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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 초원에서 바이칼 호수까지    
글쓴이 : 김순례    15-02-27 16:00    조회 : 4,932
몽골 초원에서 바이칼 호수까지 (기행문)
 
 새벽 1시 30분 몽골 울란 바트로 공항에 내렸다. 간단한 출입국 관리절차를 뒤로하고 공항입구로 나가니 어둠이 우리를 반겼다. 어둠속에서 이슬 머금은 풀잎냄새가 코끝에 와 닿았다. 영종도 공항에서 기내에 기술적인 문제로 3시간이나 지연되었던 떨떠름함이 한 순간에 사라졌다. 하늘을 보니 휘영청 반달이 곧게 뻗은 나신의 자작나무위에 걸려있었다. 어둠이 짙으니 달은 더욱 밝게 주변을 밝혔다. 빛은 어두운 곳에서 더욱 자신을 밝게 드러내는 것을 보는 순간이었다. 문득 내일 일정 중 밤하늘의 별들이 어떻게 우리를 반길지 기대가 되었다. 몽골 바이칼 문학기행의 대단원의 막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테를지 국립공원 대초원이 이어진다.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록되어있는 해발 1600m 테를지 초원에는 군데 군데 게르가 포진되어 있었다. 때로는 소떼가, 때로는 말떼, 때로는 블랙 야크 떼들이 한가로이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차창밖에 비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영화를 보는듯했다. 그 초원을 말을 타고 달렸다. 생각은 영화처럼 마구 달리고 싶었으나 초보인 나를 그 녀석도 알아보는지 천천히 걸었다. 초원을 돌아오는 길엔 어느 정도 호흡이 맞았는지 제법 달려준다. 우리가 하나가 되었다. 기분이 상쾌해졌다. 사람도 서로를 알려면 시간이 필요하듯 생판 모르던 지구 저쪽에 살던 말과 나에게도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나 보다.
 
 저녁식사로 전통음식 허르헉(양고기 수육)을 먹고 몽골 전통 공연을 보았다. 다섯 음계를 두성으로 내는 득음의 경지인 독특한 노래와 춤을 관람했다. 캠프화이어를 하며 밤하늘의 별을 기대했지만 날씨가 흐린 관계로 별 구경은 무산되었다.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밤 게르에서 잠을 청했다. 기온차가 심한 초원지방은 8월인데도 장작을 떼야 한다고 굳이 난로에 장작불을 지폈다. 일행은 다 잠들었건만 나는 눈이 말똥말똥 잠이 오지 않았다. 게르 천장 투명한 유리로 구름사이 언뜻 언뜻 별이 하나 둘 깜빡였다. 곧이어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는 투명한 소리를 듣노라니 감회가 새롭다. 어디선가 사각사각 소리가 났다. 발자국소리 같다가 곧이어 또 사각사각…….
 호기심이 발동해서 전자 호롱불을 들고 밖으로 살며시 나갔다. 아니, 세상에 이럴 수가……. 숙소 문 바로 앞까지 말이 침범해서 이슬 먹은 싱싱한 풀들을 뜯고 있었다. 어둠을 밝히려 호롱불을 치켜들고 촉수를 더 밝혀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자신들의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한 마리, 두 마리, 셋, 넷, 아휴 잘 안보여···” 나로선 참 신기한 광경이었다. 어쩌면 낮에 내가 그의 잔등을 빌려 초원을 누볐을 애마가 휴식하며 포식하는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그가 나의 냄새를 기억하여 내일 헤어지기 섭섭해 나의 숙소문밖에서 나를 조우하러 왔는지도 모르겠다고 혼자 상상했다. 김유신 장군의 애마가 그가 자주 다니던 기녀의 집에 어느 날 말이 데려다 주었다던 일화가 떠올라 피식 웃었다.
 잠시 계단에 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이 걷히고 견우별 직녀별사이로 은하수가 가로놓여 있는 것도 어렴풋 보였다. 혼자 놀이에 밤이 너무 깊었다. 많이 아쉽지만 내일의 일정을 위해 안타까운 이별을 하늘에게도, 말에게도 전하며 침대에 나른한 육신을 묻었다.
 
