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할까요?
첫째, 타자의 슬픔과 고통을 공유하고 그들과의 공감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서구를 중심으로 한 산업화와 근대화에 경종을 울린
독일 뮌헨대 울리히 벡 교수의 저서 <<위험사회>를 통해
현대 사회는 곧 위험사회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는 산업화와 근대화를 통한 과학기술의 발전이
현대인들에게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주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위험을 몰고 왔다고 말합니다.
근대화 초기 단계에는 풍요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지만
근대화 후기로 갈수록 위험요소는 더욱 커졌습니다.
각자도생의 사회이자 촛불처럼 언제 꺼질지 알 수 없는 현대 생활에서
우리가 의지할 곳은 공감력을 확장시켜주는 인문학일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경제적 부가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인문학은 정신을 중시하는 학문이지만 돈과 상관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오래 전 우리나라 흥행에서 성공했던 <<사랑과 영혼>>을 통해
우리나라가 헐리우드에 준 돈이
현대 자동차의 일 년 판매 수입금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영화도 인문학에 속한다는 것을 인정하면
인문학이 경제에도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해리포터>>를 오천 만원에 수입하여
오백 억을 벌었던 우리나라 출판사의 일화도 이를 증명합니다.
우리나라 인문학이 해외로 진출하여 소득을 증대시키는 역할을 해야 할 때이지요.
셋째, 인문학은 창조와도 밀접합니다.
우리 대중문화는 한류를 통해 외국으로 나가고 있지만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인문학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시 매니아였습니다.
아이디어가 고갈될 때마다 시를 읽었다는 그는
창조경제를 잘 이끌었던 경영인이었습니다.
창조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잡스는 시의 비유 원리를 잘 이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시를 읽고 디자인하는 것과
시를 읽지 않고 디자인하는 것의 차이는 클 수밖에 없겠지요.
체육과 문학, 사진과 시 등등 장르의 경계를 붕괴하고
이질적 학문을 넘나드는 융합 곧 상호 텍스트가 요구되는 사회입니다.
문학을 하는 사람은 세계를 이해하는 통찰력이 뛰어납니다.
일반인들은 일반화된 의식, 통념 즉 기계적 의식으로 보는 반면
문학을 하다보면 다른 각도에서 보고, 깊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총체적으로 사물을 보고 새롭게 세상을 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인문학을 가까이 해야 하겠습니다.
특강으로 진행된 오늘 수업엔 이화연 님이 처음 오셨다가
봄학기 등록을 하셨습니다.
그동안 두 학기를 함께 공부했던 윤희영 님이
중국에서 돌아온 손주들을 돌봐야하는 이유로 그만두시는데
그 빈자리를 채워줄 새 화원님이 오셨으니 더 반가운 마음입니다.
유희영 님도 다시 여유가 생기면 오시리라 믿어요.
여기저기 다친 분들이 많았던 겨울학기가 오늘로 끝을 맺었습니다.
새로 시작되는 봄학기에는 일산반 강의실에도
건강한 웃음꽃들이 만발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