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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못 먹어도 고    
글쓴이 : 정민디    17-10-06 02:22    조회 : 10,348

                                      못 먹어도 고

                                                                                                            정민디


 글 쓰는 일이 날이 갈수록 힘들고 녹녹치 않아 걱정이 많다. 소재만 좋은 게 있으면 잘 쓸 것 같지만 그것도 다는 아닌 것 같고, 공부를 한다고 쫓아는 다니나 단기간에 결과가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아 조바심이 난다. 야심을 갖고 치열하게 공부를 해도 모자랄 판에  늘 요행을 바라는 사행심이 삐죽이 고개를 내밀곤 한다. 끗발에 좌우되는 화투판에서 자라온 생리가 아직도 나에게 남아 있어서일까.

 

셈을 할 줄 알기 시작하자 할머니는 나에게 화투를 가르쳤다. 초등학교 시절에 화투를 배우게 된 나는 웬만한 타짜 부럽지 않은 실력을 쌓았다. 동양화로 그림공부를, 점수계산으로 산수공부를, 돈이 왔다 갔다 하니 경제를, “일송, 이매조, 삼사쿠라” 등으로 일 년 열두 달 월력을 배웠다. 될성부른 떡잎으로 보인 나는 민화투를 거쳐 고스톱을 연마하고 고수들만 친다는 전설의 ‘육백’까지 마스터한, 할머니의 진정한 제자가 됐다.

흔들고, 싸고, 쪽, 뻑, 폭탄에 쓰리 고, 피바가지, 광박, 맨땅에 헤딩하기네, 아이고! 면 처녀 했네 등 용어가 원색적이고 사뭇 전투적이다. 화투판에 쓰이는 말은 그래야 잘 어울리고 노름판은 후끈 달아오른다. 이런 가정환경 덕분에 내 입담이 걸쭉하게 된 것이고 ‘못 먹어도 고’를 외치며 배포를 키웠던 것이다.

우리 집안이 별로 고상하지 못한 화투놀이 문화를 갖게 된 것은 한 많은 가족사 때문이다. 아버지 아래로 네 여동생이 온통 과부가 됐다. 열여덟에 시집가서 서른다섯에 청상과부가 된 할머니를 필두로, 첫째고모는 동성애자라 남편이 없고, 둘째 고모의 남편은 6.25전쟁 후 월북 했고, 셋째는 결혼하고 한두 달 살았을까 말았을까 하고는 돈 번다고 집을 나간 신랑은 유복자만 남겨 놓았고, 그나마 잘 살 던 넷째도 결혼생활 8년 만에 급성췌장암으로 남편을 보냈다. 고모들은 명문 S여고나 K여고를 나왔다. 똑똑하면 팔자가 사납다는 속설을 뒤집고 똑똑한 것을 밑천 삼아 힘든 세월을 슬기롭게 헤쳐 나갔다.

생활력이 강할 수밖에 없었던 고모들은 집안에 별미였던 칼국수와 만두로 음식점을 내서 대박이 났다. 좋은 학교 출신 쌍과부미녀가 하는 음식점이라고 소문이 났고, 역시 학교는 좋은데 나오고 봐야 하는지 동창생 인맥도 한 몫을 했다. 무엇보다도 음식 솜씨가 좋았고, 그래서 자식들을 남부럽지 않게 키웠다.

시댁이 없는 고모들은 자주 친정을 찾아 선배 과부인 우리할머니와 화투를 쳤다. 텔레비전도 없고 마땅한 오락이 없었던 시절이었는지라 동양화로 시름을 달래곤 했다. 그래도 각자 가정이 있어 ‘주머닛돈이 쌈지 돈’ 이 아니니 싱겁지 않고 재미가 있었을 터이다. 무릇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어 돈을 빼앗아야 진정한 노름판의 묘미가 난다.

식구들은 모두 프로였다. 패를 읽는 차원이 다르다. 광이 두 개나 세 개 들면 영락없이 ‘고’를 부르며 좋다고 치는 사람은 아마추어다. 우리는 광 3패가 들어오면 무조건 쉰다. 하얀 광목을 빳빳하게 풀을 먹여 신문지를 겹겹이 넣어 화투방석을 만들어 손이 안보이게 착착 소리가 나게 내리쳤다. 실제로 찰싹 소리가 나면 뒤 패가 더 잘 붙는 것 같기도 했다. 화투를 내리치는 소리는 장구의 장단 소리 마냥 박자를 맞추었다. 이것이 시간을 끌지 않는 고수들의 풍경이다. 화투판에서는 끗발과 실력의 절묘한 조화가 그 날의 운세를 좌우 하는데, 실력과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는 게 노름의 생리다. 그래서 노력을 해도 운이 돕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는 뜻으로 사람들이 흔히 자조적으로 내뱉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로 그 날의 패인을 돌리곤 한다. 각자의 손에 들린 패에 얽히고설킨 인생살이가 있다. 생사의 기로에서 예기치 않게 기사회생해서 순간적으로 희비가 엇갈린다. 똥 껍데기 하나로 3점 스톱을 할 수 있게 되어 가정 경제의 난관을 극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을 무시한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에 따른 근로 대가의 손익계산은 늘 적자이고, 음식을 열심히 날라서 개평을 받은 며느리 주머니만이 제일 쏠쏠하게 두둑했다.

 화투판의 수장은 할머니였는데 늘 평화로운 화투를 지향하셨다. 단을 가르고 광을 가르고 모든 패를 갈라서 점수가 나지 않아 돈이 오고가지 않는 것을 최상의 한판으로 여기셨다. 화투를 치다보면 교양과 지성으로 감춰 둔 본성이 드러나 상대의 내면이 드러나곤 한다는 게 할머니의 지론이었다. 화투치기로 그 사람의 인품을 결정하셔서 우리 집의 사위가 되려면 할머니와의 한판 화투치기가 통과의례가 될 정도였다.  

 내 나이 25세 즈음 돌아가신 후에는 집안에 ‘할머니와 화투’라는 구심점이 없어져서 모두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새하얗게 빛을 발하던 화투방석은 다림질 방석으로 바뀌었다.


어쭙잖은 변명이지만 28년 동안 영어권에 살며 한국문학 접하기가 힘이 들었다. 첫 번째 핑계로는 낯선 땅에 적응해서 살기가 바빠 문학에 대한 지식을 습득할 겨를도 없었다. 이런 부족한 상태로  ‘맨땅에 헤딩하기’ 로 글을 쓰고 있고 ‘ 못 먹어도 고’ 의 배짱으로 글을 여러 사람에게 내보이고 있다. 그러니 매번  어쩔 수 없이 위축이 되곤 한다.

어려서의 가정교육은 삶의 지대한 영향으로 남아 있어서 가끔 글쓰기가 막막해질 때 화투판의 판세가 뒤집히듯 글발에 끗발이 있기를 기대하는 노름꾼의 심정이 된다.

글은 기삼(技三)으로 밖에 못쓰고는, 합평해주시는 스승님이나 문우님들이 집안에 좋은 일만 가득하여 제발 너그러이 평해주실 운칠(運七)에 기대를 걸고 집을 나선다.




                                                            에세이스트  1~2월 호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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