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제임스 조이스 문학기행
새해 1월도 어느덧 하순입니다.
새해 계획이나 결심이 벌써 흐물흐물해지지 않았느냐?는
교수님의 일갈이 뜨끔한 오늘, 그래도 우리는 매서운 한파를 밖에 두고
화면 안에 옹기종기 따뜩하게 모여 앉았습니다.
오랜만에 제임스 조이스를 만나보는 재미는 역시 꿀잼, 함께 떠나볼까요?
제임스 조이스는 1882년 더블린에서 10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성촉일에 태어난 것에 긍지를 가져 <유리시즈>, <피네간의 경야> 출간일을 생일날로 잡았다.
*聖燭日: Candlemas, Groundhog day. 성모 마리아의 순결 확인과 기림 촛불행진. 프랑스는 Chandleur로 crêpe 먹는 날.
아버지 존 스태니스라우스 조이스(John Stanislaus Joyce)는 정치에 관심이 높았으나 직업적으로 거의 사회 밑바닥을 전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머니 매리 제인 머래이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10명의 자녀들을 가톨릭 신앙에 따라 키우고자 노력하였다.
아일랜드는 1845-52년의 대기근으로 민족의식이 심화되어 격렬한 무장투쟁이 일어났으나 잔혹하게 진압당했고, 그 여파로 1912년부터 간헐적인 독립전쟁이 지속되다가 1916년 4월 부활절 봉기로 아일랜드 전32개 주 중 26개주가 독립국(1922년)을 이루게 되었고, 북아일랜드는 영국령이 되었다.
*9살: 아버지가 실직하여 퇴교하였는데 토지 개혁을 주창한 당대 최고의 정치가 파넬(1846-1891)의 죽음으로 아일랜드 독립 운동에 큰 차질을 빚을 정도로 일대 충격을 주었다.소년 조이스는 이 충격에서 시 <힐리여 너마저(Et Tu Healy)> 발표. 조이스의 이 시는 3행만 남아있다.
*11살: 더블린으로 이사, 이때 체험은 작품 <더블린 사람들>의 <애러비(Araby)>의 기본이 되었다.
*15살에 전 아일랜드 학생 백일장 학년 최고상을 받았다.
*18세: 대학 내 문학 및 역사학회에서 <연극과 인생> 발표, 예술과 도덕의 분리주장. 입센에 호의적인 글 발표. 입센에 호의적 글 발표, 보내서 감사 편지 받받았으며 단테, 입센, 플로베르 등 좋아했다.
*20살: 현대 언어학 학위 취득, 의학 전공 위해 파리로 떠났으나 어렵고 흥미 없어 포기했다. 이듬 해(1903)에 어머니 위독으로 귀국. 어머니 사후 음주, 가무, 가르치기 등 무질서, 테너 노래로 상(Feis Ceoil, Festival of Music)을 받기도 했다.
*1904(22세), 달키(Dalkey)소재 클리프튼 초등교 교사.
6월10일, Nora Barnacle(1884-1951) 만남. 제빵사와 재봉사의 딸. 초등 정도 학력, 일생을 함께 함. 1931년 정식 결혼. 그 전에 자녀(아들 Giorgio, 딸 Lucia) 가짐.
*1911(29), 소설 다 출판 거절당하자 초고 불태우려는데 여동생이 만류.
*1912(30), 더블린 마지막 방문. 출판문제 실패.
*1914(32), 단편집 <더블린 사람들(Dubliners)> 출간. 아일랜드 전통 비판, 당대에서 새 길 모색하는 친영파로 비난 받다. <선거 사무실의 아이비 기념일>은 민족당 지도자 파넬 문제 거론. 개신교도에 지주 집안 출신이면서도 독립에 투신, 보수파들까지도 지지 얻다. 부관의 부인과 불륜, 매도당하자 온 나라가 마비당한 느낌으로 독립운동의 죽음 분위기를 묘파한 작품.
(2부) 창작 합평
문영애/이옥희/정아/김숙/민경숙/신현순(존칭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