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영 소설사의 수필집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 중에서
<송순 필 무렵>을 공부했습니다.
‘봄이 오고 있다.’라는 첫 문장을 읽으며 한파에 움츠렸던 마음이
잠시 따뜻하게 녹아나는 듯했습니다.
봄을 상상하고 그 느낌을 맛볼 수 있는 것이 문학의 힘이지요.
작가는 경멸받을 만한 하찮은 것들이
보이지 않는 뒷전에서 소동을 피운다는 뜻의
‘준동(蠢動)’이라는 말을 음미합니다.
주로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되는 ‘준동’은 그러나
본뜻을 새겨보면 전혀 달라지지요.
준(蠢)자를 해자하면 봄 춘(春)에 벌레 충(?)자 두 개,
그러니까 춘동은 봄이 되어 땅속의 수많은 벌레들이 밖으로 나오려고
굼실거리며 활발하게 움직이는 형용을 말합니다.
벌레들뿐이 아니지요.
4월의 대지, 그 땅거죽 아래에는 엄청난 역사(役事)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묵은 풀 속에서는 새 풀이 파랗게 솟아오르기도 합니다.
봄에는 죽음도 붐비고 삶도 붐빕니다.
신문 부고난이 제일 붐비는 때도 4월입니다.
나뭇가지에는 매서운 겨울바람을 이겨낸 잎눈, 꽃눈들이
여기저기서 눈을 뜨고 있습니다.
갓난아기의 손이 묵처럼 연하고 부드럽지만
주먹 힘은 놀랍도록 센 것처럼 어리고 부드러운 것이
더 강할 수 있음을 말해주지요.
어느 날 칼과 꽃이 싸움을 했습니다.
칼이 단칼에 꽃대를 자르자 더 강한 꽃대가 나왔습니다.
또 칼이 꽃대를 자르고 거듭될수록 꽃대는 강해졌지만
칼은 결국 녹이 슬고 말았지요.
연약했던 꽃이지만 최후의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린 싹이 지표를 뚫고 치솟을 수 있는 것은
줄탁동시의 힘일런지도 모릅니다.
알 속의 병아리가 세상에 나오려고 껍질을 쪼아 깨뜨릴 때,
어미닭이 밖에서 쪼아 도와주는 것처럼,
아기를 세상에 내보내기 위해 어미가 부드럽게 자궁을 밀어내는 것처럼,
땅도 그 어린 것들을 위해 부드럽게 틈을 열어 밀어 올려주는 것은 아닐까 하고
작가는 상상해봅니다.
사랑하는 사이는 본능적으로 줄탁동시가 이루어집니다.
자연은 서로서로 사랑의 밀어를 나누며
세상을 아름답게 꾸며내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가뭄에 시달리던 나무들도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직전에는
나뭇잎에 물방울을 맺는다고 합니다.
5월 초순께 보여주는 소나무의 생식활동만큼 적나라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소나무의 생순을 송순이라고 하는데
가지마다 움튼 송순들이 한 뼘 길이가 될 정도로 자라면 금빛가루를 날립니다.
중력을 거부하고 수직으로 솟는 송순들은 기운 좋은 수컷을 연상시키고
송순들이 미풍에도 간지러워 못 견디겠다는 듯이 몸을 흔들면,
꽃가루는 안개처럼 자욱하게 퍼지면서 암꽃을 찾아갑니다.
소나무 숲에 가면 환희의 합창을 들려오는 듯합니다.
봄에 관한 수필 한 편을 읽으니 봄이 더욱 기다려집니다.
생식의 기쁨이 가득한 소나무 숲으로 달려가서
물웅덩이에 뿌려진 금가루를 실컷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