지닌 주인공 게르만은 일확천금을 꿈꾸며 행운의 여신에 대한 도전을 감행하지만 결국 운명에 의해 좌절됩니다.
책을 읽은 소감을 나눌 때
“잘 늙고 잘 죽고 싶다”
“악인은 파멸한다. 현실에서도 악인은 파멸했으면 좋겠다”
“선한 끝은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위로가 되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뭔가 결정해야하는 순간이 왔을 때 안 하기로 결정한 것이 후회된다. 일단 저질러야한다”
“고전의 힘을 느꼈다”
“욕망이 자기 눈을 가렸다”
“기법과 작법에 놀랐는데 좀 작위적인 면도 보였다”
“독일에 대한 비하가 느껴졌다”
“생물학적인 사랑에 대한 멸시를 보인다”
등등의 이야기들이 오고갔습니다.
백작부인의 늙음과 죽음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이어서인지 우리들의 아픔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오면서 눈가가 붉어지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헛된 욕망을 쫒던 ‘스페이드 여왕‘의 게르만에게는 행운이 오다가 달아나버렸지만 올해 우리 러시아 문학반에는 모두에게 행운과 행복이 찾아오기를 기원합니다.
임명옥샘의 스폰지케익과 이순례샘의 손주 백일떡으로 간식이 풍성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서영샘이 가져오신 과자는 다음주 간식으로 잘 챙겨 놓았습니다.
식사 후의 티타임 때는 친한 사람에게 돈을 꾸어주고 영영 받지 못한 이야기로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떼인 돈을 받아낼 수 있는 방법도 들었구요.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
엄선진샘과 박화영샘의 빈자리가 허전했습니다. 다음 주에는 뵙기를 고대하면서 새해인사 전합니다.
다음 주는 고골의 <초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