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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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네한테 물렸다. 끔직했다. 내가 어릴 때 본 지네는 작고 빈약했다. 요즈음 지네는 보톡스를 맞는지 아니면 성형을 했는지 통통하고 다리도 길고 마디마디에도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옛날 어른들은 지네를 잡아다 한약방에 팔기도 하였다. 어린 마음에 저 놈을 잡아다 팔면 먹고 싶은 사탕도 사먹을 수 있겠다 싶었다. 징그럽게 생겨 손으로 만지기도 무서운데 어른들은 끈을 가져와 잡은 지네를 묶어 바람이 잘 통하는 기둥에 매달아놓았다.
하루는 암 닭이 모이를 찾으며 마당을 돌아다니더니 이상한 것을 입에 물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길다란 지네를 입에 물고 마구 흔들었다. 도르르 말려진 지네다리가 국화꽃이 피기 전 꽃잎 같았다. 한참을 물고 생 몸부림을 치다가 지네를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닭은 부리로 지네를 콕콕 쪼아 댔다.
지네를 잡으려면 주둥이가 작은 항아리나 병을 준비하여 그 안에 먹고 남은 닭 뼈를 넣어 지네가 나올만한 곳을 고른다. 흙을 파고 주둥이만 나오게 하여 묻어두면 지네가 모여들어 그 속으로 들어간다. 마개를 막아 많은 양의 지네를 잡았다는 얘기도 있었다.
내가 살던 옆집 순이 엄마는 간 밤에 지네에게 물려 눈두덩이 부어올라 있었다. 동네아낙들은 또 술주정뱅이 남편에게 죽도록 얻어 맞아 그렇게 되었다고 단정을 짓기도 하였다. 술에 취하는 날이면 집안에 있는 농기구를 손에 잡히는 대로 들고 골목을 돌아다니며 휘둘렀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공포에 떨기도 하였다. 그녀는 남편에게 살아있는 지네를 많이 넣어 만든 술을 마시게 하여 그 독이 퍼져 죽었으면 하고는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흙 바닥에 주저앉아 울기 일쑤였다. 그녀의 집 선반이 있는 쪽에도 무명실로 묶은 지네가 주정뱅이 남편의 약인양 볼품없이 시커멓게 말라 비틀어져 매달려있었다.
친척할머니는 바람에 부딪혀 발도 몇 개 남지 않은 반 장애가 된 지네를 조심스럽게 빼냈다. 방망이와 놋그릇을 가져와 지네를 넣고 쿵쿵 빻았다. 가루가 되어 약재로 변하였다. 먹다 남은 막걸리에 지네 가루를 타서 손가락으로 휘휘 저어 허리를 심하게 다친 할아버지에게 주었다.
지네는 어혈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어 민간에서는 외상이나 타박상이나 갑작스런
동작으로 인하여 허리가 심하게 삐거나 하는 경우에 어혈성 요통 타박상에 효과가 있다.
어느 해 가을남편과 같이 시댁에서였다. 아무도 살지 않은 집은 지네가 나올 만한 곳이 많았다. 묵혀놓은 부엌이며 습한 방 안이 그랬다. 지네는 음습한 흙이나 썩은 나뭇잎 속에 사는 야행성 절지동물로서 독즙을 내어 작은 벌레를 잡아먹고 산다. 곤충, 거미, 지렁이, 귀뚜라미, 굼벵이 등이다. 전 세계에 약3,000종이 서식하고 있다.
오래된 방에 군불을 지펴야겠다며 남편은 솔가지와 장작을 아궁이에 넣고 성냥을 그어 불을 부쳤다. 매캐한 냄새가 났다. 방안 구석 틈새로 지네 다리가 움직이는 모양의 가느다란 연기가 올라왔다. 벽에는 말라붙은 나방도 박제가 되어 붙어있었다. 불기운에 놀란 벌레들이 나타났다. 내가 까치발로 걸으며”아이구 어떡해. 벌레가 막 나와요.” 하는 소리에 남편은 한 두 번 듣는 말이 아니라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신혼 때는 모기 한 마리도 잡아주더니 이젠 들은 척도 안 하네. 모기 잡는 약을 거의 한 통을 다 뿌렸다. 냄새를 맡고 어지간한 놈은 사망을 했다. 죽은 것들을 보니 서로 닮은 것들이 많아 가족이 몰살 된 것 같았다. 혹시라도 잠을 잘 때 가족을 찾아 나오면 어떡하나 무서웠다. 깨끗하게 걸레질을 하고 꽃 이불을 깔아 놓았더니 방 바닥이 따듯하였다. 문풍지가 바람에 파르르 떨렸다. 혹시 지네가 지나가다 내는 소린가 하며 “아이구. 무서버라.” 남편은 잡았던 내 손을 슬며시 놓으며 코를 골았다. 천장에 매달린 고추(고추모양)전구를 끄고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살짝 잠이 들었다. 문 구멍을 뚫고 누군가 방안을 들여다 보는 것은 아닐까, 마루에 미닫이 문을 달지 않아 문고리만 당기면 쉽게 문을 열수가 있다. 방문을 긁는 소리가 들렸다. 무엇인가 스르르 들어 오는 소리에 몸이 오그라들었다. 순간 “아~야.” 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 깜짝 놀란 남편은 벌떡 일어나 고추 전구를 켰다. 남편은 “어디야? 하며 내 몸을 수사반장처럼 수색했다. 손가락이 떨고 있었다. 나는 눈을 뜨지 않고 “뭔가 꾸물거리며 내 살을 꼭꼭 깨물고 있어. 꿈틀거리며 기어가고 있다. 어서 빨리. 옷 속에 움직이는 것을 꺼내.” 하며 온 몸을 흔들며 훌라후프 돌리는 시늉을 하였다. 남편은 “지네다.” 하며 내 팔 위에 붙어 있는 아주 큰 지네를 보여주었다.
