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서 생긴 일
노정애
거래처 우수 직원의 가족들을 초청해서 가는 해외여행에 남편이 호스트로 가게 되었다. 추가 여행비만 내면 가족동반이 가능하다며 같이 가자고 한다. 이틀정도는 골프를 쳐야하지만 나머지 시간은 놀 수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하다. 초등학교 5학년인 작은 딸아이와 함께 가기로 했다.
신들의 섬 발리. 마흔을 넘겨서야 가는 나의 첫 해외여행이었다. 지난해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황태자의 첫사랑>의 촬영지인 리조트가 숙소이며 <발리에서 생긴 일> 드라마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해서 기다리는 설렘에 황홀해서 쓰러질 지경이었다. 받아놓은 날은 빨리 왔다.
공항에서 함께 가는 가족들과의 미팅에 아이와 난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남편은 다른 가족들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게는 휴가지만 그에게는 일의 연장이었다. 도착한 발리에서도 그는 여전히 바빴다. 리조트 안에서 할 놀이들은 넘쳐났다. 아이와 수영, 스노클링도 하며 하루를 보내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원하는 관광이나 체험은 리조트에 미리 신청하면 갈 수 있어서 아웅강 래프팅을 예약했다.
래프팅을 위해 집합 장소에 가니 함께 비행기를 탔던 몇몇 가족들이 나와 있었다. 남편의 연배로 보이는 혼자 온 남자분도 보였다. 인솔자가 그분과 우리를 한 가족이냐고 묻더니 대답도 듣지 않고 승합차에 마주 앉게 했다. 그분에게 식구들은 리조트에 남아있냐고 물었더니 가족들이 못 오게 되어서 혼자 왔다고 한다. 이번 행사에 유일하게 혼자 온 나홀로씨였다. 남편을 잘 아는 분이라 내 행동은 조심스러웠다.
리조트를 나와 20여분을 달리자 신호등에 걸렸다. 갑자기 현지인들이 창가로 모여들었다. 움찔 놀랐는데 신문을 파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에 잠시 긴장했던 마음이 풀렸다. 우리가 동양인이라는 것을 확인했는지 중국신문, 일본신문, 한국신문을 보여줬다. 일행들은 먼 이국땅에서 보게 된 한국신문을 반가워했다. 눈치 빠른 그들은 한국신문을 더 바싹 들이밀었다. 떠난 지 사흘 된 나라소식이 뭐가 그리 궁금했는지 난 신문을 사겠다고 값을 물었다. “5불”, 돈을 지불하려는데 나홀로씨가 흥정을 해야 한다고 책임을 떠맡았다. 4불, 3불, 2불. 2불을 주고 신문을 받자 직진 신호에도 멈춰있었던 차가 그제야 출발했다.
신문은 얇은 비닐에 포장되어 있었다. 일행들이 새로운 소식이나 있냐고 물어 포장을 뜯고 펴 들었다. 앗! 일주일전의 신문이다. 우리 모두는 웃고 말았다. 보여지는 1면의 날짜를 가리기 위해 속지에 숫자가 있는 광고 면을 교묘하게도 잘도 오려붙였다. 나는 이 이야기가 글감이 되지 않을까하여 신문을 가방 깊숙이 챙겨 넣었다.
래프팅 장소에 도착하자 업체 사람들이 마중 나왔다. 그들도 나홀로씨와 우리를 가족으로 묶어서 한 배에 태웠다. 아니라고 해도 소용없었다. 힘쓰는 가장을 앞이나 뒤에 태우고 식구들을 챙기게 했다. 밀림처럼 펼쳐진 멋진 풍경과 굽이치는 시원한 물살, 중간에 만나는 폭포. 1시간 30분의 긴 래프팅은 더위를 잊기에 충분했다. 점심식사와 가벼운 관광이 있는 그날의 일정동안 나홀로씨는 딸아이와 나를 챙겨주었다.
저녁이 되어서야 남편이 돌아왔다. 2불짜리 신문 이야기를 하자 비행기에서 버린 신문을 가져와서 파는 것이라고 했다. 세상물정 모르는 내 어리석음에 면박을 주었다. 어쩌다보니 나홀로씨와 가족이 되었다고 했을 때 남편의 표정은 조금 굳어졌다. 눈치 없는 나는 그분이 많이 챙겨주었다며 나중에 만나면 가장 노릇 대신해준 감사인사나 하라고 한 술 더 떴고, 남편은 자기가 알아서 한다고 버럭 화를 냈다.
