偶然은 歷史다
박유향
국립수산과학원 자료에 의하면, 꽁치는 동갈치목 꽁치과에 속하는 한류성 바닷물고기다. 수명은 1.5~2년. 산란회유와 색이회유를 하며 주로 요각류(蟯脚類), 단각류(單脚類) 등 동물성 플랑크톤을 먹이로 섭취한다.
일년 내내 가장 싼 생선에 속하며 비타민A, D 칼슘 철 등이 풍부한 물고기다. 가격부담도 없고 영양가도 풍부한데다 맛까지 좋아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 해 5만톤씩 먹어치운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동갈치목 꽁치과에 속하는 한류성 바닷물고기, 산란회유와 색이회유를 하고 요각류 단각류를 먹고사는 길고 뾰족한 생물체, 바로 꽁치A의 일생에 대한 보고서다.
북태평양의 검고 깊은 바다,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꽁치A는 자신의 운명과 사명에 대한 아무런 인식이 없이 태어났다. 그는 요각류와 단각류를 먹으며 친구들과 함께 푸른 바다를 힘차게 헤엄친다. 그가 뾰족한 입을 내밀고 물위를 솟구치면 바다 위엔 투명한 물방울이 튀었다. 은빛 비늘 위로 투명한 물방울이 떨어지면 다시 수천 개의 은빛 물방울이 튀었다. 가끔 상어나 고래 같은 포식자의 습격을 받으면 마치 번지점프 선수처럼 공중을 점프했다가 바닷물 위를 쏜살같이 스치며 헤엄쳤다. 그러다 마침내 한반도 인근 동해안에 다다른다.
그리고 추운 겨울이 시작되는 12월 어느 날, 꽁치A는 어부B의 꽁치잡이 어선 그물에 걸리고 만다. 꽁치와 인류와의 조우는 그렇게 이루어졌다.
어부B는 꽁치A를 동해안 포구에 나와 있는 수산물 도매업자에게 판다.
마침 그 해안도시에는 불가마 찜질방이 새로 생겨 화제가 되었는데, B는 고단한 몸도 누일겸 새로 생긴 찜질방도 구경할 겸 꽁치A를 판 돈으로 찜질방에 가서 찜질방의 명물 구운 달걀을 사먹는다.
찜질방에서 구운 달걀을 팔던 C양은 그때 마침 애인으로부터 카카오톡으로 결별의 통지를 받고 슬픔에 잠겨있던 중이었다. 매정하게도 채팅방에서 ‘나가기’까지 하고 대화를 끊은 애인을 원망하면서 달걀을 판 그녀는 집에 가는 길에 B에게 받은 돈으로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신다.
실연의 아픔에다 과음까지 겹친 C양은 길에서 넘어지고 만다.
때마침 그 옆을 지나가던 D는 길에 넘어진 C를 보고 손을 건네 일으켜 주는데, 그 순간 그들 위를 날아가던 참새가 D의 머리 위에 오물을 떨어뜨린다.
D는 하필이면 그 순간 하늘에서 이물질이 떨어진 것을 두고 신의 계시라고 판단, 운명의 여인 C에게 적극적인 구애를 하기에 이르르고, 실연의 상처가 채 가시지 않은 C는 이것이 옛 애인에게 복수할 절호의 챤스라고 생각하고 D의 구애를 받아들여 결혼한다.
그리고 곧 그들의 아기E가 태어나는데, E는 태어나면서부터 비범하다. 왜냐하면 지난날 D가 맞은 참새 오물에 섞여있던 벤조피렌 성분이 D의 모공을 통해 체내에 흡수되고 염기 변화를 일으켜 유전자 변이를 일으킨 것이다. 그리하여 이 돌연변이 유전자를 이어받은 E는 뜻하지 않게도 천재가 되고, 그 천재는 성장하여 훗날 대한민국 과학기술발전을 선도하며 인류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된다.
한편 꽁치A는, 수산물 도매업자의 트럭에 실려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간다. 양천구의 S마트 생선코너 담당자는 새벽에 노량진 수산시장에 가서 꽁치A를 경매로 사들여 마트 생선코너 좌판에 눕혀놓는다.
S마트 인근에 살던 여인P는 그날도 어김없이 마트에 가서 카트를 밀며 시장을 본다. 그리고 생선코너에 와서는 맨날 그렇듯 값비싼 민어나 도미 같은 생선을 살 것처럼 폼을 잡다가 결국 꽁치A를 손가락으로 찌를듯 가리키며 큰 소리로 외친다. “그럼, 이건 얼마예요?”
일금 3천원을 주고 꽁치A와 그의 친구 둘의 소유권을 이양받은 여인P는 꽁치가 담겨진 검은 봉지를 덜렁덜렁 흔들며 집으로 온다.
두 시간 후, 여인P는 프라이팬을 꺼내 가스렌지에 올리고, 점화를 시킨 후, 프라이팬을 섭씨 150°C로 달군다. 그리고 식용유를 그 위에 찌익 뿌린 다음, 바로, 문제의, 바로 그, 꽁치A를 처어억 올린다.
지글지글지글지글 감당하기 어려운 뜨거운 기름이 꽁치의 온몸에 닿는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열기가 꽁치의 살을 단단하게 익히고 껍데기를 노릇하게 태우기 시작한다.
그 사이 여인은 꽁치 굽는 기름이 가스렌지에 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프라이팬 뚜껑을 찾는다. 뚜껑이 보이지 않자 그녀는 임시방편으로 그날 아침 신문을 접어 프라이팬 위에 툭 올려놓는다. 그리고 꽁치 굽는 동안의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무심코 기사를 읽어내려 간다. 그런데 마침 기사 내용은 한 할머니가 평생 시장에서 나물을 팔아 모은 재산을 사회에 기부했다는 이야기였고, 기사를 다 읽은 순간 뜻하지 않은 일이 그녀에게 일어난다. 글을 읽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뭔가가 뜨겁게 올라오는 것을 경험한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도 앞으로 선행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심, 꽁치 굽다말고 갑자기 새사람으로 거듭나 버린다.
프라이팬에서 내려진 꽁치는 접시에 담겨 저녁식사 식탁에 올려진다.
P여인과 그녀의 남편, 그리고 그녀의 아들은 사활을 건 젓가락질을 꽁치A에게 해댄다.
한 가족 구성원들의 집념에 찬 젓가락질에 의해 꽁치는 껍데기가 벗겨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내장이 드러나고, 갈비뼈들 사이에 붙은 작은 살점들까지 너덜너덜해지면서 점점 추악한 형상으로 변화해 간다.
그리고 마침내.
북태평양 깊고 푸른 바다에서 은빛 비늘을 반짝이며 유영하던, 상어와 고래를 보란 듯 날쌔게 피해 다니던, 요각류와 단각류를 맛있게 먹던, 뾰족한 입을 불쑥 내밀고 물위에 솟구쳤다가 수천 개의 은빛 물방울을 남기고 다시 쏜살처럼 물살을 가르던, 동갈치목 꽁치과에 속하는 그 꽁치, 꽁치A는 서울의 한 가정 저녁 밥상에서, 오장육부를 드러낸 채, 찌꺼기가 더덕더덕 붙은 볼품없는 뼈를 남기고 장렬하게 최후를 맞는다.
인류 역사에 족적을 남긴 꽁치의 유해 앞에서 3초간 묵념.
(에세이스트 55호 2014 05-06)
(2013 여성조선 문학상 수상작(가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