지네는 여러 개의 마디로 되어 있는데 각 마디마다 1쌍의 다리가 있다. 모두합치면 100개나 된다. 몸을 움직이며 걸어가는 것이 유연하며 사람이 노를 젓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몸 빛깔은 흑색으로 독을 낸다. 물린 자리가 벌겋게 부풀어 오르고 상체기가 낫다. 지네의 이빨 자국이 들어간 곳은 벌에 쏘인 것처럼 계속 쑤시고 통증이 왔다. 퉁퉁하게 부어 올랐다. 남편은 아프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몸에 지네가 붙어 꾸물거리는 착각에 빠졌다. 방안 벽지그림이 지네로 보였다. 천정에서 주루룩 쏟아져 내릴 것 같았다.
남편은 지네를 잔인하게 죽이는 방법을 생각했다. “오늘은 네가 장사 치르는 날이다.” 하며 어떻게 복수를 할까 궁리를 하였다. 지네의 관을 신문지로 만들었다. 몇 겹을 싸더니 성냥을 들고 밖으로 나가 마당에 앉아 불을 부쳤다. 여태 살아오면서 나를 위해 남편이 복수에 불타는 눈빛을 한건 처음 보았다. 아주 작은 것에~. 지네의 기름진 몸을 화장시켰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아 재가 된 것을 쓸어 모아 아궁이 속으로 넣었다. 지네의 화장식이 두 번에 끝났다.
한번은 합천에 사는 할머니 댁에서 지네에게 물렸던 기억이 난다. 쌀쌀한 날씨에 이불을 덮고 자는데 팔에 대침을 놓았다. 할머니는 떨리는 손으로 지네를 잡았다. 리모콘으로 그 놈을 죽인다고 지네 몸에다 계속 눌렀다. 할머니 손등에 시퍼런 힘줄이 지네로 보였다. 이제 죽었다며 할머니는 무당이 객구를 물리고 던지는 칼처럼 그것을 마당에 던져버렸다. 물린 곳이 자꾸 쑤셨다. 왜 나만 물까. 이상해. 할머니가 건네준 연고를 바르는 척했다. 잠을 설치다 날이 밝아 방문을 열고 나가 그 놈을 발로 뭉개 죽이고 말겠다 하며 마당으로 내려가 보니 보이지 않았다. 닭에게 주었으면 갈기갈기 쪼아 먹었을 텐데 아깝다. 할머니는 “꼭 한 마리가 죽으면, 한 마리가 또 나타나느니라.” 하고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아침에 부엌에서 밥을 짓는데 발등에 뭔가 꼭 깨물어서 내려다 보니 간밤에 본 크기의 지네가 기어가더라는 것이었다. “지네 짝이 나왔네.” 하며 발로 밟아 죽였다. “이젠 안 나올끼다. 집 옆에 대나무 밭이 있어 자주 나온다.”고 했다.
박경리의 <<토지>>에 보면 ~~큼직하게 생긴 지네가 발 밑을 지나갔다. “한 마리가 나오면
또 나올깁니더.” 화전민 아낙은 웃으며 말했다. “한 마리가 또 나와.” 치수의 얼굴이 새파래진다. “내외간이라 한 마리를 찾아서 나올깁니더. 음향의 이치니께요.” 얼마 후 아닌 게 아니라 죽은 놈과 꼭 같은 크기의 지네가 나타났다. 치수는 호랑이보다 지네를 더 무서워했다. 그날 밤 치수는 밤 새도록 지네에게 쫓기는 꿈을 꾸었다.. 는 내용이다.
일년에 한 두 번 시댁에 가지만 잠을 자고 오는 날은 극히 드물다 승용차가 있어 일을 보고 바로 올라 올 수 있다. 지네 때문에 남편에게 어리광도 부려보았다. 죽을 만큼은 아프지 않다는 것을 남편은 알면서 지네를 내가 보는 앞에서 아주 독한 마음으로 죽이고 또 죽였다. “이젠 안 아프지요.” 웃는다.
고향에 사는 할머니는 전화로 “지네에게 물린 곳은 괜찮야.”하며 걱정을 해주었다. 어머니처럼 돌봐주시던 할머니께 안부 차 들리곤 한다. 그렇게 상처가 오래 가지는 않았다. 꿈에서라도 지네가 나타나면 어떡해. 지네는 무서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