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 2부 17장 & 18장
10월 30일 가을학기 여섯 번째 시간 『차라투스트라』 17장 <시인들에 대하여>와 18장 <크나큰 사건들에 대하여> 배웠습니다.
<시인들에 대하여> 첫 대목은 1부 4장 <신체를 경멸하는 자에 대하여>에서 언급한 신체와 정신의 특징을 다시 상기시켜줍니다. 니체에게 정신이란 신체에 깃든 작은 이성에 지나지 않으며 신체야말로 하나의 의미를 지닌 다양성으로 커다란 이성입니다.
니체는 영원불멸을 담아 정신적인 면을 호소하는 시인을 비판합니다. 예를 들면 그의 『즐거운 학문』 부록 (책세상 399쪽)에 “괴테에게”란 시가 실려 있습니다. 이 시는 괴테 『파우스트』 작품 대미를 장식하는 ‘신비의 합창’ 첫 소절 “모든 무상(無常)한 것은 비유에 지나지 않는 것”에 대한 패러디로 “불멸이란 단지 그대의 비유!”로 시작합니다. 괴테가 영원한 여성성과 불멸을 노래했다면 니체는 생성 소멸 변화하는 인간적인 삶에 더 시선을 돌린 듯합니다.
니체 자신도 음악에 조예가 깊으며 시를 쓰는 철학자였지요. 니체가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시인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닙니다. “하나같이 피상적이요 얕은 바다들이니”. “저들의 감정은 바다 밑바닥까지 잠겨본 일이 없다.” “관능적 쾌락과 권태, 이것들이 저들이 생각해낸 최상의 것들이다.”(219쪽)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저서 『국가』 10권 (595a~608b)에서도 시인을 비판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플라톤은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부 (신들끼리 다툼이나 부정한 행위)를 인용하며 어린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시가 인간의 감정을 자극해 도덕적으로 올바른 품성을 기르는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지요. 플라톤이 내세우는 참된 진리의 세계, 이데아를 관조하기 위해서는 이성적 사유와 철학적 성찰이 우선입니다. 반면 시를 짓거나 다른 예술적 행위들은 지성적 활동과 거리가 멀다고 판단하여 시인을 추방해야 한다고까지 했지요. 꽃피웠던 시인들의 무대가 사라지고 철학이 전면으로 등장하는 때와 맞물려 나타난 이권 다툼 같은 느낌마저 듭니다.
플라톤에 비하면 니체는 칠흑 같은 어두운 심연을 뚫고 산 정상에 당당하게 우뚝 서는 자를 동경했지요. 우리 내면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이 시로 탄생하길 니체는 갈망하지 않았을까요.
18장 <크나큰 사건들에 대하여>에서 니체는 첫머리에서 “때가 무르익었다! 때가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었다!”(221쪽)라고 말하는데 끝맺을 때 역시 똑같이 반복합니다.(226쪽) 여기서 니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무엇일까요. 지금껏 차라투스트라를 통해 기존 가치와 전통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비판하는 니체를 계속 만나왔습니다. 이젠 니체가 펼치는 새로운 세계가 도래하며 거기엔 힘 의지를 지닌 위버멘쉬가 등장하겠지요.
18장에서 차라투스트라는 불개와 대화를 나눕니다. 두 유형으로 불개가 나오는데요,
첫 번째 유형은 그리스 신화에서 하데스 입구를 지키는 케르베로스를 패러디한 불개입니다. 이 불개를 니체는 ‘대지의 복화술사’라고 칭합니다.(223쪽) 지옥의 소란스런 분위기가 떠오르며 천박하고 허풍쟁이로 그리고 있지요. 한 발 더 나아가 니체는 국가와 교회를 위선에 가득 찬 불개와 같다고 비판합니다.
두 번째 유형으로 황금으로 되어 있는 대지의 심장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말을 하는 불개가 나옵니다. (225쪽) 이 불개는 대지의 심장에서 황금과 웃음을 끄집어냅니다. 니체 철학에서 대지와 태양, 황금, 그림자가 가장 짧은 정오는 모두 끊임없이 샘솟는 생명력과 강인한 힘 의지를 나타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