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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게 그거> 루쉰 <단오절> 6월 17일 용산반    
글쓴이 : 차미영    24-06-18 15:36    조회 : 2,239

그게 그거

 

617일 루쉰의 단오절을 읽고 배웠습니다. Q정전의 하층민 출신 주인공 아Q와 달리 이 소설의 주인공 팡쉬안취는 관료와 교원을 겸한 지식인입니다. 루쉰은 자신의 이름조차 쓰지 못하는 아Q의 비루한 삶이나 배움이 실천으로 옮겨가지 못하는 팡쉬안취의 나약한 삶 둘 다 그게 그거란 걸 보여줍니다. 단오절을 읽으며 작가의 비판적인 시선이 느껴진 세 대목 옮겨 봅니다.

 

첫째, “팡쉬안취는 요즘 그게 그거라는 말을 즐겨 쓰다 보니 거의 입버릇이 되고 말았다. 말로만 그치는 게 아니라 뇌리에도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린비 160)

그게 그거란 말이 입버릇처럼 습관이 되다보니 어느새 우리 머릿속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듯 이 소설의 핵심 주제가 드러난 소설 첫 장면입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몸가짐이나 마음가짐이 반복되어 굳어지면 습성(hexis)이 되고 나아가 습관(ethos)으로, 이 습관에서 비롯되어 인격, 성품, 성격, 품성(ēthos)이 형성된다고 말합니다. (국가서광사 220면 주석, 니코마코스 윤리학길 출판사 51면 주석) 어릴 적부터 몸과 마음에 깊이 밴 습관이 인격 형성에 얼마나 중요한 지 알려주는 대목입니다.

부패한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동조는 하되 동참은 하지 않는 지식인의 일상이 그게 그거란 한마디에 담겨 있습니다. 현실 비판적인 입장은 취하지만 불의에 맞설 만큼 강한 인물은 못 된다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습니다.

 

둘째, “예나 제나 사람은 별반 다르지 않다는 말이 나왔고 별별 인간들의 본성은 비슷하다” (161) 그리스어로 본성을 뜻하는 physis가 있습니다. 영어 단어 nature에 해당하는 physis변하다변하지 않다라는 상반된 의미를 동시에 지닙니다. 한 인간이 태어나 성장하고 성숙하며 변해가는 듯 보이지만 태생적인 기질이나 성향은 좀처럼 변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인 헤라클레이토스의 단편에 본성은 스스로를 감추곤 한다.”란 구절이 있습니다. “본성은 숨기를 좋아한다라고 해도 같은 의미입니다. 드러내는 것보다 감추는 것이 인간 본성에 더 가깝고 생존에 도움이 되는지 그게 그거란 말로 위안 삼으며 고상한 척 자신을 합리화하는 단오절의 주인공에게 어울릴 법한 글귀처럼 보입니다.

 

셋째, “인간이란 딱하게도 자기를 아는 지혜가 부재하는 존재인 것이다.” (164)

자신을 객관적으로 성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의미 같아 옮겨 봤습니다. 니체의 도덕의 계보서문이 떠오릅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 (...) 우리는 필연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이방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한 가장 먼 존재이다.” (도덕의 계보책세상 337~338)

자신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위험하고 어리석은지 니체가 보여줍니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자신이 누군지 알지 못하고 떠나는 게 우리 인생 같습니다. ‘자기를 아는 지혜란 자신의 한계를 끊임없이 자각하는 반성적 사고에서 출발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루쉰이 비판하고자 한 중국인의 삶을 대하는 수동적 자세가 우리의 그것과 다르지 않기에 더 공감되는 글 같습니다.


차미영   24-06-18 15:42
    
용산반 신선숙 선생님의 신간 <신념의 매력> 출간 파티를 가졌습니다. 신선숙 선생님의 십여년간 써오신 글 한 편 한 편마다 삶을 바라보는 뜨거운 시선이 느껴집니다. 기쁨 환희 즐거움 행복으로 다 할 수 없는 고통 아픔 슬픔이 함께 녹아 있는 첫 산문집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