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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정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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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서리    
글쓴이 : 정민디    17-09-01 17:22    조회 : 9,397

                                                                       감 서리

                                                                                                               정민디


  따끈따끈한 가을볕으로 배를 불린 감이 주홍빛이 되면 옆집 가지가 내 집 담 안으로 넘실 묵직하게 늘어졌다. 이때부터 따먹고 싶은 유혹이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스멀스멀 차오르기 시작한다. 열매가 초록이었을 때는 거들떠보지 않았다.

 새로 이사한 곳은 비가 올 때도 별이 반짝이는 산타 모니카(Santa Monica)시였다. 엘에이 국제공항과 가까운 곳이어서 착륙을 시도하며 불을 반짝이는 비행기가 늘 하늘에 떠 있었다. 낭만적인 곳이었다. 담이 붙어있는 바로 이웃의 앞마당과 현관은 동쪽으로 나있고 우리 집은 서쪽에 있어 그 집에 누가 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미국인들은 감을 거의 먹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게다가 단감나무라니 동양인이 살 거라는 추측만 했었다. 

 과연 우리 땅으로 넘어 온 감이 내 소유인지 옆집 감나무니 건드릴 수 없는 지 여러 사람에게 물었으나 산뜻하게 이로운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부동산법을 잘 아는 사람에게 물었으나 ‘그때그때 달라요’ 라고 하면서 옆집주인과 잘 의논해서 따먹으라고 했다.

 어느 날 밤 도저히 못 참고 그 중 제일 탐스러운 것을 따는 첫 서리를 하고야 말았다. 세상에! 불그레한 껍질을 벗긴 속살은 촉촉한 물기를 한껏 머금고 아삭아삭 하고 달디단게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었을 때도 이 맛이었을까. 아담보다도 비양심적인 나는 목울대가 생기기는커녕 꿀꺽꿀꺽 잘도 넘어갔다. 

 다음날 밤 그 다음 날 밤도 매일 밤 야금야금 우리 집으로 넘어 온 것은 다 따먹고 말았다. 일본 마켓에서 단감 하나가 3,4불 하던 데 수 십 개 따먹었으니 이제는 소도둑 소리를 듣게 되었다. 남의 것을 왜 그렇게 따 먹느냐며 사 먹으라고 남편이 쓴 소리를 했다. 마켓에서 파는 것 보다 훨씬 맛있어서 손이 가는 것을 어떻게 하냐며 도둑질을 정당화 시키려 했다. 남편 역시 단감을 워낙 좋아하는 처지라 ‘거 참 맛있네.’ 하면서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다. 

 옆집 주인이 오성과 한음에 나오는 얘기를 모르기 망정이지 안다면 나에게 이렇게 따졌을 것이다. 오성(이 항복) 집의 감나무 가지가 권율의 집으로 휘어 들어갔는데 이 가지에 열린 감을 권율 집에서 차지하자, 오성은 권율이 있는 방문에 주먹을 찔러 넣고 “이 주먹이 누구 주먹이오?” 하고 물었다. 권율이 “네 주먹이지 누구 주먹이겠느냐.”라고 말하자 감을 가로챈 일을 추궁하였다는 얘기 말이다.

 손이 닿는 곳은 다 따 먹고 그 집 쪽의 감을 올려다보니 잘 익은 감들이 군데군데 뜯어 먹힌 흠집이 나있는 것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까마귀 우는 소리가 많이 들려 좀 시끄럽다 했는데 걔들이 농익어 달짝지근한 냄새가 풍기는 것만 꼭꼭 찍어 한 번만 베어 먹고는 또 다른 것을 건드렸다. 정말 화가 났다. 그런데 경쟁자는 까마귀만이 아니었다. 다람쥐도 짠 듯이 똑같이 그러고 있었다. 그게 하나의 얼만데 그렇게 헤프게 먹는지 정말 밉살스러웠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이길 재주는 도저히 없었다. 까마귀는 자유자재로 하늘을 날아서 먹고, 날쌘 다람쥐는 나무를 타고 가지위에 기어 올라가서 먹고 내려왔다. 나는 도저히 흉내 낼 수도 없는 막강한 적이었다. 

 본격적으로 영역을 넓혀 사다리까지 동원하여 단감을 지키기로 작정했다. 솔직히 말해 나도 전투적으로 따먹으려 작정한 것이다. 사다리에 올라 옆집 뒷마당을 보니 한 잎만 먹고 버려진 감들이 바닥에 즐비하게 있었고, 허름한 창고 한 채가 안채를 막아 서있고, 무덤 같은 흙더미, 집 짓다 남은 나무 같은 거, 잡동사니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으나 사람 기척은 거의 없었다.

 아들들이 공부하느라 집을 떠나있어서 이 짓거리를 할 수 있었으나 유난히 도덕적인 큰아들이 생각나 이실직고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도 정신을 다는 못 차리고, 여태까지 따먹은 것은 숨기고 감을 좀 팔수 없냐고 할 요량이었다. 마켓보다는 싸게 살 수 있겠지 하는 속셈도 있었다. 찾아가 말을 건네니 베트남 아저씨가 주인이었다. 

  “ 감을 많이 좋아하나 보군요. 그렇게 따 먹었는데도 아직 더 먹고 싶어요?”

  “ 다 보셨어요? 죄송해요. 한국 사람은 감을 참 좋아한답니다. 까마귀랑 다람쥐랑 그 맛      있는 감들을 조금만 베어 먹고 버리는 게 너무 아까우니 좀 파시면 안 되겠어요?”

  “ 당신도 사다리까지 놓고 다람쥐같이 따갔잖아요. 우리식구들이 감에 별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좋아했다면 가만히 있지는 않았겠지요? 나도 북가주에서 이사 왔는데 그            곳에서는 단감을 말에게 먹여요. 말이 단것을 좋아하거든요. 나도 이웃에 누가 이사 왔      는지 궁금했답니다.”

  하면서 마음씨 좋은 미소로 말했다.  내가 감 훔치는 것을 보고도 까마귀, 다람쥐랑도 다 같이 나누어 먹어라 하고 있었던 것이다. 

  “ 집에서 김치 만들어요? 나도 그렇고 우리 딸도 김치를 너무 좋아해요.”

 “ 네. 자주 만들어요.”

  “ 그럼 이렇게 합시다. 김치하고 감하고 바꾸어 먹읍시다.”

  더 이상 단감은 금단의 열매가 아니었다. 미스터 누엔은 뒷마당으로 나를 안내하며 감 따는 긴 장대를 가져왔다. 줄을 당기면 감 모가지를 죄어 똑 따고 잠자리채 같은 망 속으로 뚝 떨어지게 하는 도구이다. 나무 위쪽으로 햇볕을 듬뿍 받아 잘 익은 감을 까마귀 보란 듯이 한 상자 가득 땄다. 옛 어른들이 까치밥이라고 감을 다 따지 않고 남겨 뒀다는 말이 생각나서 나도 마지막 까지 악착같은 욕심은 부리지 않았다. 내년부터는 마음 졸이며 서리를 안 해도 되는 협상을 한 것이다.  날아다니는 까마귀나 나무 전체를 휘젓고 다니는 다람쥐를 이길 재간은 도저히 없지만 나도 당당히 옆집 뒷마당을 드나들게 되었다. 

 김치 꽤나 담궜던 가을이었다.


                                                        2012년 3월호 <한국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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