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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밥족이 초대하는 것들    
글쓴이 : 박병률    16-07-08 11:54    조회 : 5,209

                     혼밥족이 초대하는 것들

                                                                        

   올 설을 며칠 앞두고 영하 14도를 오르내리며 추위가 기승을부렸다. 뜨끈한 국물이 생각나서 순댓국집에 갔다. 추위 탓인지 손님 몇 사람이 띄엄띄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내 뒤를 따라서 청년 혼자 들어오더니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주인아저씨가 청년한테 다가가서 주문을 받고, 의자 뒤에 걸어놓은 배낭을 청년이 앉아있는 맞은편 의자에 옮겨놓았다. 배낭이 커서 마치 청년이 누구하고 마주앉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손님이 혼자 밥 먹을 때 앞이 텅 비어있는 것이 안쓰러워, 주인은 다른 사람의 입장을 세심하게 살피는 모양이다.

  지난해 한 이동통신 회사의 설문에 따르면 20~30500명 중 96.4%가 혼자 밥을 먹어본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고, 이 중 44.6%는 일주일에 1회 이상혼밥을 즐긴다는 것이다. 간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혼자 밥을 먹다 보면 자칫 좋지 못한 식습관을 형성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단다.

  아저씨한테 청년, 배낭을 왜 옮겨주었어요라고 물었다.

  ‘사람들이 밥을 먹고 짐을 놓고 가는 게 태반이에요그러는 것이다. 식사 후 잊지 말고 짐을 챙겨가라는 뜻이었다. 내 짐작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나는 혼자 밥먹는게 안쓰러워 배낭을 마치 사람처럼 앉혀놓았다고 생각했다. 사물이나 사람이 내 옆에 없다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금방 잊어버린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욱 또렷이 남아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을 혼밥족이라고 한단다. 그러다 보니 더불어, 함께이런 단어조차 낯설게 느껴진다. 가족끼리도 마찬가지다. 우리 식구가 네 명이지만, 딸들은 직장에 출근하기 바빠서 아침을 거르기 일쑤다. 점심은 각자 직장에서 해결하고, 저녁도 자기들이 좋아하는 빵을 사 들고 오거나 과자 한 봉지로 때운다. 식구끼리 서로 대화를 나누며 밥을 먹는 시간이 한 달에 열 손가락 안에 든다. 혼자 음식을 먹다 보면 끼니를 대충 때우기 마련이다. 시간이 절약된다는 장점은있을지 몰라도 영양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 영향 불균형은 비단 음식뿐만 아니라, 원만한 대인관계를 형성하는 것도 영양소의 한 일부분이 아닐까? 최근 대학가에서는 모르는 사람끼리 시간과 장소를 정해서밥터디라는 이름으로 식사를 함께하며 서로 정보를 교환한단다.

  식당 안에 모인 사람들도 밥터디를 하는 셈이다. 밥을 기다리는 동안 책을 보거나 신문을 보는 사람. 스마트폰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는 사람. 어떤 사람은 자리에 앉자마자 아따, 날씨가 겁나게 춥소, !’ 혼잣말하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또 다른 사람은 수도가 얼어서 드라이로 녹였다고 한마디 거든다. 수도계량기를 헌옷으로 단단히 덮어주라는 등 사방에서 대화가 자연스럽게 오고 간다. 나는 눈을 지그시 감고 시의 세계로 풍덩 빠져들었다.

  내 짐속에는 다른 사람의 짐이 절반이다/다른 사람의 짐을 지고 가지 않으면/결코 내 짐마저 지고 갈 수 없다/길을 떠날 때마다/다른 사람의 짐은 멀리 던져 버려도/어느 새 다른 사람의 짐이/내가 짊어지고 가는 짐의 절반이다/풀잎이 이슬을 무거워하지 않는 것처럼/

                                                                -정호승의<>, 부분-

   

  , 일부를 음미하다 보면 내 마음은 누에고치가 된다. 누에가 뽕잎을 먹고 비단실을 뽑아낼 궁리를 하듯. 마음 깊은 곳에서 꽃? ? 나비? 무지개? 시냇물? 버들강아지 등 수많은 것들이 몸 밖으로 술술 걸어 나온다. 그리고 어쩌다 말다툼이 있었던 친구한테 전화를 걸어서 그때 내가 미안했어하며 화해하기도 하고, 사촌 형에게 전화하여 저녁 드셨수?’ 라고 괜히 안부를 묻는다. 그러면 어이 동상 잘 있었는가?’라고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 주거니 받거니 수다를 떨다 보면 사촌 형이랑 마주 보고 앉아서 밥을 먹는 듯하다. 가령, 내 옆에 누가 있다면 이처럼 호화롭게 사치를 누릴 수 있을까? 얼마 전 식당이나 창가, 화장실 등에서 혼자 식사를 하는 혼밥인증사진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요즈음 개인주의 문화의 확산으로 내 주변에는 나이가 많아도 결혼하지 않은 청년들이 많다. 혹시 연애, 결혼을 미루며 인간관계까지 포기하는 것은 아닐까!

 

                                                                                   에세이문예 2016,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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