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화>
니콜라이 고골 (1809~1852)
인간의 존엄함에 대해 생각이 많은 요즈음, 그 존엄을 침해하는 악마성을 소재로 삼은 이 소설은 고골다운 그로테스크함으로 흥미롭습니다.
니콜라이 고골은 1809년 우크라이나 소로친츠이의 소귀족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부계와 모계의 조부들이 모두 키예프 교회 아카데미아(신학교) 출신으로 신심 깊은 집안에서 기독교 신앙을 주입받습니다.
카자흐 전통과 풍부한 민속문화가 전래되어오던 우크라이나 시골에서 소년기를 보냈으며 학생 때부터 풍자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고 학교 연극에서 노인이나 여자 역을 훌륭히 연기하기도 했습니다.
관리가 될 꿈을 안고 페테르부르크로 갔지만 든든한 배경 없이는 출세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단 관리로 일하기도 했는데 이때의 비참한 체험이 <외투>를 비롯한 몇몇 작품에 반영되었습니다.
배우가 되려고도 했으나 실패하고 자비 출판한 시집도 실패하자 미국으로 건너가려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에 가지는 못하고 독일만 여행하고 돈이 떨어져 다시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와 일자리를 찾아야했습니다.
<<죽은 농노>> <<검찰관>> <<미르고로드>> <<외투>>등을 집필하지만 비평가 벨린스키로부터 심하게 비난 받고 극도로 낙심합니다. 신의 총애를 잃었다고 믿은 그는 기도와 금욕생활을 열심히 했으며 마치 저주받은 영혼처럼 떠돌다가 마트베이 콘스탄티노비치라는 광신적 사제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의 명령에 따라 <<죽은 농노>> 2부를 태워버리고 열흘 뒤 반미치광이 상태에서 죽습니다.
모스크바의 다닐로프 수도원에 묻혔다가 후에 노보데비치 수도원으로 이장됩니다.
외모 콤플렉스가 심했던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고 탁월한 낭송가 였으며 작품속에서 강조하고자하는 면은 집중적으로 부각하여 과장과 그로테스크함을 보여줍니다.
푸쉬킨과 도스토옙스키 사이, 낭만주의와 사실주의 사이에 위치하는 고골은 이 <초상화> 속에서 예술가와 인간의 욕망을 환상적, 종교적 차원에서 그려냅니다.
젊고 가난한 화가 차르트코프는 낡은 초상화 한 점을 사게 되고 그 초상화에 숨겨진 악마적인 충동질에 휘둘리고 파멸합니다.
‘재능이라는 것은 하느님이 주신 최고로 가치 있는 귀한 선물’ ‘재능이 많은 자는 누구보다도 영혼이 깨끗해야한다’ 등의 문장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고골의 예술관과 인생관이 보입니다. ‘초상화‘에서 뿐만 아니라 지금도 재능을 잘못 쓴 사람들의 몰락을 보게 됩니다.
토론 때에 나온 이야기들은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을 던진다”
“자기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재물은 재앙이다”
“장면의 형상화가 잘 되어있다”
“창작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러시아 문학에 대해 놀람의 연속이다”
“괴기 추리소설 같은 느낌을 받았다”
“사람이 살아온 흔적은 얼굴에 반영 된다”
“이 초상화는 자화상 일 수도 있다”
“소소한 행복에 충실해야겠다”
“립 써비스를 잘 하는 사람은 사귀지 말라” 등등 이었습니다.
박서영샘의 과자와 곶감간식 맛있게 먹었습니다. 임명옥샘이 쏘신 티타임의 커피도 감사합니다.
손주 보느라 못 나오신 이순례샘, 어머니 간호 하느라 못 나오신 유병숙샘, 친정 어머니 병문안으로 부산 가신 김정희샘, 우리 세대는 지금 손주 돌보기와 노쇠한 부모님 돌보는 ‘낀세대’ 의 어려움을 겪고 있네요. ^^ 다음 주에는 뵙기를 바랍니다.
엄선진샘과 박화영샘도 보고파요. 편안한 시간 때 다시 만나요.
다음 주는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