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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헌영의 미국 문학 강의 제25강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감상    
글쓴이 : 김숙    22-01-11 16:08    조회 : 2,406

임헌영의 미국 문학 강의 제25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감상

이 세상은 사랑하기 좋은 곳/ 여기보다 더 나은 곳이 어딘지 나는 모른다.”
                                                                        (프로스트의 <자작나무> 마지막 구절 중에서) 

어떤 사랑 이야기

  남편이 아내에게 한마디 넌지시 던졌다네요 여보. 우리나라는 3면이 아니라 4면이 바다인 것 같아아내가 뚱한 소리로 뭔 말이야? 서해, 남해, 동해! 3면이지!” 때는 이때다. 남편이 챔질했어요. ‘앗싸. 걸렸다잉!’ 아내 귀에 달콤한 사탕 하나를 투척했대요. “하나 더 있어! 바로사랑해!!!” ㅎㅎ 달콤한 4번째 바다 이야기 들어보셨나요?

                                                                                                -따분한 휴게실에서

분위기 바꿔서 프로스트 시 한 편 읽어보아요.

눈 오는 저녁 숲가에 서서(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1923)

이게 누구의 숲인지 알 듯하다. /그 사람 집은 마을에 있지만/그는 보지 못할 것이다, 내가 여기 멈춰 서서/자신의 숲에 눈 쌓이는 모습을 지켜보는 걸. // 내 조랑말은 나를 기이하게 여길 것이다,/근처에 농가라곤 하나 없는데/숲과 얼어붙은 호수 사이에서/연중 가장 캄캄한 이 저녁에 길을 멈추었으니. // 말은 방울을 흔들어댄다,/뭐가 잘못됐느냐고 묻기라도 하듯. /그 밖의 소리는 오직 가볍게 스쳐가는/ 바람소리, 부드러운 눈송이뿐. // 숲은 아름답고, 어둡고, 깊다,/하지만 난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잠들기 전에 갈 길이 멀다,/잠들기 전에 갈 길이 멀다.

Whose woods these are I think I know./His house is in the village though;/He will not see me stopping here/To watch his woods fill up with snow. // My little horse must think it queer /To stop without a farmhouse near /Between the woods and frozen lake /The darkest evening of the year. // He gives his harness bells a shake /To ask if there is some mistake./The only other sound’s the sweep/Of easy wind and downy flake. // The woods are lovely, dark and deep, /But I have promises to keep,/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나는 자연시인 아니다.”

  프로스트(Robert Lee Frost(1874.3.26.-1963.1.29.)는 주로 자연의 양면적인 주제로 시를 썼는데 그의 주된 관심은 인간과 삶이었다. 시인은 나는 자연시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 속에 인간이 등장하지 않는 시는 단 두 편밖에 쓰지 않았습니다.라고 했다.

  자연은 인간의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규명하고 인생을 해명하기 위한 배경이자 수단으로 삼았다.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자연을 이용했고 인간을 말하기 위해 자연을 배경으로 여겼다.

  프로스트의 시는 서사가 많은데 사실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징적이다. 자연묘사를 그대로 한 건 내 행동이 돋보이기 위한 전개이고 마지막에 본뜻이 나온다. 숲은 삶의 상징이다. 어두운 저녁 숲은 보이지 않지만 이미 아름답다. 하지만 삶은 어렵다. 그러함에도 나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나는 가야 할 길이 있다. 여기서 약속은 삶의 목적이다.                                                                   -오늘 강의 내용 중에서

 ◈ 오늘의 합평

이명환국화리조진아김명희조선근.

