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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강;니체『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3부(용산반)    
글쓴이 : 신재우    24-10-24 15:40    조회 : 3,631
1.니체『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3부 공부.
  가.6장; <감람산에서>
      1).원래 이 글은 <감람산에서>가 아니라 <겨울노래>였다. 니체에게 겨울은
          '고독'을 상징한다. 고독은 신을 잃어버린 상태를 말한다. 
          신을 잃어버렸으니 인간은 운명적인 자립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2).혹독한 겨울과 고독한 나의 대화는 나에게로 향한 내적 외침입니다.
      3).침묵을 통하여 천 개의 근원과 만나, 천 개의 생성을 이룰 수 있습니다.
      4).진정한 고수는 겨울처럼 차가운 어려움이 왔을 때 흔들리지 않습니다.
      5).니체는 고통을 피하지 말고 '힘에의 의지'로 맞설 것을 권합니다.
      6).김수영 시 <수난로>가 이번 글과 어울립니다.
  나.7장;<그냥 지나가기에 대하여>
      1).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를 패러디한 내용입니다.
      2).더 이상 사랑할 수 없는 곳이라면 들르지 말고 그냥 지나가야 한다.
      3). (세익스피어 『베니스의 상인』제1장 1막 31면)'침을 뱉는 차별' 참조.
2. 헤밍웨이 『여자 없는 남자들』중<조국은 당신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가.처음에는 'Italy-1927'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나.1927년 3월에 낡은 포드 자동차를 타고서 열흘간 이탈리아 리구리아로 
     여행했던 이야기다.
  다.무솔리니가 지배했던 파시스트 국가에 대한 이탈리아 문화적 변화와
       작가의 이탈리아 인식변화를  얘기한다.
  라.헤밍웨이 소설을 읽을 때, 특히 대화체 부분을 읽을 때 읽히는 대화보다 
     읽히지 않는 공간이 중요하다. '보이지 않는 공간'이 핵심이다.

김미원   24-10-25 22:53
    
같은 수업을 들었는데 원 제목 부분을 제가 흘려 들었네요.
신선생님, 후기 쓰기 위해 열심히 메모하신 노력이 보입니다. 고맙습니다.
혹독한 겨울은 침잠하며 자신 내면을 들여다보며 본질로 돌아가기 좋은 계절입니다.
니체를 공부하며 고통과 고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2교시 무솔리니가 지배하던 이탈리아를 무대로 한 소설을 공부하며
각 나라의 파시스트들로 전쟁이 그치지 않는 현시대를 생각하며 우울해집니다.
그래도 우리는 뚜벅뚜벅 자신의 길로, 이루고자 하는 길로 나가야겠지요.
너무 진지한 댓글 용서해주세요~~
차미영   24-10-26 13:56
    
『차라투스트라』 3부 ⸀감람산에서」를 읽으며 ‘깨달음의 얼음’ ‘고독’ ‘연민’이 눈에 띕니다. 김수영 시인의 ⸀수난로」를 감상하며 니체 글을 읽으면 철학자과 시인의 가슴에 새겨진 겨울의 메타포가 그려집니다. 따뜻한 정이 얼어붙은 겨울날, 고난과 시련에 당당히 맞서는 용기, 투지. 기개, 긍지, 결연한 의지를 그들은 노래합니다. 생성 변화를 중요시하는 니체에게 겨울은 만물이 정지된 불변하는 세계로 끝나지 않습니다. 한층 성숙한 단계로 끌어올린 겨울을 니체는 만납니다.
‘병든 자의 도피’로 고독이 그려질 법 하지만 니체는 ‘병든 자로부터의 도피’(책세상 290면)로 고독을 말합니다. 니체에게 병든 자란 무지한 민중(mass)이겠지요. 니체는 그들에게 자신이 높은 산 동굴에서 고독한 수양을 거쳐 깨달은 가르침을 선사하고자 도시와 행복이 넘치는 섬을 오르내리지만 번번이 낙담하고 산 속 동굴로 돌아가는 반복을 거듭 합니다. 어쩌면 차라투스트라의 이러한 반복 행위도 영원회귀의 한 모습으로 비쳐집니다.
니체와 김수영에게 고독은 힘 의지를 지닌 주체적 위버멘쉬로 발돋움하기 위해 필요한 디시플린(discipline, 단련) 같아 보입니다. 외로움을 넘어선 고독의 세계에서 새로움이 탄생하려면 거쳐야 할 관문처럼. 그 세계에서 섬광처럼 내리치는 깨달음의 순간(epiphany)을 니체와 김수영은 빛나는 글로 담아냅니다.
니체 글을 읽다보면 연민을 자주 만납니다. 니체는 자기 연민에 빠져 스스로 불쌍히 여기는 동정어린 감정을 경계합니다. 그건 주인도덕이 아닌 노예도덕을 지닌 자가 취한다고 여기니까요. 연민이란 감정이 인간이 지닌 보편적인 정서라고 말한 스피노자, 맹자의 측은지심과는 결이 다르게 니체는 연민을 다룹니다. 김훈 작가의 『하얼빈』 첫대목에서 메이지와 이토가 볼모로 데리고 간 이은(영친왕)에게 베푸는 연민은 절대 강자가 약자에게 베풀 수 있는 연민에 지나지 않습니다. 『감람산에서』 마지막 행에서 니체는 ‘연민이란 연민은 다 비웃어준다’고 말합니다. 노예근성을 지닌 자를 떠올려보면 니체가 왜 연민을 부정적으로 그리는지 헤아려집니다. 차라투스트라를 통하여 니체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연민이 아니라 인간 의지를 강화시켜주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