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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미렐라    
글쓴이 : 정민디    17-09-14 11:41    조회 : 10,713

                                 할미렐라

                                                                                                               정민디

  눈을 반짝이며 입은 달싹거린다. 몇 살 쯤 됐을까 궁금하여 상대방이 가늠하는 표정이다. ‘저 쉰여섯 살 이에요.’ 라고 내가 먼저 말하고 만다. 그런 다음 나는 어떤 반응이 나올까를 기대한다. 입으로는 나 몇 살이오 라고 거침없이 말하곤 하나 마음속은 벌써 꽁하다. 대충들 생각해 주면 좋으련만 집요하게 나이를 물어보는 게 밉살스럽다. 초연한 척 하지만 내 나이에 잘 적응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 살 때는 그다지 나이를 의식하지 않았다. 물어보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 하우 올드 아유?’ 라고 물어 보는 것은 초등학교 애들에게나 하는 정도다. 나이를 물어보는 것은 아주 사적인 영역이다. 아흔 살 할머니에게 조차도 선뜻 물어 봐선 안 된다.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이 미국의 기본법이라 그런지 그 곳에서는 차별이라는 말에 매우 민감하다. 살 곳을 구할 때나 일자리를 구할 때 나이나 인종에 제한을 두는 것은 법에 저촉이 된다. 특히 다인종이 모여 사는 곳이기 때문에 각종 차별에 대한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상대방에 대한 사적인 관심은 되도록 자제하는 것이 그 사회의 분위기다. 그런 가운데서도 꼭 나이를 물어보는 곳이 있다. ‘리쿼 스토어’ 라는 술을 파는 곳이다. 21세 미만은 술을 살 수가 없다. 나이가 어려보이면 꼭 운전면허증을 보여 달라 한다. 미성년자에게 술을 팔다 함정수사에 세 번 이상 걸리면 가게 문을 닫아야한다. 

 내 나이 사십 대 중반 쯤 리쿼 스토어에 가서 맥주와 양주등속을 사고 계산을 하자니 나보고 운전면허증을 보여 달라고 한다. 웃으며 보여줬다. ‘ 너 나이 절대 그렇게 안 보여.’ 라며 점원도 따라 웃었다. 동양 사람들은 다른 인종들에 비해서 나이가 어려 보인다. 그 후로도 몇 번 더 앙큼하게 타인종의 배려를 즐겼다. 나는 재미가 붙어서 가끔 내 나이를  먼저 말해서 어려 보인다는 대답을 유인하여 만족하곤 했다.

  어느 덧, 사진에 나온 내 모습이 싫어서 사진 찍히는 것을 피하게 됐다. 내 연배들과 단체로 찍은 사진에서 나를 찾는 것이 어려워졌다. 나이 들면 그저 다 비슷비슷하게 보이는 것 같다. 이젠 아줌마란 소리는 듣는 것도 과분한 나이가 되니 요사이 회자되고 있는 ‘줌마렐라’ 라는 신조어의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이 말은 아줌마의 ‘줌마’와 신데렐라의 ‘렐라’ 를 합성 한 것이다. 경제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적극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30대 후반에서 40대 후반 사이의 기혼 여성으로 자기 관리와 자기 개발에 철저 하고, 자신에 대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 특징을 보인다 한다. 즉 ‘줌마렐라’는 아줌마이지만 신데렐라와 같은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동시에 적극성과 능동성으로 삶을 개척해 가는 진취적인 여성을 뜻하는 것이다.

  텔레비전 드라마가 먼저인지 사회현상이 먼저인지는 분명치 않다. 근래 항간에 회자되고 있는 얘기들이 드라마의 반영 되고 있는 경우가 많아 드라마를 보면 요새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구나 하고 공감이 된다. 여자들의 영원한 신데렐라 신드롬을 겨냥해서 극을 만든다.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이야기일 터이다. 시청률 잡기론 최고다. 대부분은 딴 짓을 하는 남편을 과거와는 달리 울고불고 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것이다. 일을 시작해 보란 듯이 성공해서 자기를 무시했던 주변과 남편에게 복수전을 편다. 그리고 절대 빼놓지 못할 절정은 아줌마의 연애담이다. 백마 탄 기사양반 대신 외제 오픈카 탄 재벌2세 총각이 나타난다. 아줌마들이 바로 이 대목에서 판타지에 푹 빠져서 텔레비전 앞에서 못 움직이고 마는 것이다. 나도 예외 없이 그런 종류의 드라마를 보곤 했다. 신분상승과 대리만족의 욕구를 다소나마 해소하는 것이다. 아줌마들도 행복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는 현상을 보여준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나고, 성의 인식이 관대해지고, 젊음이 오래도록 늘어났다고 봐야하는 지금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난 신조어가 ‘줌마렐라’인 것이다. 

조카딸이 아들 딸을 낳아서 나는 자연스레 ‘이모할미’가 됐다. 할머니 나이가 된 것이다. 이제 아줌마나라 금 밖으로 밀려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지는 않으려 한다. 나는 아직도 꽤 건강하고 마음도 젊게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제대로 하는 것은 별로 없지만 하고 싶은 것이 아직도 많이 있다. 작년엔 뜬금없이 부동산 중개사 자격시험에 도전해 보았다. 큰아들이 내 영어 실력을 항시 얕잡아 봐서 오기로 공부를 했다. 전문용어가 많은 생소한 공부로 장난이 아니었다. 세 시간 동안 시험 보는 내내 너무 집중을 했더니 오른쪽 뇌가 쥐가 난 것 같이 찌릿찌릿 했다. 시험은 떨어졌다. 150문제를 정확히 분석해서 온 채점결과는 7%가 모자란 점수였다. 아들은 기뻐해주었다. 재시험은 문제없이 합격할 것이니 더욱 정진하라고 격려했다. 빠른 시일 안에 남가주 부동산 자격증을 따서 작은 성취감을 맛보려 틈틈이 공부하고 있다.

 ‘살라카 둘라~ 멘치카 블라~ 비비디 바비디 부~’ 생각과 소망이 실현되는 희망의 주문이다. 동화 신데렐라에 등장하는 요정이 호박을 마차로, 누더기 옷을 멋진 드레스로 바꾸는 ‘생각대로 될 지어다’라는 마법의 주문이다.  자주 이 주문 노래를 부른다.

 할머니들이어! 신데렐라의 환상에서 깨지 맙시다. 식지 않는 열정을 가지고 건강하게 파이팅을 외치며 ‘할미렐라’ 라는 신조어를 만듭시다.  

 아무렴.

                                                                                                                                                                               < 2009년 한국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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