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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만세    
글쓴이 : 정민디    17-09-14 12:02    조회 : 11,027

       비만 세    


                                                                                                                 정민디

      

 오늘도 마구 먹는다. 먹고 또 먹는다. 먹을 때만 존재를 느낀다. 큰아들이 나의 가장 큰 즐거움에 딴죽을 건다.

 “또 드셔.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먹는 건 죄악이에요. 먹는 음식을 줄여 아프리카에 굶는   아이에게 25불만 보내주면 한 달은 먹고 산대요. 엄마는 소말리아 같은 델 한 번 가보면    좋겠어요.”

항시 절제해서 적당량만 먹는, 그래서 말 할 자격이 있는 그의 건방진 말투에 대꾸를 못한다. 아들은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효자인지 아닌지 분간이 잘 서지 않는다. 배고파서 울부짖는 사진의 아이 뿐만 아니라, 심지어 내가 그 동안 많이 괴롭혔던 소, 돼지, 닭들에게 까지도 미안했다. 그러나 어쩌랴! 음식만 보면 못 참는 원수 같은 식욕이 재앙인 것을.

                                                                   

 내 몸의 살들이 정말 밉다. 어떻게 하면 얘네 들과 좀 멀어질 수 있을까?  생각하면 생각 할수록 슬픔과 고적함이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그러다 급기야 이런 상상에 까지 미쳤다. 표준 체중 이상의 국민에게는 세금을 물게 하는 것이다. 이른바 ‘ 비만세’라는 명목으로 말이다. 그 세금은 비만으로 야기 되는 각종 성인병을 퇴치하는 데 쓰는 것이다. 살찐 것도 서러운 데 돈까지 손해 보지 않으려면 죽기 살기로 살을 빼야 할 것이다. 게다가 나는 아버지 쪽으로 당뇨병 가족 병력이라서 조심해야 되는 상황이기도 하다. 어찌 되었든 빼야 한다. 무조건 빼야 한다. 덜 먹겠다고  결심을 하곤 하나 작심 3일은 커녕 작심 3시간도 안 돼 또 다른 구원을 찾아 허황된 꿈속을 헤맨다.

나는 오프라 윈프리가 되고 싶다. 나도 그녀처럼 개인 트레이너를 갖고 싶다. 진위는 알 수 없으나 그녀의 냉장고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한다. 그녀의 트레이너가 음식통제를 과격하게 하고 있음에 다름 아니다. 내 냉장고도 꽉 잠가야 한다. 누군가가 칼로리 맞춰 적당량을 배급해 주고 나의 음식 습관을 관리해 주는 무서운 통제가 필요하다는 망상도 해본다.

 운명적으로 다가온 달마산 미황사의 아름다운 자태, 그것은 구원이었다. 템플스테이라는  체험을 꼭 하고 싶었던 차에 신문기사를 보게 된 것이다. ‘참 사람의 향기’라는 참선수행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런데 하루하루 일정을 보니 도저히 그 모든 것을 수행할 자신이 없었다. 잠자고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을 가부좌 하고 참선을 해야 한다. 자세히 살펴보니 자원봉사를 하며 그 모든 수행을 엿볼 수가 있었다. 평소에 좋아하는 단어 ‘적당히’ 또는 ‘눈치 봐 가면서’를 실천하기에 자원봉사가 딱이다. 무엇보다도 그 중 번쩍 눈에 띄는 대목이 있었다. 저녁 불식. 처음엔 불교식으로 먹는 특수한 저녁이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그 불자는 ‘아니 불 ’이다. 예컨대 저녁을 못 먹는 것이다. 드디어 처음으로 저녁을 안 먹는 체험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곳에서는 10일 정도 컴퓨터도 없고 휴대폰도 사용할 수 없다 한다. 연락이 안 되면 걱정 할까 봐 미리 멀리 있는 큰아들에게 보고를 했다.

“홍기야. 엄마 십일 동안 출가 한다. 한국 최남단 땅 끝 마을 해남에 가. 저녁을 못 먹는    대. 그리고 묵언수행을 해야 해서 떠들지도 못한단다. 한 끼 굶는 돈 모아서 아프리카로    보낼 게.”

