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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로 본 '오네긴' (러시아 고전읽기반)    
글쓴이 : 심희경    17-04-01 04:23    조회 : 2,945

영화로 본 오네긴

 

사랑을 맹세했으니 서약을 지켜야 해요

옛사랑 오네긴에게 공작부인이 된 따찌야나는 이렇게 말하며 그의 구애를 거절합니다. 뼛속까지 한기가 느껴질 것 같은 넓고 하얀 방에서 두 사람은 엇나간 사랑의 계절을 공허하게 보여줍니다. 하얀 바닥, 하얀 벽, 하얀 커텐, 하얀 드레스의 따찌야나... , 오네긴의 검은 장갑이 바닥에 떨어지고 힘없이 검은 의자에 기댄 검은 옷의 오네긴 주변으로 끝이 보이지 않을 절망이 휘돕니다.

책을 읽으며 상상했던 장면들을 화면으로 보면서, 감독과 배우들이 원작의 분위기를 제대로 살리려 애썼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오네긴 역의 영국배우 랄프 파인즈는 비열함이 담긴 고상한 얼굴표정으로 복잡하고 미묘한 사랑과 슬픔을 연기합니다. 나쁜 남자의 전형이지만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마력을 풍깁니다. 조금 아쉬운 것은 원작의 오네긴 보다 나이가 들었다는 것, 그러나 갓 스물의 새파랗게 젊은 배우가 이 역할을 하기에는 무리일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랄프 파인즈의 연기는 연륜이 주는 선물이 보입니다.

따찌야나 역의 리브 테일러는 고전미를 잘 표현하는 배우로 어딘가 모르게 동양적인 신비로운 매력이 있습니다.

감독인 마샤 파인즈는 랄프 파인즈의 여동생입니다. 사진작가인 그녀는 이 작품이 첫 영화데뷔작입니다. 사진작가여서 그런지 장면 모두가 명품입니다.

거실의 피아노 앞에 앉아 기타 치며 노래하는 렌스끼와 올가는 사랑이 뚝뚝 묻어나고, 낡고 퇴락했지만 대저택의 서재는 오래된 수도원의 도서관처럼 기품이 있어 보입니다. 그곳에서 신 엘로이즈를 빌려 온 따찌야나가 호수의 작은 보트에 누워 책을 읽다 잠드는 풍경과, 결투 장면의 안개 낀 호수는 영상이 주는 아름다움을 맘껏 누리게 했습니다.

딱 내 취향의 이 영화가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던 감정을 되살린 것은 영화를 보며 마신 샴페인 때문일까요?

사랑의 이름으로 경계선을 넘으려던 오네긴과, 넘지 말아야할 선을 지켜낸 따찌야나의 고뇌가 차갑고 슬프고 아름답게 다가왔습니다.

 

오랜만에 오신 엄선진샘이 헐리우드에서 사온 피자와 박서영샘의 과자가 샴페인의 안주가 되었습니다. 덕분에 영화 보는 내내 입까지 즐거웠습니다.

분당반의 공해진샘이 수업 참관을 오셔서 함께 영화를 보았습니다. 언제라도 오시면 환영입니다.

이순례샘, 수업 후에 점심식사도 못하고 가셨습니다. 손주 돌보는 바쁜 할머니가 되셨어요.

김정희샘을 기다렸는데 이번에도 못 오셨네요. 이사하고 집수리로 바쁘다고 들었는데 다음 주는 뵐 수 있겠죠?

김숙자샘과 박윤정샘은 군대 간 아들 면회가서 기쁨의 모자상봉을 하셨겠네요.

 

다음 주 4월 첫 주는 새 학기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아껴두고 기다리던 도스토옢스키의 <<죄와 벌>>로 시작됩니다. 5월에 가게 될 러시아 문학기행을 앞두고 읽는 책입니다. 우리가 걷게 될 거리를 책 속에서 먼저 만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