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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얘야! 집에 가자    
글쓴이 : 최기영    16-04-22 20:40    조회 : 5,303
얘야! 집에 가자
 
시간이 지나도록 전화가 오지 않았다. 오늘은 농성하지 않는 건가? 손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다 쳐다본 TV에서는 북한 장거리 미사일이 반복적으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가 그런 나를 바라보며 무슨 일 있냐고 물었다. 나는 못 들은 척하고 전화기만 바라보았다. 친구는 결국 괘씸했는지 가겠다고 일어서는 그를 잡아 의자에 앉히며 잠깐 기다려 달라고 했다. 친구는 기대했다는 듯이 반색을 하며 오랜만에 한잔하고 싶어, 이미 마누라에게 늦게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주(酒)님을 받들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친구가 여간 심심했나 보다.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술 마시는 재주밖에 없는데 말이다. 남들처럼 술을 잘 마시거나, 동무들 뒤치다꺼리를 할 정도도 못 되는데, 더욱이 술버릇이 좋지 않다. 기껏 할 줄 아는 것이 술기운을 빌려 욕하는 특기밖에 없는 나와 곡차를 마시겠다고 했다. 어찌 되었건 고마웠다. 난 전화기를 호주머니에 넣어 버렸다.
시간이 꽤 지난 것 같았으나 어머니로부터는 여전히 전화가 없었다. 물론 내가 먼저 전화를 할 수도 있지만, 당신이 필요를 느낄 때 이외에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갑갑한 일이지만 나이 든 노인의 습관이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부친이 가시고 난 후, 몇 달 동안 저녁 퇴근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어김없이 전화했다. 평소 카랑카랑하던 목소리 대신 힘 빠진 모깃소리를 내며 때가 되었는데 퇴근이 멀었느냐, 캄캄한데 아직 밥도 못 먹고 있으니 배가 고프다. 일이 많이 바쁘냐, 그래도 밥은 먹고 해야 한다며 전화통이 불이 났다. 나는 아기를 달래듯이 조금 후에 가겠다고 하면 기다리겠다고 하시면서도 오 분도 지나기 전에 다시 전화를 했다. 저녁 끼니를 놓친 아쉬움보다는 부친과 함께 있을 때 느끼지 못한 고독감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안쓰러웠다.
그때마다 하던 일을 멈추고 급히 집으로 달려가 어머니를 다독거려주곤 했다. 그럼에도 혼자 있는 시간이 반복될수록 병적으로 변해갔다. 자식으로부터 버림받지 않았다는 것을 매번 확인하는 과정 같았다. 나는 이를 자기방어적인 농성이라 했다.
수년 전이었다. 팔순이 넘은 부모님이 산속에서 생활하는 것이 안타까워 청주로 모셔왔다. 몇 년간 빈집으로 방치되어 있던 농가를 임대해 수리를 마친 후 기거할 수 있도록 했다. 부모님의 의사와 상관없이 아들이 가까이서 건강을 챙기겠다고 했다. 피보호자였던 자식이 보호자가 되면서 내린 결정이었다. 그러나 도시화 되어버린 농촌엔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동무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오로지 다람쥐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에 쫓기는 내가 유일한 말벗이 되어줘야 했다. 다행히 하루 24시간 내내 방송하는 위성방송이 있어 나름대로 벗이 되어주었다. 방문 요양사가 한나절 잠시 보살펴주기는 하지만 외부와 단절된 생활은 토굴 속으로 내던져지지 않았을 뿐 고려장이나 마찬가지였다.
저녁 시간이 한 참 지났는데도 전화기는 조용했다. 분명 내게 미안해하면서 마비된 손을 억지로 움직여 저녁을 해결하는 모양이었다. 힘들게 냉장고를 열어 반찬 통을 꺼내놓고 데워먹을 음식을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계실 것이다. 불편한 몸으로 차린 저녁상이 사고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다행이지만 작은 사고라도 난다면 정말 큰일이었다. 자신의 육신을 지킬 힘마저도 없다. 초조해졌다. 잠시 망설이다 북한 위성이 날아가는 소리보다 시끌시끌한 신문과 특별한 생각이 없이 시간 보내기 딱 좋은 산문집 한 권을 꺼내 친구에게 내놓고 기다리라고 했다.
