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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박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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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짓말    
글쓴이 : 박유향    15-11-17 13:23    조회 : 3,411

 

거짓말

 

박유향

 

언젠가 분식점에서 어묵을 먹다가 문득 고뇌에 빠진 적이 있다. 진실에 관한 것이었다. 인간은 진실해야 하는가, 하는 나름 철학적 성찰을 하기 시작했다. 왜 하필 어묵을 먹다가 진실에 대한 사유를 하게 되었는지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묵과 진실은 별 관계가 없다.

아무튼 나는 진실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왜 언제나 진실해야 하는가? 어떤 사람이 타인의 진실을 알아야 할 권리가 있는 걸까? 왜 본인과 관계도 없는 진실을 알려고 하는가? 거짓이 드러났을 때는 왜 분노하는가? 나의 진실을 남에게 말해야 할 의무가 있는가? 어째서 사람들은 진실을 강요하고 강요당하는가? 나의 진실을 나만 가지는 것은 어째서 허락되지 않는가?

어묵을 다 먹고 국물을 홀짝 마시면서, 나는 결론을 내렸다. 진실의 강요는 부당하다고.

이후 한 친구를 만났다. 대화 도중 친구는 아까 뭘 먹었냐고 물었다. 그리고 나는 이 '진실을 알 권리가 없는 자'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떡볶이".

내가 사실은 어묵을 먹은 것을 떡볶이 먹은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나 봤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진실을 이야기 하든 거짓말을 하든 친구에겐 상관이 없었다. 역시 나는 진실을 말할 필요가 없었다.

이후 난 거짓말 놀이에 빠졌다.

이를테면, 누군가 "그거 어디서 샀니?'라고 물으면 H백화점, 이라고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L백화점"이라고 말한다든지, "어제 몇 시에 집에 들어갔어?" 물으면 다섯 시, 라고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역시 아무 이유 없이 "네 시"이라고 한다든지.

거짓말을 밥 먹듯 하다 보니 앞뒤가 안 맞는 일이 자주 벌어졌다. 그럴 땐 역시 거짓말로 무마하면 탈 없이 넘어갔다. 아무도 그다지 의심하지 않는 눈치였고 내가 했던 말을 기억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처음 얼마간 나는 나만의 은밀한 진실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쾌감을 느꼈다. 유일하게 나만 알고 있는 진실이 많아질수록 부자가 되어가는 느낌이 들었고 진실은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이 놀이도 자꾸 하자 금방 시시해졌다.

게다가 아무리 봐도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모르고 나만 알고 있다는 건 그것이 무엇이 됐든 별로 의미가 없는 것 같았다. 세상에서 나 혼자만 알고 있는 진실이 도대체 무슨 가치가 있단 말인가. 아무도 상관 안하는 거짓말은 누구도 관심 없는 진실만큼이나 허무하고 심지어는 쓸쓸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그만뒀다.

    
 
한국산문   2014.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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