평소 동양사상에 관심이 많던 큰아들이 반색을 한다. 한국 오면 템플스테이를 꼭 하겠다고 벼르던 그다. “ 오우, 굿. 큰 목소리 못 내고, 많이 먹는 것을 못 한다니 고행 체험이 분명하군요. 부디 새 사람이 되어서 오세요. 행운을 빌어요. 엄마.”

매일 새벽 목탁 알람은 단호하게 울린다. 청아한 울림이다. 깨어야 했다. 귀를 막는다고 안 들리는 게 아니다. 아그(?)스님은 잠도 없으신가 보다. 질기게도 안 일어나는 나를 일찍이 간파 하신 것일까? 유난히 내 방 앞에서만 오래 크게 치시는 듯 느껴진다. 목탁소리가 아스라이 멀어졌다. 방을 여니 밖은 아직 칠흑이다. 밤 새 대지를 살피느라 잠 못 이룬 별들이 졸린 눈을 껌벅거린다. 아니, 내 눈이 껌벅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다시 누울 수는 없다. 뒤이어 확인 잠 깨우기로 아침예불을 알리는 종소리가 스물여덟 번 울린다. 비로소 하루가 시작 될 터이다. 대웅전으로 가서 반야심경을 중얼거리며 삼배를 하고 아침예불을 마치면 나는 잰 걸음으로 공양간으로 가야 한다. 점심 발우공양까지 만 공양간에서 일을 돕기로 되어있다. 저녁은 불식수행을 해야 했으므로 일에서 빼주셨다. 공양간에는 호기심이 가는 음식이 지천이어서 유혹을 견뎌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5시에 당근 주스, 9시에 생강차만 준비하면 된다.

 고작 이틀이 지났는데 여기저기서 비밀 결사대의 암호 마냥 “보살님 얼굴이 너무 맑아졌어요. 예뻐졌어요.” 라고 속삭인다. 묵언을 수행 중이었기에 나는 염화시중의 미소만을 날릴 수밖에 없었다. 이 대목에서 ‘사기야. 묵언이라 고라’ 라고 반박 하실 분들에게 할 말은 없다. 그런데 그런 암호들은 ‘이 뭣고’를 생각게 했다. 내가 무엇을 먹었기에 피부가 그렇게 좋아졌을까,  이렇게 자꾸 예뻐지면 종내에는 어떻게 되는 걸까? 참으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화두였다.

 동이 터 내 눈에 풍경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아름답다. 참선을 열심히 하고 있을 수행자들의 가지런히 벗어 놓은 털신들, 새로운 절집을 짓고 계시는 목수 아저씨들, 밤을 밝히시며 안전을 책임지시는 처사님들, 아침저녁 종을 치시며 우리의 영혼을 깨워주시는 분, 사찰체험을 하러 오시는 분들, 스님의 청아한 염불소리 등 모든 것이 아름답다. 마음에 아름다운 것이 가득 차 있는 데 어찌 내 얼굴이 맑아지지 않겠는가.


얄팍한 마음을 가지고 갔다. 부처님과 스님에게는 죄송했다. 그래도 나는 분명 체험을 했다. 실로 3킬로그램의 몸무게를 줄일 수 있는 다이어트체험을 했고, 행복의 실체에 대해서도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됐다.

 행복지수를 따져 보았다. 우리는 정말 똑같이 먹었다. 조금 밖에 못 먹을 때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남들이 많이 먹을 때 내가 못 먹으면 불행한 것이다. 무릇 모든 현상이 그렇다. 모두 평등하게 위화감이 없는 생활이 행복한 것이다. 나의 유토피아를 발견한 이 쾌거는 실로 놀라운 축복이었다. 그 곳은 비만세를 낼 걱정을 안 해도 되는 곳이다. 그리고 세금을 내야 될 위기가 오면 얼른 그 섬으로 도망가면 된다.

하. 지. 만.

오늘도 백화점 꼭대기 층에서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린다.

  


                                                                                                             < 2010 한국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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