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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사장 사람들 2    
글쓴이 : 유시경    15-07-31 00:55    조회 : 9,387

공사장 사람들 2

 오십 보, 또 오십 보, 다시 오십 보쯤 걸을 때마다 인부들이 맨홀뚜껑을 열어젖힌 채 블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매 해 이맘때면 마치 입동준비라도 하듯 노후 된 하수구 배관을 교체하거나 보도를 다시 깔고 전신주를 재정비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본다. 위로는 전선 다발을 어깨에 감은 채 전봇대를 오르는 사내들, 밑으로는 연장을 벨트처럼 두르고 맨홀 속으로 들어가는 인부가 보인다. 연장을 나르고 지반을 고르는 남자들. 그들은 둥근 안전모를 쓰고 고무 입힌 목장갑에 무거운 워커를 신고 있다.

 오피스텔이나 상가건물 짓는 일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콘크리트를 굳힐 때마다 건물은 높고 넓어진다. 레미콘 펌프차량의 엄청난 소음 속에서 사람들의 몸짓이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한 사내가 기다란 호스를 붙들고 힘겹게 ‘공구리(콘크리트 타설)’를 치고 있다. 가까이서 보자니 그 모습이 마치 격렬한 춤사위를 벌이는 것도 같고, 성난 아나콘다와 사투를 벌이는 것도 같다. 또 마치 거대한 대롱으로 지면에 물감 흩뿌리기를 하는 것도 같다. 호스를 껴안은 채 콘크리트를 쏟아 붓는 남자의 얼굴에 걸쭉한 흙물이 사정없이 튄다.

 인부들이 수동적으로 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평지를 만드는 것은 연장을 쥔 그들의 손목과 팔뚝에서 나오는 힘이다. 그네들의 말씨는 껄껄하고 뻣뻣하지만, 그것은 나 같은 식당 여자가 받아들이기에 여과가 없고 거칠다 못해 더없이 순박해 보이기까지 하다. 노동의 휴식을 맞는 해거름의 밥집들이 ‘시옷과 ’지읒’으로 적절히 혼합된 그들만의 언어에 물드는 탓도 거기에 있다. 밥과 노동은 연인 사이와도 같은 거라서 인부들에게 한 끼의 식사는 구원처럼 느껴진다. 그들의 밥 때는 ‘세 끼니’라는 규칙에 맞추기 어렵다. 시시각각 고파오는 허기는 새참을 통해 수시로 해결해야만 한다.

 ‘밥심’으로 사는 사람들의 입맛은 한결같다. 그들은 밥과 일에 대한 애착이 강해서, 노상 푸짐하면서도 맵고 진하게 끓어 넘치는, 눈물 쏙 뺄만한 ‘진한’ 음식을 요구한다. 그리하여 저녁내 다 같이 모여앉아 뜨겁게 밥술을 넘기며 그날의 일과를 마무리한다. 팍팍하고 건조한 가을 날, 찐득하고 축축한 어조로 대화하길 즐기는 남자들. 이를테면 하루치 할당량을 채웠다는 자축처럼, “쪼록!” 소리가 나도록 잔을 비워낸 뒤의 걸쭉한 입심들이 세상을 열 번도 더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이다. 잔과 혀의 공명(空明)을 통과한 알코올과, 목구멍을 타고 넘어갈 때의 그 미묘한 마찰음이 한 종지 단촛물 위로 섧게 울려 퍼지는 것을 듣는 일은 어렵지 않다.

 음식에 충직한 공사장 사람들. 그들은 쥔장더러 “아이고, 배고파 죽겠네. 밥 좀 많이 줘요. 건더기도 퍽퍽 좀 넣고. 국물도 넘치게. 묵은지도 숭숭 좀 썰어 주고요.” 하고 애원하다시피 주문한다. 밥 한술 움푹 떠서 입안에 밀어 넣고 술잔을 마주친 뒤, ‘×부럴’ ‘×같은!’ 따위의 욕설을 적절히 섞어내면, ‘얼씨구!’ ‘잘한다!’ ‘그렇지!’ 하는 판소리의 추임새 정도는 못되더라도 그대로 한이 되고 흥이 되는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지극히 천진난만하고 솔직해서 해학과 잔정이 적절히 배어난다. 교양과 품위로부터 거세당한 자들만의 천진한 세계가 날것의 대화 속에 비축되어 있다고나 할까.

 나도 이젠 어느 정도 세파에 물들긴 들었나 보다. 아니 푹 절었다고 할 수 있으려나. 내 눈엔 ‘진짜 사나이’일 것만 같은 공사장 일꾼들의 눈물겨운 입담에 “이런 개발! 아니, 그런 새발이? 정말 그래요? 저런! 그럴 수가!” 하며 얼싸 좋구나, 지화자 좋다 장단 정도는 맞추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만 듣는다면 아무런 맛도 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밥을 짓는 나도, 이를테면, 공사판 사람들처럼 노동의 틈새에 낀 일개 잡역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닌지. 공사장 사람들의 욕설과 음담(淫談)에 맞춰 흥도 나고 자유로워지기도 하는.

 -2014년 ≪군포시민문학≫겨울호 발표, 수필집 ≪냉면을 주세요≫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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