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2부 9~10장
<밤의 노래> <춤에 부친 노래>
8월 7일 『차라투스트라』 다섯 번째 수업으로 <밤의 노래>와 <춤에 부친 노래> 배웠습니다. 지금껏 『차라투스트라』는 차라투스트라의 설교 위주로 전개되어 소제목도 ‘~대하여’가 대부분이며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 끝났습니다. 2부 9~11장에는 차라투스트라가 더 이상 설교하지 않고 밤과 춤, 무덤에 관해 노래합니다. 차라투스트라가 노래하는 장면에서 디오니소스 신이 생각납니다.
“나는 디오니소스 신의 마지막 제자이자 정통한 자이다”
(『선악의 저편』 295절 책세상 312쪽)
“철학자 디오니소스의 최후의 제자인 나는 영원회귀를 가르치는 나는......”
(『우상의 황혼』 203쪽)
니체는 왜 디오니소스에 특별히 주목할까요. 왜 자신을 디오니소스 신의 마지막 제자라 하고 심지어 디오니소스 신을 철학자라고까지 할까요. 니체는 규칙과 질서가 지배하는 아폴론 신 중심의 올림포스 신화나 호메로스 작품에서 부정적으로 다뤄지는 디오니소스 신을 긍정적으로 해석합니다. 사지가 찢기는 고통을 이겨내고 부활하는 디오니소스의 속성들인 도취 광기 애욕 폭력을 새롭게 바라봅니다. 대지에 발을 딛고 일어서는 안타이오스처럼 니체에게 디오니소스는 자연 생명력을 상징하는 대지의 신입니다.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예술적 삶의 근원으로 디오니소스를 말하기도 합니다.
<밤의 노래>에서 밤과 어둠의 디오니소스와 밝은 빛의 아폴론은 상호 보완하는 관계를 형성합니다. 자신이 베푸는 지혜를 이해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고독을 느낀 차라투스트라는 밤을 노래하며 다시 영혼이 맑아지고 에너지가 충만해옵니다. 밤과 어둠을 신성한 것으로 바라보는 디오니소스의 넘치는 기운을 받아서일까요. 디오니소스를 흥겹게 노래하는 BTS가 떠오릅니다.
교수님께서 윤동주의 산문 『별똥 떨어진 데』와 김수영의 시『수난로』 에서 니체의 흔적을 세심하게 찾아주셨습니다. <밤의 노래>에 감명 받아 작곡한 말러 교향곡 3번 4악장도 들려주셨고요, ‘투명한 고독의 극치에서 외친 탄성 같다’는 전혜린의 메시지가 정곡을 찌르는 듯합니다.
『단테 신곡 강의』란 책에서 밤하늘별은 목표와 길잡이, 희망, 이상, 동경과 사랑으로 이끄는 힘이라고 본 기억이 납니다. 지옥 연옥 천국 세 편 모두 마지막 행에 별들(stelle)이 있습니다. 니체에게 별은 춤추는 별입니다.
<춤의 노래>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사랑의 화살을 쏘며 장난기 가득한 큐피드가 어린 소녀들과 춤을 출 때 노래합니다.
“나는 악마 앞에서 신을 대변하는 자다. 중력의 정령이 바로 그 악마지, 그대들 경쾌한 자들이여.” (181쪽 15~16행)
중력의 정령이란 기존의 무거운 고정 관념이며 여기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이가 가볍게 춤추는 자입니다. 차라투스트라가 대변하는 신은 당연히 디오니소스 신이지요. 차라투스트라가 부르는 노래에 지혜와 생명이 의인화되어 차라투스트라와 셋이 함께 나옵니다. 니체는 지혜를 여인으로 비유한 적 있는데요. (1부 읽기와 쓰기에 대하여 64쪽 14행) <춤의 노래>에서는 생명도 여인으로 봅니다. (182쪽 19~20행) 차라투스트라는 지혜와 생명 둘 중 생명을 택합니다. 디오니소스 신이 상징하는 강한 생명력에 비하면 지혜는 허약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니체의 글과 음악, 춤에는 언제나 디오니소스가 함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