 징기스칸의 나라 몽골, 그의 동상이 커다랗게 놓여있는 광장에서 강한 대륙의 냄새, 역사의 냄새, 조상의 냄새를 맡으며 침묵했다. 울란 바토르 시내에서 조금 벗어난 자이산 승전 탑 전망대는 몽골과 소련 연합군이 1939년 할흐(Khalkh)강 전투에서 대일전 승리 및 러시아군의 제2차 세계대전 참전 기념을 위해 1945년에 세운 기념탑이다.
전망대 입구에 우리의 독립투사 이 태준 열사 기념공원이 자랑스레 세워져있었다. 그는 일제 강점기의 불안정한 시대에 안중근의사를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독립운동에 가담하게 되었다. 독립운동 부상자들을 보면서 의사가 되기로 결심해 세브란스병원 의과대학에 입학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지금의 연세의대)에 뿌리를 둔 의과대학 재학생이었다. 세브란스병원에 입원 중이던 안창호의 권유로 항일비밀결사대에 가입해 여러 활동을 벌였으나 애석하게도 조국은 한일합병(1910)이 되고 말았다. 우여곡절 끝에 의대를 졸업하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였으나 신변의 위협을 느껴 중국으로 망명, 또다시 몽골로 옮겨 항일운동을 위해 안팎으로 도왔다. 나중에는 몽골 마지막 왕인 보그드 칸 8세의 어의(御醫)가 되어 ‘에르데닌 오치르’라는 높은 등급의 훈장을 받았다. 아쉽게도 그는 1921.2월 러시아가 몽골을 점령하게 되면서 어이없는 최후를 마감하게 되었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대한민국과 몽골이 함께 이곳에 그의 기념관을 세웠다. 먼 타국에서 우리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친 넋이 살아 있는 듯 오랫동안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대초원의 나라 몽골 울란바토르를 떠나 비행기로 한 시간 반쯤 지나 러시아 이르쿠츠크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우리는 세계 최대 담수호 바이칼 호수를 찾기로 했다. 바이칼은 해발 1500~2000m의 산으로 둘러 쌓여있고 담수량은 22,000 평방km로 ‘시베리아의 진주’로 불린다. 물밑 가시거리가 최고 40.5m라니 얼마나 맑고 큰 호수일지 기대가 되었다. 바이칼 호수 안에는 22개의 섬이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섬인 알흔섬으로 가기로 했다. 섬까지는 샤후르타 선착장에서 바지선을 타고 7분정도 들어 가야한다. 우리일행이 도착했을 때 선착장엔 심한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코앞에 섬이 보였다. 그것을 바라보며 한참동안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비바람은 더 거세졌다. 정착해 놓은 바지선과 대형버스까지 출렁거릴 정도의 거센 비바람에 파도가 출렁였다. 그 모습은 정녕 거대한 대양(大洋)의 성난 파도 그것이었다. 그 파도가 멈추기를 기다렸다.
 
 이번 여행은 서울에서 떠날 때부터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평소 한국의 빨리 빨리 정신에서 벗어나 여유와 기다림을 연습하는 수행의 시간이기도 했다. 3시간을 기다려도 파도는 멈출 줄 몰랐다. 큰일을 도모하기 위해선 물러설 때를 알아야 한다. 밤이 다가오고 있었다. 내일의 일정을 위해 알흔섬으로의 진출은 일단 후퇴하여 주변에 숙소를 빌렸다. 쉽게 이방인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는 바이칼호수가 잠시 얄밉고 섭섭했다. 예정에 없던 상황이라 일행들은 여기 저기 흩어져 숙소를 정하고 여정을 풀었다. 나와 룸메이트 둘은 통나무집 2층에 배정되었다. 방에 들어와도 귀신울음소리 같은 바람소리는 그칠 줄 모르고 밤새 창을 때렸다.
춘원 이광수의 문학 말기의 작품은 영(靈)의 구원 모색에 대해 토로한다. 그때 쓴 ≪유정≫에는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인정이다.’ 라고 서술하고 있다. 소설에서 바이칼 호수에 대해 묘사한 대목이 있다.
- 연일 풍랑이 높은 바이칼 호를 바라보면서 고국에 남긴 오직 하나뿐인 벗인 형에게 편지를 쓰고 있소. -(중략) - 우르르 탕하고 달빛을 실은 바이칼의 물결이 바로 어촌 앞의 바위를 때리고 있소. -(생략)
우리가 머물던 그날 밤 폭풍이 몰아치던 바이칼호수의 광경을 이광수가 서술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바이칼이 시베리아의 눈이라면 알흔섬은 바이칼의 심장이라고 불린다. 또한 샤머니즘의 시원지가 이곳 알흔섬이다. 한민족의 근원이며 문화유적의 시작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새롭다. 커다란 키에 코도 높고 눈은 움푹 들어가고 손발도 커서 마치 서양 사람을 보는 듯했다. 발에 맞는 신이 없어 남자 고무신을 신고 긴 곰방대를 물고 다녔다. 그런 할머니가 늘 새벽녘이면 장독대에 물을 떠 놓고 자손들을 위해 손을 모아 기도하는 것을 보았다. 손자들이 아프면 박 바가지를 엎어놓고 둥둥 소리를 내며 한 손은 아픈 곳을 문지르며 무슨 주문 같은 소리를 노래처럼 읊었다. 지금 생각하면 할머니는 외모나 정신이나 분명 러시아쪽 샤머니즘 혈통을 물려받은 게 틀림이 없는듯하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마을마다 성황당이 있었고 그 나무에는 오색 천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년 그리고 자손들의 성공을 기원하던 조상들의 풍습이 있었다. 길을 가다가 살짝 언덕 위에 돌무더기가 있었다. 돌무더기 안에 긴 장대가 꽂혀 있고 끝에는 오색 헝겊조각들이 달려있었다. 먼 길을 떠날 때 이곳에 들러 돌을 얻고 주변을 돌며 행운과 안녕을 빌고 떠나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우리의 성황당과 같은 느낌, 분명 우리가 한 뿌리에서 나왔음을 느꼈다.
 
