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디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한 달이 지나도 감감 무소식이다. 아들이 첫 월급을 타던 날 예상 했던 것 보다 많이 나왔다며 얼마라고 숫자까지 얘기했다. 나도 덩달아 들떴다. 아들이 공약을 실천하겠구나하고 생각하니 적잖이 기대가 됐다. 서른이 다 될 때까지도 이 학교 저 학교를 넘나들며 공부가 늦어져서 변변한 돈벌이가 없었던 아들은 부모에게 손 벌릴 때 마다 공약을 남발했다. 정기적으로 용돈을 줄 것이며, 컴퓨터가 오래 됐으니 바꿔야하고, 자기가 어느 나라에 살든지 여행으로 와야 하고, 심지어는 나이 들어도 운전을 하게 되면 새 차를 꼭 마련해드리겠다고 까지 했다. 그 외에도 몇 가지 더 있다.
하루는 자기 쇼핑하는 데 도와달라고 해서 혹시나 하고 따라갔는데, 이것저것 제 것만 사면서 일시불로 카드 긁는 것 만 보고 돌아왔다. 뒤늦게야 ‘매니페스토’ 서약서가 떠올랐다.
매니페스토(manifesto)란 종래의 추상적인 선거공약과는 달리, 선거공약을 공표할 때 무엇을 언제까지, 어느 정도까지 할 것인지를 밝히는 것이다. 즉 ‘검증 가능한 공약’이라고 할 수 있다. 매니페스토의 사전적 의미로는 ’성명서‘,’선언서‘로 약속한 정책개요를 공식적으로 문서화하여 선거기간 중에 공표하는 국민에 대한 서약서 정도로 정리되어 있다. 매니페스토의 평가지표로는 유권자와 약속한 공약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SMART(Specific:구체적이며, Measurable:측정이 가능해야 하며, Achievable:달성할 수 있으며, Relevant:정책이 타당해야 하며, Timed:기한이 명시되어야 함) )라는 방법이 제시되고 있다.
“ 어머니, 그래서 제가 스마트 법을 지키느라 스마트 폰을 사드린 거예요.”
아들은 스마트하게 눙쳤다.
“됐거든.”
“그럼 어떻게 공약을 지켜야 어머니 기분이 나아지겠어요?”
“십일조를 보내라. 그러면 너는 영원히 구원을 받을 것이고 궁극에는 천국도 갈 수 있을 것이다.”
“내 샐러리의 텐 퍼센트(10%) 말입니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어깨만 으쓱 올렸다. 며칠 후 내 인적 사항을 물어 왔다. 어머니가 마음대로 쓸 카드를 만들어 주겠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꿈의 ‘백지 카드’ ?
아니다. 카드는 쥐약이며 함정이다. 돈으로 휘두를 권력의 냄새가 난다. 카드를 쓸 때마다 내역이 낱낱이 보고되는 데 어찌 쇼핑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단 말인가.
“아들아! 무릇 공약이란 실천을 해야 만이 건전한 사회와 가정이 유지되는 것이란다. 하지 만 대국민을 향한 서약도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 애초부터 너에게 큰 기대는 없었다. 다만, 이 어미의 속 깊은 오지랖은 너에게서 일단 돈을 빼앗아 두는 게 목적이었단다. 살 것도 많고 할 것도 많은 네 청춘의 통장이 제로잔액으로 유지될 것이 염려되기 때문이 다. 가정도 작은 정치판에 다름이 아니니 약속의 불이행으로 이 어미와 자칫 분열과 대립의 양상으로 지내지 말기를 바란다.” 라고 이 연사 힘차게 외쳤으나, 그러나......
아들에게서는 십일조는 커녕 카드조차 아직 배달되지 않았다.
201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