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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학기 제6강;니체『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용산반)    
글쓴이 : 신재우    26-01-08 16:00    조회 : 683
1.니체『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중 4부 16장 읽기.
  가.제목은 <황무지(사막)의 딸들 사이에서>다.
  나.삶의 고통을 직면하지 못하고 달콤한 위안(후식)만 찿을 때, 창조적 에너지는 
       말라버린다. 니체는 생명력이 메마른 상태를 '사막'으로 불렀다.
       후식에 탐닉할수록 내면의 사막화는 가속화 된다.
  다.니체는 우리에게 내면의 사막을 방치하지 말고, 그 황무지를 개간할 새로운
      가치의 씨앗을 심으라고 촉구한다.
  라.<사막이 자라난다. 사막을 품은 자에게 화 있을 것이다!>로 16장을 
       마무리한다.
  마.사람들이 더 이상 위대한 것을 추구하지 않고, 오직 편안함과 말초적인 
      유희에만 매몰되는 현대 문명의 징후를 사막의 확산으로 본다.
  바.바그너의 음악보다는 비제의<카르멘>을,  괴테의 <서동시집>을 높이
      평가한다.
2.표정애 선생님의 <삶의 연금술사 우주의 별이 되다>합평이 있었습니다.
3.김미원 선생님의 <가벼운 사랑>합평이 있었습니다.


차미영   26-01-09 00:36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4부 「사막의 딸들 틈에서」에서 노래하는 이는 차라투스트라가 아니라 그의 그림자(나그네, 방랑자)입니다. 차라투스트라의 언어가 자기극복과 가치 창조, 삶의 긍정을 향한다면, 그림자의 노래에는 신의 죽음 이후에도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유럽의 피로와 오래된 습관이 남아 있습니다.
그림자는 유럽의 눅눅한 우울과 사막의 건조한 공기를 말합니다. 니체가 비판하는 것은 무거운 사유와 지친 정서로 요약되는 유럽의 데카당스적 분위기입니다. 사막은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으로 나타납니다. 동시에 “사막은 자란다”라는 말에는 내면의 황무지, 곧 허무주의적 삶의 태도를 향한 통찰이 들어 있습니다. 결국 사막은 상쾌함과 황량함이 겹쳐진 이중적 이미지입니다.
사막에서 춤추는 소녀들, 두두와 줄라이카의 등장은 이 양면성을 더욱 분명하게 합니다. 두두는 바이런의 『돈 주안』에서, 줄라이카는 괴테의 『서동시집』에서 온 이름입니다. 이 이름들은 이국의 정서와 관능을 불러와 감각적 휴식을 줍니다. 다만 그 휴식은 공백을 달래는 디저트에 머물고, 삶을 새로 여는 힘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막과 사막의 딸들은 도피를 가장한 가벼움을 드러내는 장치로도 읽힙니다. 
마지막 대목에서 그림자는 루터의 말을 떠올리게 하는 “달리 도리가 없으니, 신이시여 도와주옵소서! 아멘!”(책세상, 508쪽)이라고 노래합니다. 이 장면은 신의 죽음을 말하면서도 위기 앞에서는 다시 신을 찾게 되는 마음을 전하는 것 같습니다.
이 챕터를 읽으며 니체가 말하는 ‘가벼움’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