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 도로변에 세워둔 차를 도로 공사라고 치우라는 팻말에 옮기고 들어오는데 트럭에서 이 타운 하우스에서 일하시는 분이 함박웃음을 보내면서 손을 흔든다.
그 하안 이를 들어내며 소박하게 웃는 모습이 곱다. 어느 웃음보다 맑고 깨끗하게 보인다. 평소 타운 하우스에서 풀 깎고 청소 하느라 얼굴이 붉게 타 있는데 검고 붉은 얼굴에 하얀 이가 유난히 나는 행복해요 행복을 나누어 드릴게요. 하는 것 같다.
행복이 벌건가. ,지금 상황이 편하고 안전하면 행복 한 것이지, 멀리 있는 것도 아니요, 매일 매일 대하는 햇볕 한 조각에서 한 소금 새소리에 졸졸 거리는 물 한줌에 우리는 행복하다. 값없이 맛볼 수 있는 행복의 요소들이다. 그런 요소가 우리주변에 널려 있는데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간다.
어제의 고단함이 어제의 불편함이 사르르 눈 녹아지듯 하는 게 아닌가, 이래서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게 아닌가.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은 거창한 목표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요 부를 쌓으려고 올라선 그 자리가 아니고, 미를 창출해서 남보다 더 예쁘게 만든 것에서 나오는 만족함이 아니다,
반짝하는 아이들의 맑은 눈 빛 속에서 어머니의 그윽이 바라보는 눈빛 속에서 이웃이 손을 흔들며 안부 전하는 눈 빛 속에서 힘들게 일하다가 한줄기 서늘한 바람 한 점 속에서 이런 것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간다.
이 산속으로 이사 온지 4년째 들어서면서 주위를 돌아보며 음미하기시작 했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산에서부터 울림으로 오는 새소리 찌-익 찍 삐-익 삐, 찌르르 찌르 하는 소리가 익숙하여 인제는 저놈이 오늘은 먼저 아침 인사 하네 하기도 하고 저놈이 오늘은 늦잠을 잤나봐 하기도 한다. 4시 반이면 일어나던 기상 시간이 이제는 6시 반이 되었다.
새벽기도 간다고 30년 동안 4시에 일어나고 그전에는 아이들과 남편 점심 도시락 만든다고 부산하게 일어나던 습관이 이 산골로 들어 와서는 하나님 좀 미안해요 혼자서 4시에 일어나서 혼자서 산을 넘기 싫어요, 이해하시지요, 제 사정 알지요 , 일찍 일어나 밥할 일도 없고 누굴 돌보아 줄 사람도 없으니 늦게 잠이 들고 늦게 일어나는 습관이 된지가 3년이 되었다. 아침 늦게 일어나서 성경 읽고 찬송 하고 하루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기도 드리고 그리고 아침 먹고 컴퓨터 들여다 보며 컴친구의 글을 읽으며 얼마나 행복한지 , 웬 행복인지 하고 자문 하고 있다 받을 만한가요, 하기도 한다. 이렇게 게을러서 괜찮나요, 하나님 혼내지 안을거지요. 동무 하나 보내주세요 그러면 지금이라도 새벽에 나갈 수 있거든요 하기도 한다. 인생이 가장 행복 할 때가 언제냐 물어 보면 60세에서 75세 사이라한다. 그때는 험난한 삶을 달려 왔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때가 되었고 인생을 즐기며 살자고 산행하며 자깅도 하며 수영도 하며 몸 가꾼다고 달리게 되는 인생 아닌가, 행복 시기이다 .
이곳에 들어 와서 보이는 앞산에 우거진 나무가 정글 같다는 것과 그 정글은 항상 퍼런 물감으로 들어 있어 피곤하지 않다는 것이다. 늘 그 보금자리에는 각가지 새들의 둥지가 있다는 것이다. 고루 햇빛을 고루 나누어 주어 그늘에서도 자란다는 것이 이 골짜기의 일과이다, 이 일과가 적막하다고 느끼지 못하고 살아간다. 열심히 늙음을 붙들고 매달리며 쫓아간다. 천천히 가라고 하여도 달리는 것을 어찌 붙잡을 수 있으랴 싶다.
한 치 발걸음도 늦추면 아이들이나 세상은 몰라도 돼, 그냥 있어 할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빈축을 사가며 쫓아가지만 허적이게 된다. 그것도 행복이다. 쫓아가려는 의지가 아직은 내속에 있다는 것이 행복이다. 개학이 며칠 안 남았다, 영어 한자 더 배워서 무엇에 쓰겠는가 하고 할 것이지만 그래도 요즈음을 그 젊음을 느끼고 싶고 공유 하고 싶다. 밀어 내면 멀찍이 따라 갈 것이라고 맘먹는다. 몇 년을 같은 크라스를 하는지, 젊은이들은 한 학기 끝나면 안 보인다. 한 학년 올라가있다 그 자리를 지키는 내가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간다. 하나 밖에 만들지 않은 특별한 나이기 때문에 나는 나를 사랑한다. 잘한다 하고 격려 하며 살아간다.
이럴 때 나는 행복하다 두 주먹을 쥐어 본다. 월든가의 저자 소로가 오두막집에서 사는 삶이 그 생을 풍요롭게 만들었다고 말한 것 같이 이 산골에서 풍요를 누리며 살기로 작심하였다. 처음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산골짜기에 가두어 두셨나요. 무엇을 주시려나요 아침마다 물었다. 키노집 만한 집하나 주시면 더불어 살고 싶은데요. 기도 했는데요 하고서.
아침마다 싱그러운 이 바람 향, 산 향 어디서 맡아볼 것인가. 가만히 내 방 앞까지 찾아 준 저 새들, 앞뒤로 우람하게 서있는 나무들 든든한 나의 친구들이다 말없이 지켜 주는 내 새 벗들이다. 말은 알아듣지 못하지만 괜찮아 살아 보아 살만한 하거든 하는 것을 이제는 저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경지까지 가고 싶다. 신학교 다닐 때 교수님이 산에서 12년을 살면서 생식을 하니 산과 대화를 하고 새와 대화를 하고 나무와 대화를 했노라 하는 강의를 들었다, 비움으로 깊은 묵상 속에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 내영혼이 맑음으로 오는 것 같다.
2017년 1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