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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김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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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봄    
글쓴이 : 김창식    17-04-05 13:38    조회 : 6,681
                                          봄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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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내가 처음부터 할머니들을 주의 깊게 본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냥 눈에 들어 왔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옆에 경로당이 있는데, 산책길에서나 다른 일로 집을 오가며 잠깐잠깐 눈길이 머문 것이다. 나도 모르는 새 자연스레 할머니들을 주의 깊게 눈 여겨 보았던 듯하다. 할머니들은 오후 시간이면 노인정 앞 벤치에 해바라기를 하며 앉아 있곤 했다.
 
 할머니들은 세 사람이었고 앉은 순서와 모양새가 똑 같았다. 한 할머니는 왼쪽으로 고개를 꼬고, 다른 할머니는 오른 쪽으로 고개가 기울었으며, 가운데 할머니는 용수철 목각 인형처럼 위 아래로 고개를 흔들었다. 벤치 옆에는 바퀴달린 보행기가 놓여 있었다. 할머니들 사이에 별반 대화는 없어보였다. 공통점은, 조끼를 받쳐 입고 무릎덮개를 둘렀으며 얼굴에 얼기설기 도랑 같은 주름이 가득하고 눈 주위가 짓물렀다는 정도. 할머니들은 그저 그렇게만 앉아 있었다. 흔들림 없는 정물처럼.
 
 이따금 관리소 직원으로 보이는 제복 입은 사람이 할머니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곤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단순한 안부였음 직하다. 이를테면, “자녀분들은 뭐 하시나요?” “어느 분이 가장 연장자세요?” “아직 날씨가 찬 데 그만 들어가시지요.” 같은 말이었을 것이다. 할머니들은 가타부타 반응이 없었다. 할머니 한 분이 고개를 주억거렸던 듯도 싶다. 관리소 직원은 늘 그래 왔던 것처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리를 떠났다. 직원도 딱히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던 듯.
 
 지난 주말 비가 흩뿌리더니 잿빛 도시에도 흙이 있는 곳이면 녹색이 언뜻언뜻 돋아났다. 보도블록 사이로 얼굴을 내민 풀이 손가락 마디 크기로 자라고 꽃이 웃음을 머금었다. 산하는 안개인지 연기인지 모를 뿌연 기운으로 일렁거렸다. 겨울 동안 폐쇄되었던 아파트 옆 주차장 한쪽에는 임시 장터가 생겨났다. '봄맞이 겨울의류 대방출' 길고양이 한 마리가 다리를 절뚝이며 승합차 밑으로 기어들었다.
 
 며칠 지난 사이 할머니들이 만든 구도에 변화가 일어났다. 그러고 보면 할머니들이 내 일상에 작지 않은 부분으로 자리했던 모양이다. 그것은 거짓말 같은 풍경이었다. 가운데 자리가 빈 채였다. 벤치에는 두 명의 할머니만 앉아 있었던 것이다. 나름 절도 있게 주억거리던, 가운데 자리에 앉았던 할머니의 고개가 자꾸만 옆으로 기울더라니. 벤치 곁에 자리하기 마련인 보행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할머니 두 분이 가까이 붙어 있을 만도 한데, 가운데 빈자리는 남겨두고 있는 채였다. 친구가 잠시 자리를 비웠고 곧 돌아오리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혹 함께하지 못한 사람에 대한 예의나 노년의 우정에 대한 증표 같은 것? 이도 저도 아니면 그냥 그렇게 별 뜻 없이 습관적으로 흘러가는 것에 내가 지나치게 특별한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일까?
 
 오래도록 풍경은 변하지 않았다. 무언가 짚이는 것이 있었다. 나는 벤치 옆을 지나며 할머니들 사이의 빈 공간에서 또 하나의 형상을 얼핏 본 것도 같았다. 할머니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되었다. 내게 궁금한 마음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별 수 있는감? 갈 때 가야지.”
 “그건 그려. ()이나, 그래도 그렇지. 뭐 땀새 서둘러 간다냐?”
 “우리도 차차 준비해야 않겄어?”
 “준비는 무신? 그냥 가면 되제.”
 마음에 작은 물결이 일었다. 나는 혹시라도 내 짐작이 틀렸기를 바라며 물었다.
 “할머니, 한 분은 어디 편찮으신가요?”
 
 한 할머니가 시답지 않아하며 몸을 흔들려다 말았다. 눈동자에 초점이 없고 입 주위로 침이 흘러내렸다. 나는 할머니들 곁에 잠시 더 머물렀다. 그제야 확연해 졌다. 아니, 난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할머니들은 하구한 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그리고 할머니들에게는 성큼 다가왔을지도 모르는 순서를. 다른 할머니가 별 일 아니라는 듯, 혼잣말로 대답했다.
 
 “갓슈. 봄이 온겨.”
 
 유아원에서 나들이를 나온 듯 한 떼의 작은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지나갔다. 남자아이 여자아이 할 것 없이 손에 손을 잡은 채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들을 따라갔다. 원래 씨앗이었던 식물의 뿌리에 물이 오르고, 나뭇잎이 초록물고기처럼 푸르렀다가 갈색으로 변해 땅에 떨어지고, 떨어진 나뭇잎 위에 다른 나뭇잎이 내려 앉아 땅에 묻힌다. 사뭇 시간이 흐른다. 모든 것이 끝났다 싶은 순간 땅 속에서 검은 흙을 헤집고 또다시 새순이 고개를 내민다.
 
* 한국수필 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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