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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의 꿈    
글쓴이 : 박병률    16-07-02 10:19    조회 : 6,946

                                     아내의 꿈

                                                                        

   7번 국도를 달리고 있을 때 아내가 전화를 받았다,

   “야야, 언니다. 학적부에는 집에서 부르던 옥경이로 되었더라. 서류 잘 받았다 카더라.”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카랑카랑했다. 이어 언니가 초등학교에 가봤느냐고물어보는 걸로 봐서 아내가 언니하고 통화하는 것 같았다

   “생년월일도 틀려, 내가 주어온 자식인가?”

   대화가 진행될수록 아내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높아지고 차 안 공기는 냉랭했다운전하면서 옆자리에 앉아있는 아내를 힐끗 쳐다보았다. 아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잠시 후 통화가 끝나자 소낙비가 한바탕 퍼붓고 지나간 것처럼 차 안이 고요했다. 얼마만큼 가다가 무슨 일이 있었어?” 라고 아내한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다고 이름을 거꾸로 써?”

   아내는 성이 안 풀리고 화가 누그러지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우리 때는 주로 동네 이장이 맡아서 출생신고를 했지?” 라고 한마디 거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꼴이 되었다.

   아내가 중학교에 가려고 입학서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문제를 발견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졸업 증명서를 떼려고 주민등록상의 경옥이라는 이름을 넣던 담당자가 혹시, 옥경이가 아니냐고 되물었단다. 그래서 가족 관계 증명서 등 본인 확인을 위한 서류를, 본인이 졸업한 초등학교에 보내주고 언니한테 증인을 서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아내는 9남매 중 넷째다. 아내 밑으로 아들 셋을 봤다고 부모님한테 복덩이라며 귀여움을 독차지했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런 까닭에 3년간 연애를 하면서도 서로 학벌은 묻지 않았다. 그렇게 결혼해서 딸 셋을 두었고 아내는 올해 환갑이다.

  옥경이라는 이름을 처음 듣고 어디서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았는지 어느 땐가 물어도 대답 없는 옥경이라고 나는 무심코 태진아 노래를 흥얼거렸다. 아내랑 한 살 차이라 친구처럼 농담도 주고받는 처지였으나 예전과 달랐다. 한동안 말없이 달리다 보니 어느새 망양정 근처, 우리가 예약한 민박집에 도착했다. 망양정은 해안에 있는 정자로 관동 팔경의 하나이다. 해돋이를 구경하는 명소로 널리 알려졌고 아내의 고향이기도 하다. 근처에 성류굴이 있고 왕피천에서 은어가 논다. 조금 떨어진 곳에 죽변항, 덕구온천도 있다. 지금은 대게가 많이 잡히는 철이다. 나는 이런 풍경이 좋아서 해마다 이곳을 찾는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처럼 회를 실컷 먹고 소화도 시킬 겸 바닷가 모래사장을 걸었다. 갈매기가 가끔 하늘을 천천히 날고 방한복을 입은 낚시꾼이 세월을 낚고 있다.

   아내와 손잡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얼마나 걸었을까? 아내가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어릴 적'옥경이는 중학교에 보내지 말자, 아들을 유학 보내고 가르쳐야지'라는, 부모님이 잠자리에서 나누는 대화를 들었다는 것이다. 아내 이야기를 들으며 모래사장을 지나 방파제 옆 자갈길을 걸었다. 자갈이 발에 밟히면서 덜컹거릴 때 잠시 뒤를 돌아봤다. 아까 날이 섰던 자갈들이 제자리를 잡은 듯 내가 걸었던 흔적이 지워졌다. 지워지는 흔적을 보려고 뒤로 돌아서서 잠시 뛰었다. 몇 발짝 못 가서 뒤로 넘어졌다.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고 밀려갈 때, 나는 둥글고 얄팍한 돌을 물위로 스치듯이 담방담방 튀기어 가게 던졌다. 물수제비를 뜬 것이다. 그러자 통? ? ? 통 거리며 내 안에 울림으로 다가왔다.

   아내는 나와 결혼해서 신혼 초부터 부모님을 모시고 한집에 살았다. 내 동생이 중학교 2학년, 6학년, 막냇동생이 초등학교 3학년이었는데, 동생들이 고학년이 될수록 아내는 아침마다 도시락을 두세 개씩 쌌다. 그때는 세탁기도 없었다. 어디 그뿐인가. 외사촌, 사촌 동생들까지 취직한답시고 집에 한 두어 달 식사 길게는 일 년 정도 교대로 머물렀다.

   세월의 흔적을 꺼내보며 아까 자갈길을 걸었던 생각이 떠올랐다. 파도에 밀리고 비바람에 다져진 자갈이 여러 모습을 띠고 있었으므로. 공기놀이하기에 안성맞춤인 돌부터 오이지 담글 때 숨 죽으라고 눌러놓는 넙죽넙죽한 돌까지. 모가 나고 날이 섰을 법한 자갈들은 한결같이 두루뭉술하다. 둥글둥글한 것이 어쩌면 아내의 마음 같다.

   마치 새싹이 두꺼운 흙을 뚫고 세상 밖으로 나오듯, 아내는 지금 중학교 입학식 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이왕에 시작한 거 대학까지한국어 전공과목을 염두에 두고, 졸업하면 이주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하고 싶단다. 나는 아내의 꿈이 이루어지길 응원할 것이다.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에 흠뻑 젖어 있을 때 아내가 노래방을 가자고 재촉했다. 노래방에서 나는 옥경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았는지, 불러도 대답 없는 복덩이라고 노랫말을 바꿔 부르며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천장에 매달린 오색 전구가 아내의 주름진 손마디를 빤히 들여다본다. 마디마다 새겨진 삶의 흔적을

 

                                                                                                   한국산문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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