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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의 마디    
글쓴이 : 김주선    26-03-01 13:24    조회 : 19

물의 마디 / 김주선

 

 불빛을 꿴 자동차들이 도로를 박음질하자, 붉은 강물이 흐르듯 도시의 밤이 출렁였다. 신호등 앞에 멈춰 선 차가 매듭 하나를 묶는 동안 뒤따라오던 차가 그대로 달려와 하고 박았다. 꿰어놓은 실 하나가 하고 끊긴 기분이었다. 다음 날이 되어서야 나의 뼈 마디마디가 소리를 냈다. 

 진료 대기 순서를 받고 기다리는 동안, 병원 대기실에 놓인 커다란 분수대에 마음을 뺏기고 말았다. 마치 계곡 하나를 옮겨온 듯 살아있는 산수화였다. 수반이 차오르면 물줄기는 굽어졌다가 펴지며 리듬을 탔다. 물의 마디가 물레방아처럼 돌고 도는 평화로운 순환이었다.

 생각해보면, 엄마도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의 기운이 강한 시어머니에게 데일까, 시집간 딸이 안쓰러웠던 모양이었다. 신혼 초, 엄마는 집들이 선물로 풍수용 실내 분수대를 사 왔다. 묵직한 뚝배기처럼 생긴 오지그릇에서 세 단계에 걸쳐 물이 흘러내리는 구조였다. 맨 아래 너른 물동이에는 자전거를 타는 소녀 조형물이 있었다. 아마도 엄마는 물의 조력으로 바퀴가 굴러가듯, 힘들지 않은 시집살이를 하라는 뜻을 담아 고르셨던 것 같다. 물레방아는 많이 봤지만, 자전거 바퀴는 처음이라 신기했고 내 마음에도 쏙 들었다.

 하지만 불의 기운보다도 학생 신분인 남편 때문에, 나는 가장이 아닌 가장이 되었다. 바퀴는 물의 힘으로 돌지 않았다. 내가 밟는 페달의 힘으로 물을 끌어 올려 다시 흘려보내는 느낌이었다. 결국 엄마는 분수대를 치우고, 대신 수증기를 뿜어내는 화수분 같은 가습기를 사다 주었다.

 고인 물이 썩는 건, 어쩌면 마디가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난겨울, 남한산성 계곡에서 나는 물의 형체를 또렷이 보았다. 그때였던 것 같다. 내가 처음으로 물의 마디를 본 것이. 얼어붙은 냇가 위에는 흐름과 굴곡, 굽이침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엑스레이 사진처럼 하얀 얼음 뼈가 보였고, 돌부리에 박혀 부러진 뼈마디도 보였다. 물이 만든 굳은살처럼, 고단한 수심이 전해졌다.

 계곡을 할퀴며 내려온 물길에는 도로 위 신호등처럼 크고 작은 돌멩이가 놓여 있었다. 무심히 흩어진 듯 보였지만, 사실 그 돌들은 물을 보호하고 지키는 조력자였다. 돌에 부딪힌 물살은 회오리모양의 매듭을 짓고 방향을 바꾼 다음, 속도를 늦추었다. 멈춤이 아니라 흐름을 위한 숨 고르기였다. 생의 고비를 지나온 시간의 표식 같았다. 대나무 숲 바람도 마디가 있다는데, 물인들 왜 마디가 없을까.

 어릴 적, 외가댁은 강가 근처였다. 여름마다 물난리를 겪었다. 벽에 줄무늬처럼 남은 물때 자국이 그해의 수위를 말해주었다. 어느 해는 대문을 넘어온 물이 살림이며 가재도구, 심지어 할머니의 신발과 밥그릇까지 모두 데리고 나갔다. 그날 밤, 우는 엄마 품에 안겨 물을 퍼내는 꿈을 꾸었다. 어린아이임에도 몸살이 난 듯 관절 마디마디가 쑤시고 아팠다. 그런 날은 어김없이 오줌을 쌌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땐 더이상 물난리를 겪지 않아도 되었다. 산사태가 집을 덮치거나 홍수로 떠내려가는 일은 다시 없었다. 강을 막는 다목적 댐이 들어섰고, 마을은 강에 자리를 내주고 집을 비워줘야 했기 때문이었다. 고향을 떠나지 못한 사람은 산비탈로 올라갔다. 완공된 수문이 닫히자, 청풍호가 완전히 물로 차오르기까지 수개월이 걸렸다. 외할머니는 마을이 점차 물에 잠기는 광경을 언덕에 올라가 지켜보았다. ‘오늘은 저 집까지, 내일은 저 논까지예감이라도 한 듯, 고향이 천천히 수장되는 걸 목격해야 했다.

 마지막 날, 할머니는 마당에 꿇어앉아 땅을 오래 쓰다듬었다. 그 손길은 마치 누군가의 마지막 얼굴을 기억하려는 듯했다. 아무 말도 없었지만, 한 줌의 흙보다 더 많은 말이 손끝에 담겨 있었다. 살구나무가 있던 돌담길, 마을 빨래터, 방앗간까지 모두 물 아래로 시나브로 잠겼다. 고향에 뼈를 묻고 싶어 했던 외할머니의 앞마당으로 물 들이치던 소리, 미처 익지 못한 살구가 파랗게 떨던 그 날이 아직도 선명하다.

 마을은 완전히 철거되지 않은 채 일부 도로와 묘지, 집터는 그대로 수몰되었다. 가뭄이 들어 수위가 낮아지면 수몰된 마을의 흔적이 일부 드러났다. 실향민들은 물 빠진 길을 따라 옛집 자리를 찾았다. 댓돌, 기와 조각, 깨진 사금파리를 들고 돌아오는 이들의 손에는, 유물이 아닌 물의 기억이 들려 있었다. 그 이야기들을 들을 때면, 나는 축축한 이불에 누운 것처럼 온몸에 냉기가 돌았다. 외가의 마루, 구들장, 군불을 때던 아궁이까지 물고기의 집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지금도 등줄기에 지느러미가 돋는다.

 댐에 가둔 물이 썩지 않는 건, 그 안에도 마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생의 마디처럼, 여전히 살구꽃이 피는 외가와 마당을 쓰는 할머니가 그 물속에 계신다. 물은 모양이 없지만, 대나무처럼 스스로 마디를 만들며 흐른다고 상상했다. 천년 묵은 물뱀의 등뼈처럼, 수백 개의 마디가 촘촘히 연결되어 유연하게 흐를 수 있었던 것이라고. 어디든 갈 수 있지만, 또 아무 데로나 흘러가지는 않는다. 수문이 열려야 비로소 구멍에 물길을 꿰어 바다로 달음질하는 것이다.

 냇물은 강으로, 강은 바다로 나아간다. 햇빛에 증발한 물이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산자락으로 스며든다. 다시 계곡이 되어 굽이굽이 굴곡진 수로가 된다.

 외가의 수몰은, 할머니와 엄마에게 커다란 마디를 남겼다. 강물이 자신의 뼈를 묻으러 바다로 가듯이, 외가가 잠긴 물도 지금쯤 바다에 이르러, 다시 하늘로 돌아갔으리라.

 비가 오려는지, 끄물끄물 날씨가 흐리다. 창밖은 벌써 빗물이 출렁이는 것만 같다.

 의사가 뼈 마디마디를 짚어보더니 별 이상이 없다고 했다. 몸을 추슬러 진료실을 나서는데 분수대의 물받이는 어느새 가득 차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졸졸졸 곱이치며 흐르고 있었다.

 <수필과비평 2025.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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