 ◈ 그 밖에

故 조성삼 선생님 문상 이야기 전달(오정주 반장님유병숙 전 회장님신현순 선생님이 조문)

가족과 나눈 이야기생전에 선생님의 글쓰기와 한국산문을 사랑하셨던 일화남기고 가신 작품과 열정에 눈시울이 뜨거웠고 귀감이 되었다. 선생님의 편안한 영면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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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하는 시혼 (강의록을 중심으로. 혹시 필요하신 분을 위하여^^)

  프로스트는 1874326San Francisco에서 교사와 언론인을 지낸 아버지(William Prescott Frost, Jr)와 스코틀랜드계 시인으로 스코틀랜드 출신의 로버트 번스(Robert Burns, 1759-1796)를 좋아하는 어머니(Isabelle Moodie) 사이에서 출생했다. 어머니가 다니던 스베덴보리파 교회(Church of the New Christ, 영국에서 형성, 미국으로 퍼짐)에 다니며 세례도 받았으나 나중에 이 종파를 떠났다.

  다트머스대학(Dartmouth College, Hanover, New Hampshire, United States) 등에서 수학했고 교사, 농부, 기자 등을 지내며 전전하다가 1895(21), 고교 동창으로 자신과 1, 2등 했던 엘리너(Elinor Miriam White, Frost, 1873-1938)와 결혼했다.

  하버드대(1897-1899)를 중퇴하고 할아버지가 사준 농장(Derry, New Hampshire)에서 농사에 전념했으나 성공 못 하자 교직을 택했고 시도 발표했으나 인정받지 못했다.

  방황하던 프로스트는 1912(38),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떠났다. 런던 교외 부촌 비콘스필드(Beaconsfield)에 머물며 시 창작에 몰입했는데 이 무렵에 몇몇 시인을 만나 큰 영향을 받았다. 그들은 전쟁 시인으로 유명한 Edward Thomas(1878-1917), 영국 평론가이자 시인으로 모더니스트였던 T. E. Hulme; Thomas Ernest Hulme(1883-1917)이다. 흄은 기하학적인 구성미(이미지즘)를 추구했고 반전주의자 러셀을 반대했으며 시 이 유명하다. 그다음은 미국 시인으로 이미지즘 운동 시인인 Ezra Pound; Ezra Weston Loomis Pound(1885-1972)이다. 2차대전 중 이탈리아 파시스트 지지로 전후 피체, 정신병원 신세가 되었다.

귀국해서 정착

  영국에서 세 명의 시인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프로스트는 1915(41)에 귀국, 프랜코니아(Franconia, New Hampshire) 지금의 The Frost Place에 정착했다. 부부 슬하에는 6남매가 있었는데 둘은 일찍 죽었다.

일약 유명해진 시인은 대학에서 시론 강의를 했고 많은 시집과 시극 2권 등을 펴냈다. 시는 주로 리얼리즘적인 사 회비판 요소와 종교적인 성찰, 명상적인 경향을 담았다. 1961(87) 1.20, 케네디 대통령 취임식(1961.1.20.) 때 자작시 <아낌없는 선물(The Gift Outright)> 낭독하기도 했는데 원래는 최신작 낭송 예정이었으나 햇빛에 반사되어 읽기가 어려워져 자신이 암송하고 있던 이 시를 읽었다. 이 시는 윌리암 앤 메리대학(College of William & Mary on December)에서 19415월에 낭송했던 시였다.

전기 Robert Frost3부작과프로스트 서한집출간 예고

  생전에 프로스트로부터 전기 집필자로 선택받은 톰프슨(Lawrance Roger Thompson, 1906-1973)은 방대한 전기Robert Frost3부작에서 수십 년에 걸쳐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기존 프로스트에 대한 세간의 존경심을 뒤엎는 내면 폭로, 잔인, 질투심,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힌 monster of egotism”으로 명성과는 달리 묘사했는가 하면 20142월 하버드대학에서는 3,000여 장 프로스트의 편지 4권을 2년 간격으로 출간한다 발표했는데 학회는 사후 논란에 휩싸였던 잔인한 위선자라는 이미지 개선을 기대했다. 공동 편집자 마크 리처드슨 교수는 모든 편지는 프로스트에 대한 모함이 근거가 없다는 걸 매우 확실하게 보여줄 것이라고도 했다.

