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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가 | 박종희    
글쓴이 : 사이버문학부    19-11-19 00:30    조회 : 5,381


도서 소개

구들장같이 따듯한 온기를 담은 일상

 

박종희 수필가의 산문집 『출가』가 <푸른사상 산문선 28>로 출간되었다. 저자는 수필을 쓰면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마음을 다스리고, 놓치고 사는 것을 다잡고, 아쉽고 서운했던 것들과 화해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리하여 친정과 시가의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의 이야기와 자신의 일상을 진솔하게 풀어낸 이야기들은 진정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인식시켜준다. 작가의 단단한 내면과 구들장 같은 내용과 섬세한 표현은 우리에게 진한 감동을 전해줄 뿐만 아니라 삶의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한다.

 

 

목차

작가의 말

 

제1부 매화꽃이 피었다

솔기 / 빈집 / 뒷목이 되다 / 매화꽃이 피었다 / 어머니의 서랍 / 고무나무 / 함 싸기 / 생짜배기 / 슬픔을 사는 사람들

 

제2부 출가

스며들다 / 헛제삿밥 / 출가 / 청양고추 / 발효 / 그릇을 빚다 / 뒤 / 편지 / 손을 읽다 / 바코드

 

제3부 보물찾기

밥 / 아버지의 구두 / 균형 / 벚꽃증후군 / 물갈이 / 이사 / 보물찾기 / 이매탈

 

제4부 아버지의 등

미역국 / 아버지의 등 / 뚜껑 / 주령구 / 처음이라서 서툴다 / 육개장을 먹는 시간 / 곰보빵

 

제5부 피베리 커피

골목길을 읽는다 / 꽃 손 / 사진 찍기 / 피베리 커피 / 고약한 발 / 그녀의 목소리 / 수건 / 이슬이가 떠났다

 

 

저자 소개

박종희 朴鐘姬

어릴 때부터 일기 쓰는 아버지를 보고 자랐다. 학창시절에 백일장을 다니면서 문학의 꿈을 키웠다. 충북 제천 출생이며 청주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00년 『문학세계』 수필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수필집으로 『가리개』가 있다. 서울시 전국 수필공모전 대상, 시흥문학상 우수상, 올해의 여성 문학상, 매월당문학상, 등대문학상, 경북문학대전, 김포문학상 등을 받았다. 2014년 『동양일보』 신인문학상에 소설이 당선되기도 했다. 한국작가회의, 한국산문작가협회,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충북작가 사무국장을 맡고 있으며 충북문화재단과 세종시 문화재단에서 수필 창작 플랫폼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E-mail_ essay0228@hanmail.net)

 

 

‘작가의 말’ 중에서

따뜻한 글을 쓰고 싶다

 

나에게 수필은 나침반이었던 것 같다. 수필을 쓰면서 나를 돌아보고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다. 수필 안에서는 내가 놓치고 사는 것을 잡을 수 있었고 아쉽고 서운했던 것들과도 화해할 수 있어 좋았다. 글이 나를 대변하듯 내가 살아가는 모든 일상은 수필이 되었다.

중학교 때부터 백일장을 다녔지만, 정작 글쓰기를 제대로 배워본 적은 없다. 수필을 쓰면서 나는 문학 공모전을 스승으로 삼았다. 문학상 도전은 내 글을 평가받을 수 있는 유일한 관문(關門)이었다. 공모전에서 낙선하면 퇴고의 시간을 늘리고 당선되면 내 수필의 방향이 제대로 가고 있는 것 같아 안도했다. 하지만,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여전히 수리되지 않은 언어들과 얇은 사유가 내 발목을 잡는다.

첫 수필집을 낸 지 벌써 9년이 되었다. 어느새 묵은 글이 된 원고를 출가시키려니 아쉬움과 후련함이 교차한다.

그러나 비워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믿기에 작은 용기를 낸다. 한없이 부족하지만,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공감하고 위로받는 이가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부끄러움이 덜할 것 같다.