집안은 조용했다. 골목 끝자락에서 나는 발소리만 들어도 컹컹거리던 눈치 빠른 강아지마저도 짖지 않았다. 시끄러운 TV 소리만 집안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불안한 그림자가 획 지나가는 것 같았다. 흙마루에 신발을 벗는 둥 마는 둥 소란스러운 마찰음을 내는 미닫이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나를 힐금 쳐다보며 “왔냐?” 한마디 하더니 화석처럼 굳은 채 텔레비전만 바라보고 있었다.
TV 화면엔 공상과학영화에서 보았던 것 같은 비행체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지상 몇 백 키로 밖에서 날아가는 적의 미사일을 요격(邀擊)시킬 수 있는 최첨단무기라고 아나운서는 친절하게 설명했다. 곧이어 군복을 입은 한미 연합군 합참의장과 장성들이 모여 회의하는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곧 전쟁이 터질 것 같았다. 그들은 한반도에 사드를 배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사드는 고고도 미사일이기 때문에 지상 40km에서 150 사이에서만 작동한다고 했다. 좁은 한국 땅에서 필요할까 싶었다. 그럼에도 수조원이 든다는 무기체계를 갖추겠다고 했다. 위정자들의 속내를 알 수가 없었다. 현재 경제는 IMF가 다시 올 수 있는 불황이라고 한다. 지금은 사드가 아닌 복지 예산을 늘려야 하는 것 아닌가? 위정자에게 국민이란 무엇이냐고 묻고 싶었다. 그들은 여전히 기하학적인 비용을 부담하더라도 사드를 한반도에 꼭 배치해야 한다고 했다. 차라리 사드는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미국의 패권을 지키기 위해 필요하다고 솔직히 말한다면 이해할 것 같았다.
나 역시 TV 속으로 빠져들어 화석처럼 서 있을 때 어머니는 고개를 돌려 말했다.
“얘야, 나 어차피 죽을 거라면 고향 가서 죽어야겠다. 그때도 그랬어. 이승만 대통령이 매일 라디오 뉴스에 나와 적을 단번에 무찌를 수 있다고 점심은 평양 가서 먹고, 저녁은 함흥 가서 먹자고 했어, 그런데 혀 무른 소리로 방송을 하고 난 다음 날이면 꼭 애매한 사람들이 죽어갔지. 그 짓이 몇 번 반복 되는가 싶더니 결국 전쟁이 터져 수백만이 죽었어. 이제 또 사람들이 죽을 것 같다. 나 무섭다. 이왕 죽을 것 같으면 고향 가서 죽고 싶어. 저 봐라. 저건 전쟁이야.”
“어이구 엄마는 무슨 말씀이세요? 전쟁이 왜 나요. 그럼 끝인데, 누구는 살 것 같아요”
“모르는 소리 말아라. 자기들은 안 죽을 줄 아니까 문제지. 네가 몰라서 그래, 곧 난리가 난다. 무섭다. 고향 집에 가자.”
암담했다. 오늘까지 어머니는 밥을 위해 농성을 했다. 그러나 내일부터는 밥보다 더한 생명, 생존을 위해 고향으로 피난을 떠나자고 지금보다 심한 농성을 할 것 같다. 매시간, 아니 생각이 날 때마다 전화로 나를 괴롭힐 것이다. 텔레비전을 치워버리면 괜찮을까? TV를 없앤다고 농성이 멈춘다면 백번이라도 치우겠다. 하지만 생존을 위한 어머니의 농성은 더 맹렬해질 것 같다. 차가운 밤하늘에 별들이 유난히 밝게 빛나고 있다. 나도 어머니와 같이 농성을 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이다.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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