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수업에는 여행을 떠나신 분도 계시고 연말도 되고 해서 개인 사정으로 못 오신 분들이 많았는데요. 강추위에 눈도 내린다는 날, 소설에 대한 열의를 가지고 출석해주신 문우님들께 감사와 박수를 보냅니다.
※ 소설 인물의 형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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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기 그 얼굴이 있다. 내게는 가장 중요한 경험이지만 자꾸만 잊어버리는 얼굴이다. 나는 기차로 도착하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오후가 끝나가고 있었고 기차는 늦어지고 있다. 택시 운전사는 차에서 내린다. 상당히 젊어 보인다. 하지만 특이한 점이라고는 없다. 그는 못생겼다. 춤을 추러간 적이 있었다면-그럴 일은 없었겠지만-데이트 상대를 찾느라 꽤 힘들었을 것이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다시 만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이 낯선 사람에게 나는 예전의 군대 수송 열차처럼 부피 크고 많은 짐으로 근심을 지운다. 그는 아내, 딸, 어머니, 술고래 아버지와 살고 있을까? 혼자 살까? 은행에 잔고는 적을까? 물건은 클까? 속옷은 깨끗할까? 주사위는 낮게 던질까? 치과 치료비는 갚았을까? -아니면 치과에 가본 적이나 있을까? 우리는 환한 낮에 멀리서 쓸데없이 불을 밝히며 들어오는 기차의 불빛을 바라본다. 이때, 그는 주머니에서 빗을 꺼내 머리를 빗는다. ...이 몸짓에서 내가 진정으로 보는 것은 그 남자로, 그의 실체, 그의 자주성이다. 그의 못생긴 얼굴에서 평온함을 반영하지 않는 속도의 아름다움을 본다. 여기, 이 머리를 빗는 이 몸짓 안에는 태연자약함이라는 경이가 있다. 그리고 그로 인한 전율은 상호적인 것으로, 내 보기엔 바로 그것이 삶을 이해하는 방법인 것 같다. (존 치버의 일기) |
: 내가 쓰는 소설의 인물이 작가인 내가 생각할 때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지 간에 누구보다도 가장 그 인물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게 작가 자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미 그 인물에 대해서 어떤 판단이 내려져 있을 수 있다. 그래서 그 인물의 고유한 특성, 본성, 속성 등 이런 것들을 아주 익숙한 방식으로 다루게 되는 것 같다.
우리가 살다 보면 그런 경우들을 많이 겪는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에게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어떤 의외의 모습을 보았을 때가 있다. 늘 우울해 보이던 사람이 너무 순하게 어떤 미소 짓는 모습을 본다거나 늘 유쾌해 보이던 사람이 갑자기 어떤 우수에 빠진 모습을 본다든가 그런 식으로 뭔가 그 뜻밖의 모습을 보았을 때 내가 알고 있던 사람이 뭔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고 그럼으로써 그 사람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까지만 해서는 안 된다. 다만 얼핏 보았던 그 낯선 모습이 그 사람의 어떤 본질 같은 것들을 상징할 수 있고 은유할 수 있어야 된다.
존 치버가 말하고자 하는 거는 그 무심하고 일상적인 어떤 하나의 행위 속에 사실은 그 사람이 허위도 있겠으나 그 사람이 어떤 보편적인 행동 어떤 몸짓을 하더라도 그 몸짓과 그 습관적인 행위에 깃들여 있는 그 사람만의 어떤 슬픔이든 기쁨이든 욕망이든 무엇이든 그런 것들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느껴지게끔 그 인물을 형상화 할 수 있어야 된다.
그 어떤 인물의 일상적이고 아주 무심해 보이는 어떤 몸짓이나 사소한 습관 하나에도 사실은 그 사람한테는 아주 어떤 중대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소설을 쓸 때 그 인물을 강조하기 위해서 뭔가를 과장하는 것도 역시 피해야 하는 과정이겠지만, 사실은 인물이 어떤 행위를 한다면 그것이 나와 똑같은 습관이고 나와 동일한 어떤 사회적 의미를 갖고 있다하더라도 그 자신에게는 아주 고유한 개인적 의미 누구에게도 드러나지 않고 누구에게도 누설되지 않는 저 밑바닥에 있는 그 사람의 욕망이든 본성이든 이런 것들과 관련을 맺고 있다고 간주해야 된다.
그래서 좋은 작가는 인물에 평범해 보이고 관습적으로 보이는 어떤 행위들 말하자면 사소한 제스처 하나에서도 그 인물의 어떤 성격이라든지 그 인물의 본성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암시하고 그것들을 드러낼 수 있는 그런 게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