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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푸스 데이    
글쓴이 : 정민디    17-03-25 15:15    조회 : 6,571

                                오푸스 데이

       

                                                                                                         정민디

                                                                                                                                                                             

 바르셀로나에서 졸업장이 도착했다. 졸업하고 2년 7개월 만에 받는 아들의 졸업장이다. 미루어왔던 학자금을 완불하니 두말 않고 보내줬다. 이제야 안도 한다.


2010년 4월, 유럽의 하늘은 온통 회색 재로 덮였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것을 꼭 집고 넘어가야 겠다는 듯이, 아이슬란드의 화산이 폭발했다. 미국의 911테러 이후 최악의 항공대란이 일어났다. 아들은 그때까지만 해도 희희낙락. ‘ 선풍기 틀어 재를 날려 버려, 그까짓 화산재 엄마 입으로도 불면 한방에 다 날아갈 걸?’  꼭 오라고 했다. 대견한 아들의 졸업식도 보고,  유일하게 뻐기며 하는 노릇인 엄마표 집밥을 해주러 가는 여행이기도 했다. 짐을 꾸릴 때 옷가지들은 되도록 줄이고 한식을 만들 때 꼭 필요한 양념과 마른 음식 재료들로 가방을 채웠다. 심지어는 가서 김치 담그려고 새우젓까지 챙겼다.


떠나기 전 부터 여러 나쁜 조짐이 있었다. 갈 날 며칠 안 남겨놓고 넘어지는 바람에 앞니가 부러져  신경을 아예 끊어 버리는 치료를 급히 해야 했고, 내가 살던 미국에서 나쁜 소식도 왔고, 서유럽 쪽 여행을 마치고 마지막 일정으로 바르셀로나로에 가려던 것이 유럽중부와 북부 하늘은 비행기가 날 수 없어 예약이 취소됐다. 그나마 유럽 남부 쪽은 하늘 길이 뚫려 두바이, 모로코, 포르투갈, 그리고 스페인의 여러 도시를 거쳐 십 여일 만에 바르셀로나에 도착하는 일정으로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 도착 이틀 전이었다. 늘 그렇듯이 전화는 나쁜 소식을 알릴 때 더 요긴하다. 이때의 벨 소리는 오래 전 부터 축적된  부정적인 촉을 보내는 듯 선득하다. 아니나 다를까 아들의 목소리의 첫 울림만 들어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어쩌면 졸업식장의 입장을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자기 속은 어떨까 해서 자세히 묻지 않았다. 나머지 이틀 여행은 어디를 갔었는지도 모르게 건성 따라 다녔다. 가우디의 건축물도 내 손에 가시보다 못한 듯 보였다. 관광을 마치고 나니 마지막 식사 장소인 바르셀로나의 한국식당으로 아들이 왔다. 아들은 나와 같이 여행한 일행들에게 꾸벅꾸벅 인사를 하고 수저를 얻어서 한국 음식들을 맛있게 먹었다. 살고 있는 빌라에 도착하니 방 하나씩을 나누어 쓰고 있는 모로코청년 타릭과 독일 아가씨 카트린느가 맞아준다. 그날 아들은 졸업식장에 못 간다고 나한테 최종적으로 통고했다. 다각적으로 호소를 해 봤지만 대답은 일관적이라 했다.


다음날 모로코에서  타릭네 부모와 여동생, 독일에서 카트린느 부모와 약혼자가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속속 도착했다. 좀 민망했지만, 아들의 참담한 기분을 애써 김치냄새로 희석 시키며 한국음식을 꿋꿋이 하면서 버티는 수 밖에 도리가 없었다.

졸업식 당일 아침 아들은 늦잠을 자고, 나도 방에 처박혀 나가지 않았다. 성장을 하고 즐겁게 식에 참석할 그들을 보지 않는 게 서로에 대한 배려 일 게다.


 책 < 다빈치코드>에서 성배를 찾기 위해 무수한 암호를 해독 하는 것 같은 임무가 나에게도 부여됐다. 내 엉덩이를 암소의 엉덩이 마냥 두들겨  사온 우둔살을 결대로 썰며 장조림을 만들면서 ‘ 학점이 모자랐나?’.  마른 오징어채를 고추장으로 무치면서 ‘출석수가 모자라는 게으름을 피웠나?’. 그 외에 온갖 상상을 하면서 졸업식에 못가는 비밀을 푸는 데 골몰했다. 점심을 맛있게 먹은 아들은, 졸업식 뒤풀이파티에는 놀러가도 된다고 모터 싸이클을 타고 웅웅 바람을 가르며 사라졌다.


 졸업식 다음날 아들은 모터 싸이클 뒷자리에 나를 앉혔다. 그래도 학교구경은  가자고 한다. 현대와 오래 된 건축물이 잘 조합 된 아름다운 학교였다. 바르셀로나 시내가 다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위치해 있었다. 멀리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보이고,더 멀리 항구에는 하루에 몇 만명씩 토해내는 쿠르즈 배도 보였다.