 아침이 밝자 언제 그랬냐는 듯 하늘은 쾌청했다. 알흔섬을 뒤로하고 바이칼 호수 유람선을 타고 한 바퀴 호수를 돌기로 했다. 10명씩 배를 타고 호수를 돌았다. 러시아 보드카와 ‘오믈’(연어과 훈제생선)을 안주로 먹으며 바이칼에 드디어 몸을 실었다. 아침에 숙소 통나무집에서 일찍 일어나 절벽 주변 을 산책했었다. 해변을 돌며 호수 물을 손으로 직접 만지고 바람을 만끽했었던 순간과는 또 다른 느낌, 바이칼은 나를 안아 그 품으로 품어주었다. 하늘은 높고 햇빛은 빛나고 바람도 살랑살랑 노래했다. 지중해보다 더 푸른 하늘빛과 그 보다 더 맑은 호수물빛에 취하는 순간이었다. 내 버킷리스트 한 줄이 사라졌다.
 
 차창밖에 빗물이 줄지어 내리고 바깥 풍경을 보려고 닦고 또 닦아도 자꾸만 습기에 창문이 뿌옇게 흐려졌다. 창밖으로 자작나무가 줄지어 지나가고 있었다. 가끔씩 소떼들이 거리를 무단 횡단하는 바람에 버스가 급정거를 하기도 하고 출렁출렁 비포장도로를 춤을 추듯 달렸다.
 방금 전 관람한 발콘스키의 집이 자꾸만 눈에 아른거렸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의 안드레이 발콘스키의 집은 가히 충격이었다. 톨스토이의 숙부이기도 한 발콘스키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영화 필름처럼 지나간다. 1825년 러시아 최초 민주혁명 시도가, 그것도 기득권층 귀족장교들에 의해 시도되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자유, 평등, 박애 정신에 입각해 ‘농노제 패지’ ‘압제정치 패지’를 요구했던 혁명은 실패했다. 데카브리스트 혁명 주모자급들은 처형되었고 가족들은 귀족신분을 몰수당하여 시베리아로 유배당했다. 박물관이 된 발콘스키의 집은 전시된 가구며 모든 물건들이 그 당시의 것으로는 믿기지 않을 만큼 깨끗하고 근대적인 모습으로 보존되어있었다. 물건만 보아도 그들이 어느 정도의 상류층의 귀족들이었는지 가히 짐작이 갔다. 그곳에서 유배자들끼리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고 시베리아의 또 다른 교육과 문화의 선봉도시가 되었다. 어두운 회색 도시가 휴머니스트들에 의해 다시 꽃을 피우며 살아났다.
 
 폴란드 국민작가 스와보미르 므로제크는 그의 저서 ≪초보자의 삶≫에서 "혁명이란 방안에 옷장, 책상, 침대의 위치를 바꾸는 것" 이라 말했다. 이번 여행은 내게 분명 혁명이었다. 일상에 갇혀서 밋밋하게 살던 나에게 주는 보너스 였다. 여행을 다녀오면서 무언지 모를 뭉클한 것이 내안에 들어왔다. 몽골 대초원 이태준 열사, 러시아의 발콘스키도, 혁명을 시도했고 나 또한 다시 작은 혁명을 꿈꾼다. 창밖에 빗물인지 내 눈물인지 모를 물방울이 네 옷섶에 툭 떨어졌다.
 
                                                 2014. 8월 몽골 러시아 문학기행을 다녀오며···
 
                       <한국산문> 2015.2월  86쪽 (몽골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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