글에도 온도가 있는 것 같다. 따뜻한 글은 누군가의 슬픔을 감싸주지만 싸늘한 글은 생채기를 남긴다. 글의 품격과 향기는 글쓴이의 심성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난해하지 않고 겸손한 언어로, 누구나 공감하는 건강한 수필을 쓰고 싶다. 구들장같이 온기 있는 언어로 따뜻한 수필을 쓰고 싶다.

 

 

출판사 리뷰

수필가 박종희의 산문집 『출가』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진정한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전해주는 책이다. 작가는 친정과 시가의 부모님들을 비롯한 가족들의 이야기와 평범한 일상을 진솔하게 풀어냈다.

치매 환자가 되어 고단했던 인생살이의 기억을 하나하나 흘려보내다가 돌아가신 시어머니, 이제는 다시 받아볼 수 없는 친정어머니의 따뜻한 밥상. 변변한 구두 한 켤레 제대로 사드리지 못했던 친정아버지. 그분들에 대한 애틋함과 그리움과 죄스러움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매운 것을 잘 먹지 못하던 작가는 매콤한 낙지볶음을 즐겨 먹으면서 매운 맛에 익숙해진다. 이는 고난과 시련, 인생의 풍파를 겪으며 단단해진 작가의 내면과도 흡사하다. 잘 발효된 무 효소처럼 인생을 살아가며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한 인간의 모습이 투영된 이 산문집은 독자들에게 진하고 깊은 감동과 공감을 자아낸다.

 

 

추천사

잘 발효된 무 효소 같은 글

글에 온도와 품격과 향기를 넣어 삶을 따뜻하게 해주려는 박종희 작가는 일상과 글을 조화시키는 탁월한 재능을 가졌고 기교보다는 진실성에 초점을 맞추는 솜씨가 돋보인다.

박종희의 글은 잘 발효된 무 효소 같다. 밥과 국처럼, 꽃과 나무처럼, 강과 산처럼 그녀의 문학은 누구에게나 편안한 안락의자가 되어준다. 그렇게 된 데는 1,200도가 넘는 불가마 속에서 20시간 이상 다시 구워야 비로소 완성되는 도자기를 닮은 그녀의 창작혼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매운 걸 못 먹던 그녀가 청양고추로 혀를 쏘는 낙지볶음을 즐기듯이 치열하면서도 단아한 삶과 올곧은 역사의식이 박종희 수필의 매력이다. 이번 수필집에서는 다양한 삶의 모습이 토르소처럼 전개되어 우리 시대 보통 사람들의 체취가 물씬 풍기는 게 특징이다.

― 임헌영(문학평론가)

 

기적의 호르몬 다이도르핀이 솟는

사람마다 감동을 받는 경우가 다르긴 하겠지만, 나는 마음을 울리는 글을 볼 때 감동을 가장 많이 받는다. 박종희의 『출가』를 읽는 내내 기적의 호르몬 다이도르핀이 팍팍 솟아남을 느꼈다. 트라우마를 대하는 글쓰기가 진솔하고 따뜻하고 부드러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마치 내가 화자인 듯 마음이 가벼워져갔다. 숲속 시냇물 속삭임을 따라가다 보면 숲이 만들어낸 아포리즘들이 후각의 기억으로 살갗에 스적인다.

『출가』의 숲속을 빠져나올 무렵이었을 것이다. 영감처럼 언어 한 조각이 내 앞에 툭, 떨어졌다“. 뺄셈의 미학”―더하지만 덧칠하지 않고 가볍게 덜어내는 문체, 무거운 과거를 진행형에서 완료형으로 바꿔놓는 개성. 이름하여 박종희 수필의 미학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 권희돈(문학평론가, 문학테라피스트)

 

 

책 속으로

그러나 내가 시댁 사람이 되기까지는 녹록하지 않았던 삶과 소태처럼 쓴 날들이 많았다. 시집와서 한동안은 식구들과 융화하지 못했다. 구르는 돌처럼 모서리를 세우고 각지게 산 날들도 있었다. 차남이면서 장남 노릇을 해야만 하는 남편의 짐은 턱없이 무거웠다. 그러다 보니 식구들 앞에서 떨그럭거리는 소리도 자주 냈다. 더러는 원망과 욕심으로 뭉쳐진 마음의 결을 다스리지 못해 오래도록 끙끙거리기도 했다.