계단에 앉아 졸업식에 참석 할수 없었던 이유를 담담하게 말했다. 수업료를 완불하지를 못해서였다. 학자금 대출 기관으로부터 받아서 남은 돈과 완불해야 할 돈의 아귀가 맞지 않았다. 학교측에서는 완불을 하지 않는다면 1유로도 받지 않겠다고 한다. 적지 않았던 차액을 당장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는 부모의 처지를 알고 있었던 아들이 차분히 대처하는 마음에 나는 가슴이 메어졌다. 아들은 곧 이어 얄팍한 내 마음을 읽었다. 졸업장 없이 취직은 어떻게 하나? 모든 공부를 다 이수했으므로 졸업장과는 상관없이 취직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게 추천서를 써 준다고 한다. 참 합리적인 경영대학원이었다. 돈을 빨리 벌어서 갚으라는 이야기다.


덧붙여 아들이 자기 학교에 대해 이 경영대학원은 세계에서 늘 10위안에 드는 우수한 학교이며 ‘오푸스 데이'교회 재단의 학교라 한다. 하지만 학교내에서는 어떤 전도활동도 없으며 다른 MBA와 똑같은 분위기 속에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다만 경영에 강한 윤리 정신을 투입시킨다는 점이 특징이고 여러가지 규칙을 강하게 지켜야한다. 아들의 친구 한 명은 지각을 자주해서 정학 처분을 받고 일 년 후에 나 다시 와서 공부를 할 수 있다고 학교를 못 오게 했다. 하물며 경제와 돈을 공부하는 경영대학원에서 학자금 계산도 제대로 못한 아들은, 소설에서 나온 인물 사일러스 처럼 넙쩍다리에 쇠사슬차고 고통을 받던  오푸스데이교회의 징벌을 안 받은 것만도 다행이었다.



오푸스 데이는 미국 소설가 댄 브라운의 베스트셀러 소설 <다빈치 코드>와 동명의 영화로 화제가 됐던 가톨릭 단체다. 라틴어로 '하느님의 사업'이라는 뜻으로, 26세 스페인 신부 에스크리바가 1928년 창설했으며, 정식 명칭은 '성 십자가와 오푸스 데이'다. 1941년 교황청이 이 단체에 대해 공식 승인했고, 198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황청의 성직자 자치단으로 인정했다. 세계 60여 개국에 약 9만 명의 회원이 있으며, 사제는 2,500여 명이며, 나머지는 평신도다. 본부와 중앙성당은 로마에 있고, 세계 곳곳에 오푸스 데이 센터가 있다.

일부에서는 오푸스 데이에 대해 베일에 싸인 교황청 소속의 비밀결사단체가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소설과 영화에서 이 단체는 예수와 마리아 막달레나 사이에 딸이 있었다는 비밀을 지키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스스로의 육체적 고행을 통해 온전한 믿음생활을 하도록 하는 가톨릭 근본주의 비밀결사단체로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영화와는 아주 다르게 평신도 역할을 중시하는 이 단체는 신부나 수녀가 되지 않고도 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가톨릭교회 교리가 바탕을 이루고 있다. 이 조직이 세계 여러 지역에 벌여놓은 다양한 직업·무역·민속공예·농업시설 등과 수많은 고등학교, 대학생들을 위해 마련한 200개 가량의 기숙사, 경영학교 등을 운용하고 자선사업을 벌이는 능력을 보면 그 재력의 규모를 추산할 수 있다. 또한 나바라대학교를 설립하고 재정지원을 해왔는데, 이 대학교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스페인 최고의 대학교로 손꼽힌다.

아들의 경영댁학원도 나바라대학교 재단의 일원이다. 내가 <다빈치 코드>를 읽고  갖게 된 오푸스데이의 선입견은 역시 픽션이었다.


오푸스 데이와 관련되어 있는 재단의 학교에서 내 아들이 졸업식을 참석 못하는 벌을 받는다는 게, 아이러니하게 마치 소설과 같이 오버랩이 되었다. 무릇 모든 편견이 이렇게 형성 되는 게 아닌가 한다

빛나는 졸업장을 제때에 못 받은 아들은 학교의 혹독한 가르침으로 큰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결코 세상은 그리 녹록치 않다는 것을.

5년이 지난 지금 아들은 절반의 성공을 이어 나가고 있다. 학교의 졸업장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값진 것이었다.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던 졸업식에 참석 못했던 악몽을 떨쳐 버리려 모든 일을 시간 안에 잘 마치고 있을 것이다.


그때.

바르셀로나에서 헤어질 때, 아들은, 찔끔거리다가 화산재가 눈에 들어갔다며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했다.그런 아들을 보는 내 가슴도 화산재가 코로 들어간 듯 매캐해졌다.


                                                        <2016년 11월호 한국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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