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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말 | 백명숙    
글쓴이 : 사이버문학부    16-07-23 12:49    조회 : 3,746


 

책소개


화가이며 시인인 백명숙의 첫 시집 『말, 말』이 《시로여는세상》 색깔 있는 시집 시리즈 1권으로 나왔다.

백명숙은 화가이기도 하다. 그녀가 화폭에 채색하고 있는 이야기들의 수미(首尾)가 필경 그러하듯이, 그녀의 시적 사유와 환상 역시 많은 부분 신화 속 ‘아버지 찾기’의 전 여정이며, 자기 정체성을 탐험하는 지난한 파경, 또는 심볼레인이라 할 수 있다. 그 안에서 그녀가 발견한 것은 남편이고 아버지이며, 페르소나 이전의 여성성을 간직한 자신이다. 이 시집 『말, 말』에서 타자인 그들과의 만남은 결국 스스로 오래 분실했거나 방치하였던 자신의 조각들을 일일이 소환하여 맞추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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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환 시인

남편이 그녀의 삶 속에 “점자처럼”(「점자 같은」) 각인된 운명의 반려자라면, 가족사에서 삶의 향방에 가장 분명한 영향을 드리운 이는 아버지였던 듯싶다. 그가 “아주 오래 전” 그녀에게 한 “너 하고픈 대로 다 해라”라는 발언은 “씨말”이 되어 세상을 타진하고 견뎌내는 축심(軸心)이 된다. 세계에 대응하는 그녀의 태도는 “엄마”에게는 “거리귀신”이 든 “역마직성”(이상 「말타령」)으로 경계와 근심의 구실로 소용되지만, 아버지에게는 그녀의 실체를 인정하고 격려하는 근거로 작동한다. 그녀는 자신의 내부에 깃든 그것을 ‘말(馬)’이라는 상관물로 평생을 부양하고 조련한다. ‘말’은 “앞만 보고 내달리”기도 하고, “순종하고픈 그런 말”이기도 하면서 “냅다 뒷발질도 해”(이상 「말, 말」)댄다. 또 그것은 ‘말(言語)’로 언어유희의 수단이 되면서, “워워 고삐를 당겨도 멈”추지 않고 “불빛 아래 늘어진 그림자 속”에서 “화폭에 남아 있는 풀들”(이상 「어둠의」)을 무심히 뜯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말’이 아직 ‘말’이 되지 않았음을 잘 안다. “말이 될 때까지”(「말, 말」) 그녀에게 “도착하지 않을” “야간열차” 같은 “허기”(이상 「밤의 정체」)를 견디고, “맑은 하늘”에 걸린 “낮달” 같은 “외로움”(이상 「낮달」)에 시달리는 것 역시 숙명인지 모른다. 그것을 체감할 때마다 그녀는 자신의 안에서 끊임없이 “되새김질”하는 초식성의 동물처럼 “선한 눈”(이상 「아버지」)을 가진 아버지를 직접 만나러 모란공원으로 향한다. 거기에서 “길쭉한 손가락으로 엉킨 실을 차근차근 풀어주던”(「To Me, He Was So Wonderful」) 아버지의 손길을 감지하는 순간은 그녀에게 불쑥불쑥 “허기”와 “외로움”으로 도지는 삶의 신산(辛酸)을 이겨내는 힘을 충전하는 시간이며, 자신의 파경을 다시 맞추는 시간이다.

시집 『말, 말』에서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게 성에 관한 담론이다. 성을 관찰하는 백명숙의 시각은 문명과 윤리의 위리안치(圍籬安置)에서 벗어나, 그것이 지닌 골목과 골목을 그저 환하고 유쾌하게 드러낸다. 위트와 해학으로 조명하는 그녀의 성은 고답적인 준론峻論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생생하고, 여항의 패설(稗說)에서 비껴나 있기 때문에 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