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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라지 꽃 피었네    
글쓴이 : 공해진    15-02-27 19:03    조회 : 4,340
버스터미널에 내렸다. 도로 건너편 밭을 습관처럼 바라보았다. 눈앞에 흰색과 보라색의 점들이 하늘거렸다. 도라지꽃이다. 꽃망울도 작고 창백한 보라색과 흰색의 꽃잎이 화려하기보다는 애잔하다.
 
47년 전이다. 10월26일 늦은 가을임에도 낮에는 더웠다. 두 딸 두 아들을 두고 아버지는 차마 가기 싫은 하늘나라로 가셨다. 우리 형제는 어려서 큰집 형이 맏상제를 맡았다. 큰아버지는 동생의 주검 앞에서 오열을 했고 아버지의 친구들은 슬픔을 감당할 수 없어 일까 관을 마구 찼다. 급기야 검붉은 피가 흥건히 흘러 나왔다. 나는 무서웠고 더 크게 울부짖었다. 타작마당에서 치러진 장례식에는 동네사람들로 붐볐다. 남을 의식해서라도 눈물이 날법하련만 청상이 된 엄마는 소처럼 큰 눈을 껌뻑거릴 뿐이었다.
 
돌아가신 분의 안식과 자손들이 발복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에 사람들은 좋은 묏자리를 찾고 찾는다. 안식도 발복도 사치였을까. 묘지는 모시밭 한쪽 구석진 자리에 물이 지적지적한 곳에 모셔 졌는데 절을 할 자리도 없었다. 봉분은 주변 뗏장으로 주섬주섬 급조로 만들어졌다. 밭 한 뙤기 아깝던 시절에 콩 한입사귀라도 더 거두라는 집안 어르신의 걱정스런 배려였을지 모르겠다. 아쉬움은 계속됐다. 그래도 공동묘지가 아닌 이녁 밭이었다.
 
이듬해 중학생이 된 나는 방과 후 산소에 들렸다 집으로 가는 것이 일상사가 되었다. 봄이 되어도 쇠뜨기 잡풀에 눌리어 잔디가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버짐 가득한 까까머리마냥 보기가 싫었다. 쑥과 잡초를 뽑아내고 잔디를 옮겨 심은 다음 가까운 도랑물을 고무신에 담아 묏등을 적셔 주었다. 그래야 될 것 같았다. 묏등에 꽃이 피면 우리들을 지켜 준다고 생각했다. 정신없이 가는 세월이 위안이었을까. 당시에는 놀아도 들에 가서 놀아야 했다. 열 가지 일을 끝내면 열두 가지 일을 시작해야 되는 것이 들일이었다. 무심한 세상은 큰 생채기 없이 강물처럼 흘러갔다.
몇 년 전 우회도로가 새로 만들어지면서 밭의 일부가 편입되어 아버지가 묻힌 그곳이 졸지에 도로변 땅이 되었다. 게다가 맞은편에는 버스터미널이 생겼다. 길옆 묘지는 사람 키만큼 웃자란 잡풀 때문에 을씨년스러웠다. 무엇보다도 터미널 승객의 시선이 가장 두려웠다. 일 년에 두 번을 벌초해도 키자람을 감당할 수 없었다. 당시 집안 어르신들의 결정대로 아무 말도 못하고 대사를 따랐지만 물기로 지적거리는 묏자리가 항상 거슬렸다. 밭은 공원지역으로 지정되어 더 이상 묘지로 쓸 수도 없었다.
 
귀신도 모른다는 무진년 윤달이었다. 아버님 묘를 이장하려고 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윤삼월 봄비는 아침부터 내렸다. 무덤을 개장해보니 물 구덕이었다. 먼 산을 보면서도 이내 소름이 바닥에서 치올라 눈물이 흘러내렸고 어금니를 깨물고 참았지만 힘이 빠져 들썩 주저앉고 말았다. 아픔이 없는 죽음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세포마저도 고통을 겪을 듯 한 아버지의 흔적을 보니 눈물이 났던 것이다. 육신은 그곳에서 물기 가득한 땅의 흙이 되어 있었다. 인간은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거대담론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위로한다며 귀에 들어오지 않는 몇 마디를 주워섬겼다. 비는 거칠 줄 모르고 종일 내렸다. 귀신은 윤달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결국 다음날로 이장을 미루어야 했다. 며칠 뒤 날을 받아 제를 올리는데 여태 말이 없던 엄마가 그제야 평온해 보였다.
 
죽으면 어디에 누구 옆에 묻힐 것인가. 어디에 묻힌들 무슨 상관이 있으랴. 장례는 자손이 치르는 것이라 죽은 후의 일은 내 맘과는 무관한 것이다. 화장을 해서 고향 시골에 뿌려달라고 요구를 한들 남은 자식의 마음이니 쓸데없는 요구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아버지의 묘지 옆에 우주의 쓰레기 정도는 들어갈 자리를 만들어 놓았다. 버나드 쇼의 묘비명처럼 "내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고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 산소였던 모시밭 묏터에 하얀색과 보라색의 꽃이 별모양을 하고 하늘을 향해 피어났다. 도라지는 햇볕이 잘 드는 비옥한 토양을 좋아하지만 아침나절에 잠깐 햇볕을 쪼일 수 있다면 그늘에서도 잘 자란다. 반세기가 된 그 자리에서 아버지는 흙이 되어 도라지꽃으로 피어난 듯 했다. 도라지꽃의 꽃말은 '영원한 사랑' 이다. 벌과 나비도 날았다. 자유의 흔적이 있었다.
 
기다림에 야윈 얼굴
물 위에 비초이며
가녀린 매무새
홀로 돌아앉다.
못 견디게 향기로운
바람결에도
입 다물고 웃지 않는
도라지 꽃아. - 조지훈(1952),<도라지 꽃> -
<<한국산문>> 2013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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