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파토스
1월 29일 지난 주 니체의 주인 도덕, 노예도덕과 관련한 심화수업이 있었습니다.
니체는 『도덕의 계보』(1887년)에서 우리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기존 도덕관념을 돌아보고 새로운 능동적인 도덕관념을 제시합니다.
니체 스스로 『도덕의 계보』 제목 아래 ‘하나의 논박서’라고 썼는데 정교하며 번뜩이는 글로 넘쳐납니다. 제1논문 선과 악, 좋음과 나쁨/ 제 2논문 죄, 양심의 가책/ 제 3논문 금욕주의적 이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니체는 『도덕의 계보』 서문 첫 문장을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로 시작합니다. ‘너 자신을 알라’ (Gnothi Seauton)로 익히 알려진 소크라테스가 떠오릅니다. 사실 이 말은 소크라테스가 하지 않았으며 고대 그리스 아폴론 신전에 ‘무엇이든 지나치지 않게’ (Meden Agan)와 함께 새겨진 그리스의 유명한 경구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늘 자기 자신은 아무 것도 모른다고 고백하며 아테네 젊은이들과 대화합니다. 소크라테스에게 철학하는 삶이란 계속된 문답으로 자신의 무지를 깨우치며 검토하는 것입니다. 『도덕의 계보』 첫 문장에서 자신의 무지를 고백하며 성찰하는 삶의 지혜를 말하는 소크라테스가 연상된 건 우연일까요.
제1논문에서 니체는 좋음(gut)과 나쁨(schlecht), 선(gut)과 악(böse)을 구분합니다. 주인 의식을 지닌 자는 좋음과 나쁨을 보색 관계 개념으로 받아들이며 능동적인 행위를 통하여 고양된 삶을 추구합니다. 좀 더 높은 지배층이 아랫사람에게 갖는 감정을 니체는 ‘거리의 파토스’(pathos der distanz)라고 부릅니다. (책세상 『도덕의 계보』 354쪽) 파토스는 ‘겪다’(파테이, pathei)라는 그리스어 동사에서 나왔는데 강자가 약자에게 취할 수 있는 감정의 거리입니다. 자칫 권력층이 무력한 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지만 니체는 그만큼 힘 의지를 갖춘 자가 자기 극복을 통해 스스로 삶의 가치를 창조하는데 방점을 둡니다. 니체의 ‘거리의 파토스’를 접하며 또 다르게 해석해봅니다. 자신을 들여다보며 내가 알고 있는 나와 타자가 바라보는 나 사이에도 거리가 있지 않을까요. 자신을 좀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나의 한계가 드러나겠지요. 나의 무지를 깨달아 가는 과정이 배움의 여정 아닐까요.
주인 도덕을 지닌 자에게 거리의 파토스를 발견할 수 있다면 노예 도덕을 지닌 자에겐 원한과 복수의 감정이 보입니다. 악한(böse) 사람을 먼저 상정해놓고 자신은 선하다(gut)고 생각하는 그들을 니체는 무리 본능을 지닌 자로 양에 비유합니다. 그와 반대로 주인 도덕을 지닌 자는 하늘을 나는 맹금류, 독수리에 연결하지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동물들이 많이 나오는데 동물마다 제각기 상징하는 바가 있습니다. 머리말 10에 등장하는 독수리와 뱀은 차라투스트라의 동굴에 함께 살고 있는 벗이지요. 독수리는 하늘 높이 날아가며 긍지를 지닌 동물인 반면 뱀은 대지를 포월하는 지혜의 상징입니다. 독수리의 목을 감고 있는 뱀의 이미지는 서로 상반된 것이 함께 손잡고 나아가는 모습입니다. 둥글게 말아 올린 뱀의 이미지는 영원회귀를 뜻하기도 하지요. 2부 ‘타란툴라들에 대하여’에 나오는 타란툴라는 원한의 감정으로 무장한 독거미인데 『도덕의 계보』에서 양으로 비유된 노예 도덕을 지닌 자와 연결됩니다. 이들은 상대를 부정함으로써 자신을 긍정합니다. 반면 주인도덕을 지닌 자는 자신과 상대방 모두 긍정합니다.
우리 내면에도 주인 도덕의 독수리와 노예 도덕의 양이 함께 있지 않을까요. 니체가 말하는 낙타 사자 아이의 세 변화가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것처럼. 머리말 4에 ‘사람은 짐승과 위버멘쉬 사이를 잇는 밧줄, 심연 위에 걸쳐 있는 하나의 밧줄이다“가 적혀 있습니다. 고정된 나는 없습니다. 끊임없이 변하는 나를 가만히 응시합니다. 나를 드러내는 나의 아이덴티티는 어디 있을까요. 지금 여기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나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순간입니다. 독수리로 살고 싶어도 양으로 살아가는 내 모습에 실망할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순간순간 스치는 니체의 강렬한 메시지에 다시 마음 다잡고 헤쳐 나가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