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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강;니체『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용산반)    
글쓴이 : 신재우    25-10-06 10:10    조회 : 1,475
1제4부 중<5;마법사>와 <6;퇴역자>읽기.
  가.<마법사>읽기.
     1).이 장에서 나오는 노인은 독일인 작곡가 빌헬름 리하르트 바그너
        (1813~1883)로 추정된다.
     2).1869년, 31세 때 니체는 처음으로 바그너를 만나고 그를 정신의 아버지처럼
        숭앙하다가  40대에 이르러 바그너에게서 완전히 등을 돌린다.
     3).니체는 바그너의 게르만족 숭앙주의와 반유대주의를 경멸한다.
  나.<퇴역자>읽기.
     1).이 장의 원래의 뜻은 '성직을 잃은 마지막 교황'을 뜻한다.
     2).차라투스트라가 신이 죽었다며 애도하는 '마지막 교황'을 만난다.
     3).비틀즈의 <이매진>(1917)은 종교간의 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노래한다
2.막심 고리키의『가난한 사람들』중<7;영혼을 시험하는 자들>읽기. 
  가.욕실 때밀이 프로호로프는 '어째서 나는 운이 좋은걸까? 하나님은 대체 날 
     어디로 데려가는 걸까.'라고 묻는다.
  나.작가는 살아가면서 이해할 수 없던 것들에 대해서 쓰다.




차미영   25-10-07 19:37
    
니체는 『차라투스트라』 4부 「마술사」에 등장하는 ‘늙은 마술사’를 바그너를 빗댄 인물로 그립니다. 『바그너 평전』(오해수 지음, 풍월당) 머리말에 나오는 바그너의 많은 별칭 가운데 ‘바이로이트의 마법사’가 떠오릅니다.
“그대, 고약한 늙은 마술사여, 그대는 그대 자신에게 지친 나머지 ‘나는 위대하지 않다’고 실토하고 말았다. 이 실토야말로 내가 경의를 표하는, 그대에게 있어서 최선의 것이며 더없이 정직한 것이다.”
위 대목에서 니체(차라투스트라)는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한 바그너(마술사)의 모습을 통해 한때 존경했던 예술가의 내면적 붕괴와 자기기만을 비판합니다. 이십 대의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사상에 깊이 매혹되었고, 바그너의 음악에서 디오니소스적 긍정과 강렬한 생명력을 발견하며 그에게 『비극의 탄생』을 헌정했습니다. 그 시절 바그너는 니체에게 정신적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였으며, 니체는 바그너의 아내 코지마를 연모했습니다.
니체가 존경하던 바그너와 결별한 이유는 표면적으로 명확합니다. 바그너의 예술이 점차 종교적 색채를 띠고, 독일 민족주의와 기독교적 보수성으로 기울었으며, 특히 「파르지팔」에서 그가 제시한 구원의 이상은 니체에게 실망을 안겨주었습니다. 니체는 『바그너의 경우』와 『니체 대 바그너』에서 이러한 변화를 날카롭게 비판했습니다.
다만 프로이트적 시선으로 보면, 니체는 바그너에게 아버지와 같은 존재를 투사하며 그에게 의지하고 인정을 받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코지마를 매개로 한 미묘한 경쟁심과 질투가 싹트면서 애정은 점차 상처로 변했고, 그 감정은 반동적으로 격렬한 비판으로 나타났습니다. 결국 억눌린 감정의 에너지는 철학적 사유로 승화되어 『차라투스트라』에서 드러나는 생의 긍정으로 이어졌습니다.
니체는 철학적으로는 바그너의 그늘을 벗어났지만, 내면은 그와 완전히 결별하지 못한 듯 보입니다. 바그너를 거부했지만 끝내 그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니체에게 바그너는 여전히 디오니소스의 형상으로, 그의 아내 코지마는 아리아드네의 모습으로 마음에 남아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마술사」에 나오는 ‘정직한 실토’는 바그너에게 진실을 요구하는 말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내면에 남은 바그너의 그림자를 마주하려는 니체 자신의 고백처럼 읽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