스님은 10년 만에 친구를 만나 잠깐이지만 다시 여자로 돌아왔다. 공유했던 추억을 끄집어낼 때마다 스님의 얼굴에는 백일홍 꽃잎처럼 수줍게 물이 들었다. 가끔 행자 스님들 흉을 볼 때는 목젖이 보이도록 웃기도 했다. 추억이란 대체 무엇일까. 얼마나 대단한 위력을 가졌기에 속세와 절교하고 삭발한 그녀의 마음조차 쥐고 흔드는 걸까.

친구 스님은 다시 주전자를 들고 빈 찻잔에 차를 따랐다. 쭈르르, 찻물 따르는 소리에 쌉싸래한 차 향기가 코끝에 와 닿았다. 스님이 따라준 차 한 모금을 입에 물고 밖을 내다보니 댓돌 위에 놓여 있는 하얀 남자 고무신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스님과 눈이 마주쳤다. 스님도 고무신을 바라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이 민망했던지 스님은 “보기엔 투박해도 저 고무신이 참, 편해요.”라고 하며 수줍은 듯 얼굴이 발그스레해졌다. 스님의 짧은 한마디에 가슴 한편에서 뜨거운 무엇인가가 울컥하며 느꺼워졌다. 편안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만큼 절 생활이 익숙해졌다는 것일까. 스님은 한 남자와의 인연을 끊으려고 출가했고 나는 한 남자의 아내가 되려고 출가했지만, 어느새 우리는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장 맛이 좋을 거라며 스님은 찻잔에 세 번째 우린 차를 따랐다. 쪼르르, 찻물 떨어지는 소리에 출가를 꿈꾸던 가을 햇볕이 슬그머니 달아난다.(69쪽~70쪽)

 

그날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몇 살이라도 더 먹은 내가 참았어야 했다. 어머니를 보내는 일이 처음이라 서로 실수한 것에 대해 언니인 내가 관대하지 못했던 것 같다. 동생들도 방법이 달랐을 뿐이지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보다도 컸을 것이라는 생각을 왜 못 했을까.

우리는 매일 처음과 만난다.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오늘과 마주하며 산다. 따지고 보면 이 세상에 처음 아닌 것은 없다. 처음은 설레게 다가오는 만큼 두렵기도 하다. 첫사랑도 연습 없이 처음 하는 사랑이라 익숙지 못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서툴러서 헤어지게 된다. 하지만 지나고 나면 꾸밈없던 그때가 얼마나 순수하고 아름다웠는지 알게 된다.

처음 겪은 사고로 충격이 큰 딸애만큼 첫 사고인 내 차에 상처도 심했다. 딸애는 무서워서 당분간 운전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실수가 두려워 포기한다면 앞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테니 더 조심하며 운전을 해야 한다고 했다.

혼자 자라 새로운 것과 부딪히는 것을 두려워하는 딸애 나이 이제 겨우 스물다섯 살이다. 살아가면서 앞으로 딸애가 만나야 할 처음인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눈부시게 아름다운 사랑도 해야 하고 엄마도 되어야 한다. 또한, 언젠가는 처음으로 부모의 죽음을 맞이하기도 해야 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시작은 처음이다. 소녀가 자라 여자가 되고 어머니가 되는 것처럼 처음부터 완성되는 인생은 없다. 삶이란 서툰 것이 쌓여 미립을 얻는 일이라고 딸애한테 이야기해주고 싶다. 서투르게 시작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고.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내 모든 처음을 사랑한다고…….(161쪽~16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