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강의실 >  한국산문마당
  <영혼은 바람이 되고 숨결이 되어> 루쉰 <약> (3월 25일 용산반)    
글쓴이 : 차미영    24-03-27 16:33    조회 : 2,959

영혼은 바람이 되고 숨결이 되어

루쉰

 

325일 루쉰의 을 읽고 배웠습니다. 그동안 고향』 『광인일기』 『쿵이지작품에서 보여주듯 루쉰은 잘못된 관행과 악습을 타파하고 무지한 중국인들을 깨우치려 합니다. 1907년 혁명가로 활동하다 참수 당한 치우진이란 여성을 모델로 한 작품입니다. 소설에서는 샤위라는 남성 혁명가로 바뀌어 나옵니다. 4장으로 이루어진 짧은 글이지만 루쉰의 메시지가 간결하게 함축적으로 잘 전해옵니다. 특히 마지막 4장은 쉽게 책장을 덮기 어려울 만큼 여운이 깊게 남습니다.

1장 첫 장면은 폐병에 걸린 아들 샤오솬에게 먹일 인혈만두를 구하러 새벽길을 나서는 샤오솬 아버지 화라오솬이 등장합니다. 인혈만두란 사형수의 피를 넣어 만든 만두로 청나라 말기 약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중국인들에게 공유된 미신의 한 단면 같습니다. 과학이 발달한 현대사회에선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미신에 사로잡히는 행동은 요즘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프레이저는 황금가지3장에서 주술에 관하여 말합니다. 멀리 떨어진 사람이나 사물 상호간에 영향을 미친다는 믿음은 까마득한 원시사회에서부터 내려온 것입니다. 서로 닮은 사물은 동일하다는 유사 법칙에 따른 동종주술과 한 번 접촉한 사물은 항상 접촉하고 있다는 접촉 법칙에 따른 감염주술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사형수의 피가 섞인 만두를 먹는 행위는 접촉 법칙에 따른 감염주술에 해당될 듯합니다. 이렇듯 주술적 행동이 행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광막한 우주 자연에 비하면 무력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 살아가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주술에 기대면 나약한 인간 내면에 깃든 불안이 줄어드는 반면 자신이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위로마저 받곤 합니다. 52(그린비) “어느 날 갑자기 소년이 되어 생명을 부여하는 신통한 재능을 얻기라도 한 것처럼 내딛는 발길이 유난히 사뿐하고 성큼했다.”에 눈길이 갑니다. 이렇듯 주술은 과학 문명이 우릴 지배하더라도 마음 깊이 더 내밀한 곳에 여전히 뿌리 내리고 있습니다. 점집을 찾아가는 이유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혁명가 샤위가 참수당하는 현장에서 돈을 주고 구한 샤위의 피가 섞인 만두를 아들에게 먹이지만 아들은 결국 죽음을 면치 못합니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혁명에 참가한 샤위가 왜 처형되는지 몰려든 구경꾼들은 관심도 없습니다. 다만 그가 입고 있던 옷이나 물건 등에만 눈독을 들입니다. 혁명도 실패로 끝나고 우매한 인민들을 계몽하는 것 또한 멀어 보입니다. 구경꾼들이 나누는 대화에서 그들이 얼마나 구시대 악습에 젖어 퇴폐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수염이 희끗한 자, 험상궂게 생긴 캉 아저씨도 등장하지만 곱사등이 남자도 있습니다. 루쉰이 곱사등이로 묘사한 이유가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발터벤야민의 산문집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마지막 글 제목이 <꼽추 난장이>입니다. 꼽추는 기형으로 왜곡된 이미지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벤야민은 어린 시절 자신 곁에 항상 꼽추난장이가 있다고 여깁니다. 어쩌면 우리 마음 깊이 숨어있는 또 다른 자아 같습니다. 루쉰은 곱사등이로 그리면서 열렬히 바란 혁명이 좌절되고 일그러진 암울한 상황을 보여주려고 한 건 아닐까요.

 

마지막 4장에선 샤위와 샤오샨의 어머니 두 사람이 아들 무덤이 있는 묘지에서 조우합니다. 오솔길이 경계선이 된 듯 샤위의 무덤은 왼쪽, 샤오샨의 무덤은 오른쪽으로 놓여 있습니다. 아들 잃은 슬픔으로 넋이 나간 듯 보이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기운을 줍니다. 샤위 무덤을 에워싸고 있는 붉고 흰 꽃들과 그 무덤 위를 솟구쳐 나는 까마귀는 혁명가로 목숨 바친 샤위의 영혼 같습니다. 한 줌 흙으로 돌아갔지만 그의 숭고한 영혼은 여전히 살아 숨쉬길 루쉰은 바라겠지요. 마지막 장면은 자식 잃은 부모 심정이 절절하게 전해져 이전 읽은 작품보다 더 가슴 뭉클하게 와 닿습니다.      


신재우   24-03-28 09:40
    
1.루쉰 『약』은 치우진등이 일으킨 혁명이 실패한 원인은 우매한 중국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혁명가와 그
  가족에게 바치는 추모 이야기일 것이다.
2.엔도 슈사쿠 『사해 부근에서』중<12.백인대장>에서는 엔도는 예수의 부활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죽음을 대하는 예수'를 처절하게 기록한다.
3.박미경 선생님<구경꾼>과 차미영 선생님<두 거장을 기리며>두 편 합평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