1963(89) 129일에 사망했음. 묘지는 Old Bennington Cemetery in Bennington, Vermont. 묘비명은 <오늘을 위한 교훈(The Lesson for Today)>(1942)에서 인용.

나는 "죽음을 상기하라"라는 가르침을 받았으니 / 그래서 나의 내력을 비문에 새긴다면 /나는 짧은 구절로 시작하길 원한다./나는 나의 비석에 다음과 같이 쓰고 싶다. /, 나는 이 세상과 사랑싸움을 한 사람이라고.

I hold your doctrine of Memento Mori /And were an epitaph to be my story, /I’d have a short one ready for my own. /I would have written of me on my stone: /I had a lover’s quarrel with the world.

◈ 〈가지 않는 길(피천득 역)

20세기 미국의 가장 유명한 시인 프로스트. 우리에게 가지 않는 길로 유명한 시 감상

노란 숲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김숙   22-01-11 16:19
    
오늘 강의 후기 올립니다. 참석 못 하신 문우님을 위해 뒷 부분 요약 붙여보았습니다.^^
     
주기영   22-01-15 05:44
    
김숙 선생님
수업 때 가끔 뵈었던,
차분하고 단정하던 모습처럼 후기도 그러하네요. ^*^
정말 고맙습니다.
-노란바다 출~렁
곽미옥   22-01-11 21:17
    
김숙 선생님~ 후기 짱! 애쓰셨어요~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참 많이도 읽고 외웠던 시인데요. 고민을 하는 일에서는  늘 가지 않은 길이  더 나았을텐데 ..라는 갈등을 했던 시절이 있었지요.  어쩌면 지금도  이 선택은 계속되고  있는지도요~
프로스트는 누군가 자기 시를 분석하면 못마땅해 하며 "그거 그냥 산책하며 끄적인거요." 라며 불만을 표했다지요? 이렇게 자신감있는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건 프로스트이니 가능했겠지요.
시는 어려운거 같아요. 이미지를 형상화 한 글을 쓴다는 거 .. 물론 수필도 어렵지요.
 그 어려운 글을 우리는 쓰고있습니다.  화이팅!!
오정주   22-01-12 17:21
    
오프닝 멘트에 질투가 나서 지금 뭐해?까지 우리나라는 5면이 바다인걸로 하겠습니다.ㅋㅋㅋ
자세한 후기 써 주시느라 수고하신 김숙 선생님 감사합니다.

교수님이 가지 않은 길보다 더 좋다고 하시는 <자작나무> 마지막 귀절을 되새겨봅니다.

나는 잠시 세상을 떠났다가/다시 돌아와 새로 시작하고 싶다/ 운명이 나를 잘못 이해하고 내 소원을 반만 들어주어/다시 돌아오지 못하도록, 아주  데려가버리지는 않겠지./이 세상은 사랑하기에 좋은 곳이기에/여기보다 더 나은 곳이 어디인지 나는 모른다.
박진희   22-01-15 04:27
    
거의 61년 전, 케네디 대통령 취임식에서 프로스트 자신의 시를 낭송해서 유명해진 <아낌없는 선물>도 인상적이네요.

"이 땅이 우리의 것이었음은 우리가 이 땅의 사람들이 되기 전부터였다/... 중략.../그러나 우리는 영국의 것이었고 여전히 식민지의 사람에 불과했던 것은/ 그 때까지는 우리의 것이 아닌 것을 갖고 있었을 따름이었으며/ 이제는 더 이상 종속되지 않는 것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었던 탓이었다./ 우리를 억누르던 무언가가 우리를 나약하게 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었음을 깨달아 알게 되었을 때까지/ 우리는 우리 삶의 터전을 방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마침내 항복을 통해 구원을 찾았다./ 대단한 것이라 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아낌없이 희생하여 (이러한 희생의 공로란 전쟁의 공로였다)/ ....."

어딘지 한국이 일본의 지배를 받던 것에서 광복을 얻은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네요. 한국도 숱한 애국자들의 희생으로 지켜온 '아낌없는 선물'이란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