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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강;니체『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용산반)    
글쓴이 : 신재우    25-10-18 09:46    조회 : 924
1.니체『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중 제4부 7장과 8장 읽기.
  가.7장<더 없이 추악한 자>읽기.
     1).자기를 긍정하지 못하고, 타인을 파괴하는 자 즉 가장 추악한 인간을 설명.
     2).자신의 삶을 즐기지 못하는 자는 허무주의자가 되거나 냉소주의자가 된다.
          때로는 거짓을 반복하며 자기만의 질투와 시기와 절망에 빠져 살아간다.
     3).가장 큰 창조적 경멸로 자신을 채찍질 하는  이가 거대한 존재다. 치열하게
          자신을 경멸하는 사람은  치열하게 사랑하며 창조적인 생산을 이룬다.
  나.8장<제 발로 거렁뱅이가 된 자>읽기.
     1).차라투스트라가 생각하는 자발적으로 거지가 된 자는 붓다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2).역겨움을 3만번의 되새김질로 씹어버리는 인내는 무섭지 않은가. 깨우친 
         자들은 암소에게서 배운 되새김질과 인내를 통해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다.
     3).헨리 데이비드 소로우(1817~1862)의 '자발적 빈곤'이란 말을 썼다.
     4).법정 스님『버리고 떠나기』,『산에는 꽃이 피네』와
         에른스트 슈마허(1917~1977)『자발적 가난』참조.
2.막심 고리키『가난한 사람들』중 8장과 9장 읽기.
   가.8장<어느 대학생의 변론>읽기.
      1).고리키는 지식인을 긍정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굴레에서 빠져나가려는
          기회주의적 존재로 풍자하고 있다.
      2).배운 자들은 자신이 상상한 모든 지식과 정보로 자신의 처벌을 피하려 한다.
  나.9장<실패한 작가>읽기.
      1).이 글은 자신을 패러디로, 비유한 소설로 읽힌다.
      2).조국으로부터 배척받은 고리키 자신의 삶이 실패한 작가의 모습이 아닌가.
         .

차미영   25-10-18 15:28
    
니체는 『차라투스트라』 제4부 「더없이 추악한 자」에서 신의 죽음 이후 허무주의에 빠진 인간의 모습을 ‘더없이 추악한 자’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줍니다. 니체가 말하는 ‘신의 죽음’은 단순히 기독교의 신이 사라졌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는 서양 문명을 지탱해 온 전통적 가치체계,도덕, 진리, 형이상학, 종교 전체가 붕괴했음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니체는 ‘망치를 든 철학자’로서 기존의 도덕과 신념을 파괴하고, 인간이 스스로의 힘에 근거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존재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강렬한 생명력과 창조적 에너지를 긍정하는 ‘힘에의 의지’를 인간 존재의 근원적 원리로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신이 사라진 자리는 곧바로 자유와 창조성으로 채워지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형성된 기독교적 가치관과 죄의식, 원죄 의식이 여전히 인간의 내면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여전히 신에게 연민과 구원을 기대하고, 신은 이러한 인간에게 동정과 자비를 베풉니다. 그 결과 인간은 신의 연민 앞에서 스스로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느끼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더없이 추악한 자」에 등장하는 인물은 바로 이러한 ‘신의 죽음 이후에도 신의 잔재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간’을 상징합니다. 그는 한때 신을 부정했으나 그 죄책감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지 못한 인물로, 인간 내면의 깊은 도덕적 죄의식과 연민의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통해 이러한 연민을 경계합니다. “그대(그대는 차라투스트라) 자신을 경고하여 그대의 연민의 정을 경계하도록 하라.”(『차라투스트라』, 책세상판 434면) 이 구절은 차라투스트라 자신에게도 남아 있는 연민의 유혹을 자각하라는 경고로 볼 수 있습니다. 니체에게 연민은 약자에 대한 사랑이나 도덕적 미덕처럼 보이지만, 실은 인간을 나약하게 만들고 스스로의 힘을 부정하게 하는 위험한 감정입니다. 따라서 차라투스트라가 추악한 자를 통해 마주한 것은 바로 그 자신 안에 남아 있는 ‘기독교적 연민의 잔재’입니다.
이 장의 마지막에서 니체는 “사람은 극복되어야 할 무엇이다”(436면)라고 말합니다. 이는 기존의 죄의식과 연민, 허무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인간, 위버멘쉬 나아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니체는 자신이 깨달은 새로운 사상을 설파하면서도, 여전히 연민의 정을 떨쳐내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를 통찰하고 있습니다.
결국 ‘더없이 추악한 자’는 신의 죽음 이후에도 옛 가치의 그늘에 머무르며 죄책과 연민에 사로잡혀 있는 인간의 초상입니다. 차라투스트라가 그를 경계하는 이유는 우리 역시 타인에게 베푸는 동정 속에서 스스로의 우월감이나 자기기만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니체는 이 장을 통해 연민이 미덕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이 인간을 더욱 나약하게 만들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차라투스트라의 메시지는, 인간이 자신 안의 연민을 넘어 자신의 힘으로 존재의 의미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