다음날부터 나홀로씨와 계속 부딪쳤다. 비슷한 시간에 밥을 먹고 관광을 하니 동선이 겹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나와 아이는 인사를 하고 짧은 대화도 편히 나누었다. 떠나기 전날은 비행기를 함께 탄 가족 모두와 발리 관광을 갔다. 인도양이 보이는 울루와뚜 절벽사원이며 가루다 공원, 현지인들의 집을 둘러보며 발리만의 정취에 흠뻑 취했다. 나홀로씨는 일행들과 멀찍이 혹은 앞에서 늘 혼자 다녔다. 그가 왠지 측은해 보였다. 난 오지랖이 발동해서는 가끔 그분 곁에 가서 몇 마디 말을 주고받곤 했다.
돌아갈 가방을 싸며 첫 해외여행이 끝나는게 아쉽기만 했다. 2불짜리 신문을 가방에 넣다가 남편에게 딱 걸렸다. “지난 신문을 왜 가져가냐?”며 신문을 빼서 휴지통에 버린다. 난 “필요해서 가져가니 신경 끄세요.”라고 쏘아주며 더 깊숙이 넣었다. 이해할 수 없다고 몇 차례나 버리라는 남편의 말을 무시하고 기어이 챙겼다. 그런 것을 샀다고 타박했던 남편이 내 뜻을 알기야 했겠는가. 성질머리 사나운 아내를 더는 건드리지 않고 그는 입을 다물었다.
일상으로 돌아왔다. 다음날이 휴일이라 밀린 집안일로 바쁘게 움직이는데 쉰다고 들어간 남편이 안방에서 나왔다. 굳은 얼굴로 나를 보자고 했다. 왜 그러냐는 내게 저음의 단호하고 화난 목소리로 방으로 들어오란다. 들어서니 내 앞에 발리 신문을 던지며 “도대체 이 신문에서 오린 부분에 뭘 적었던 거야?” 남편의 목소리는 폭발하기 직전의 화산처럼 으르렁거렸다. 무슨 말인지 몰라 그를 쳐다보기만 했다. “여기에 뭘 적었기에 오린 것이냐고?” 그리고는 혼잣말을 했다. 버리고 올 것을 그리 귀하게 챙긴 데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라고. 부득부득 챙겨올 때 알아봤어야 했다고.
신문을 봤다. 속지에 잘 오려진 한 부분, 남편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제야 이해가 갔다. 유난히 나홀로씨에게 친절했던 마누라! ‘일생에 단 한번 운명의 사랑, 모든 것이 발리에서 시작되었다,’는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의 선전 카피 같은 일이 마누라에게 벌어진 것이라고 오해했던 것이다.
오려진 부분이 붙은 1면 날짜를 보여주니 오해는 쉽게 풀렸다. 그러나 거기서 끝낼 내가 아니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한 것이냐? 당신이 호스트라 나까지 그들에게 안 해도 될 친절을 베풀었다. 너무 불쾌하다등의 말들로 그를 몰아붙였다. 역전된 전세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남편. 나는 한참을 쏘아보다가 방을 나왔다. 다행히 2라운드로 이어지는 다툼은 없었다. 일주일정도 집이 절간보다 조용했을 뿐.
그날의 신문은 2005년 8월 31일 수요일 <중앙일보>다. 찬찬히 읽어본다. 노대통령이 지역구도 타파가 필생사업이라며 임기문제를 거론해서 1면에 나왔다. 여·야도 언론도 시끄럽다. 교육부는 수능이 80일 밖에 남지 않았는데 대학별 논술에 외국어 제시문을 금지해 논란이 일고 있다. 대입을 위한 정책은 그때도 학생들 생각은 별로 안한 것 같아 씁쓸해 졌다. 국제면에는 미국 남동부 해안지역을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많은 생명을 앉아가고 엄청난 재산피해를 주었다고 보도되었다. 자연재해 앞에 인간의 무력함을 보는 것도 며칠 전 소식과 비슷해 보인다. 사설에서는 국방부도 엉망인지 염려의 목소리가 높다. 침 신기하다. 마치 오늘 신문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한다.
시끄러운 사회면 한쪽에 있는 ‘시가 있는 아침’ 코너에 내가 좋아하는 이재무 시인의 <벼랑>이 실려 있어 더럭 반갑다.
벼랑은 번번이 파도를 놓친다/ 외롭고 고달픈./ 저 유구한 천년 만년의 고독/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철석철석 매번 와서는 따귀나/ 안기고 가는 몰인정한 사랑아./ 희망을 놓쳐도/ 바보 같은 바보 같은 벼랑은/ 눈부신 고집 꺾지 않는다./ 마침내 시간은 그를 녹여/ 바다가 되게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