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남자 오네긴...
지난주에 이어 ‘예브게니 오네긴’의 5장에서 8장까지를 마저 공부했습니다.
5장은 따찌야나의 무서운 꿈과 그녀의 영명축일 축연에 대한 풍경, 6장은 오네긴과 렌스끼의 결투와 렌스끼의 죽음, 7장은 오네긴이 떠난 후 따찌야나의 생활과 그 후 어느 공작과의 결혼, 8장은 모스크바에서 두 사람의 재회와 오네긴의 다찌야나에 대한 열정과 실연에 관한 내용입니다.
따찌야나의 사랑을 거절했던 오네긴은 결투로 친구 렌스끼를 죽이고 오랜 세월을 떠돌다가 어느 날 한 공작부인을 보게 됩니다. 우아하고 품위 있는 그 여인은 바로 따찌야나였습니다. 이제는 오네긴이 따찌야나에 대한 사랑의 열병을 앓지만 그녀는 그의 사랑을 거절합니다.
따찌야나는 오네긴에 대해 ‘슬프고도 위험한 괴짜, 지옥 아니면 천국의 피조물, 천사이기도하고 건방진 악마이기도 한 사람’ 이라고 인식하게 됩니다. 이 인식에는 사랑의 아픔도 포함하고 있겠지요.
그녀는 사랑하는 이가 떠난 빈집에 찾아가 그의 서재에서 그가 남기고간 책을 읽습니다. 손톱자국이 남아있는 페이지와 여백에 연필로 끼적여 놓은 것에서 ‘탄식의 대상으로 정해준 사내’를 느낍니다.
슬기로운 그녀는 지나간 사랑을 잘 보냈고 새로운 운명을 잘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옛 사랑을 거절했습니다. 청춘에 대한 책임, 사랑에 대한 책임을 다한 그녀는 푸쉬킨이 이상적으로 생각한 러시아의 여인상입니다.
작품 전체가 아름다운 문장들로 가득하지만 렌스끼의 죽음에 대한 묘사는 절묘합니다. 슬픔, 고통에도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이 보입니다. 푸쉬킨은 렌스끼에 대해 애도기간을 가졌습니다. 통곡대신 관조하는 시선으로 처리했습니다. 독자를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괴팅겐 정신으로 가득 찬 칸트의 숭배자’인 젊은 미남자 시인의 죽음이 칼로 베인 듯 아팠습니다.
희망과 사랑이 뛰고 생명이 솟구치던 심장에서 더운 피가 흘러나오는 죽음의 장면은, 푸쉬킨이 렌스끼의 죽음을 통해 본인의 낭만주의적 작품 활동이 끝났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다 이 렌스끼의 죽음은 푸쉬킨의 죽음과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연적에게 결투를 신청하고 죽음을 당하는 렌스끼와 푸쉬킨, 직관이 뛰어난 작가는 자신이 창작한 인물 렌스끼의 죽음을 통해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언한 듯이 보입니다.
‘청년시대에 청년다웠던 자는 행복하다. 청춘이 우리에게 아무 목적 없이 주어졌다고 생각하면 슬픈 일이다’ 등등의 밑줄을 그어가며 읽은 문장들은 우리의 청년의 때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읽은 소감은
“잘못된 길을 되돌리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고전은 나이 들어서 읽는 것이 더 좋은 것 같다”
“청년시절에 스스로 청년임을 인식하는 것은 쉽지 않다”
“‘폭풍의 언덕’에서 캐서린의 남편처럼 책으로 도망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푸쉬킨 때문에 나의 인생이 풍요로워졌다”
“실연당한 사람에게 위로가 될 것이다”
“뛰어난 사람이 사랑 때문에 요절한 것이 허망하다”
“생각지도 않은 문장들이 쏟아진다. 새파랗게 밑줄을 그었다”
“젊은 시절의 오만,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랑을 만났다”
“오네긴처럼 사랑이 왔지만 거절한 적이 있었나. 따찌야나처럼 사랑에게 다가간 적이 있었나 생각해 보았다”
“미완성이 차곡차곡 쌓여가면서 각자의 길, 운명의 길을 간다”
“푸쉬킨의 작품을 읽으며 품격있는 아름다움을 느낀다”
푸쉬킨에 대해 고리끼는 “모든 시작의 시작이다”라고 했고, 현대의 러시아 작가들은 “푸쉬킨은 우리들의 모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러시아를 넘어서 이곳의 우리에게 까지 그의 작품들이 우리를 흔들어 놓고 있습니다.
이것이 고전의 힘이며 고전을 읽는 이유 아닐까요? 내 뒤를 돌아보고 미래를 그려보는 현재의 삶에 생각할 여지를 주는 그것.
나쁜 남자 오네긴 때문에 생긴 모든 일과 러시아의 풍경이 책속에서 수런거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