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춤
정민디
둥 둥 둥 둥. 북소리가 들린다. 내가 춤을 출 차례다. 탈의 조그만 눈구멍으론 앞이 잘 보이지 않지만, 많이 연습하고 여러 번 공연한 감각으로 잘 추어 낼 것이다. 북소리에 먼저 추던 사람이 들어간다. 나는 아~쉬이, 아~쉬이 외치며, 사설을 시작 한다.
산중에 무력일하여 철가는 줄 몰랐더니
꽃피어 춘절이요, 잎 돋아 하절이라
오동 낙엽에 추절이요 , 저 건너 창송녹죽에 백설이 펄펄 휘날리니 이 아니 동절이냐.
나도 본시 팔도강산에 한량으로 이 좋은 풍류 정을 만났으니 어디 한 번 놀고 가려던~~~
낙양동천 이화 정.
나는 장삼을 휘저으며 무대를 누빈다. 마치 관객을 향해 비웃기라도 하듯 쳇 머리를 흔든다. 탈의 표정이 전해진다. 얼~쑤. 얼~쑤. 여기저기서 추임새 소리를 내어 흥을 돋궈준다. 숨이 차온다 . 이미 탈 속의 산소는 희박해졌다. 눈 둘, 코, 입 구멍 하나가 조그맣게 뚫려 있으나 격렬하게 추는 춤사위 때문에 그 구멍들로 들어오는 공기만으로는 폐에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다. 탈속 내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르고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을 것이다. 춤을 추고 있는 나는 자유다. 내가 누군지 못 알아보는 야릇한 쾌감이 장삼자락에 휘 감긴다.
탈춤이란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이 가면으로 얼굴이나 머리 전체를 가리고 다른 인물, 동물 또는 초자연적 존재(신) 등으로 분장한 후 음악에 맞추어 춤과 대사로써 연극하는 것을 말한다. 탈춤은 조선 전기까지 각 지방에서 행해지던 가면놀이이다.
봉산탈춤은 약 200년 전부터 매년 단오와 하지날 밤에 행해졌다. 봉산탈춤의 주제 의식은 사악한 것을 내 쫓으려는 의도의 춤으로 시작해서 할미의 원혼을 해원 시키는 지노귀굿으로 끝나는 제의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파계승을 풍자하여 불교의 관념적 초월주의를 비판하고, 양반과 노비 사이의 신분적 갈등을 드러내며, 여성의 억울한 죽음을 통해 가부장적 사회의 모순을 고발하는 주제 의식으로, 조선 후기의 사회상과 의식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비판 정신은 단순한 갈등과 대립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두 대상 사이의 화합을 추구한다는 정신도 있다. 피리·젓대·해금·북·장구 등으로 구성된 삼현육각으로 연주하는 염불과 타령·굿거리 곡에 맞추어 추는 춤이 주가 되며, 가면극에 비해 중국 한시구절의 인용과 모방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봉산탈춤은 해서, 즉 황해도 전역에 걸쳐 분포되어 온 해서탈춤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탈춤으로, 다른 탈춤에 비해 춤사위가 활발하며 경쾌하게 휘뿌리는 장삼 소매와 한삼의 움직임이 화려하게 펼쳐진다.
한동안 깊이 빠져들었던 탈춤에 대한 방대한 공부 중에서 요약한 것이다. 1970년대 군부독재 시절, 입은 있으나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시절 상징적으로 탈춤의 중흥기가 다시 도래했다. 힘없는 민중은 이런 방식으로나마 외치고 토해 냈어야 했다. 대학시절 기숙사에서 ‘페퍼 포그’ 냄새를 맡으며, 어쭙잖은 단식투쟁을 하며 탈춤의 향수를 키웠다. 드디어 오랜 염원이었던 봉산탈춤을 미국에서 추게 됐다. 당시 내가 속해 있던 ‘미주 봉산 탈춤 보존회’ 는 조국을 대표하는 문화사절단이나 된 양 공연을 원하는 곳은 어디든지 뛰어갔다. 정말 운 좋게도 마침 미국 딸네 집에 머무르고 계시던 인간문화재 김선봉 선생님께서 신문에 난 우리 팀의 기사를 보시고 한걸음에 달려와 주셔서 의기충천하게 됐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도리어 고맙다고 하시며 많은 시간을 진심을 내어 전수해 주셨다. 우리는 정말 제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에 서울에서 탈 제작과 봉산탈춤으로 역시 인간문화재 이신 김기수 선생님도 초빙하여 가르침도 받고, 공연에 필요한 의상, 탈, 소도구 등을 마련했다. 우리 문화를 해외에서도 알린다는 나 혼자의 거국적인 자부심으로 혼을 불어 넣어 혼이 빠지게 추어댔다. 그 결과 나는 무릎에 이상이 생겨 공연은 멈추게 되었지만, 계속 새로운 단원들을 가르쳐 나 대신 투입 시켰다.
내가 탈춤을 좋아 하게 된 이유는 희곡문학에 가까운 대사중심으로 표현하는 극적인 요소가 중심이 된다는 것이다. 말과 춤 동작으로 현실의 부조화와 불합리를 날카롭게 풍자 비판함으로써 기존 원리의 허상을 고발하는 의식이 있어서 좋았다. 지리멸렬했던 내 생활과 척박한 이민생활의 해소로 찾은 돌파구인지도 모른다. 나는 탈을 쓰고 소리치며 울분을 토해내, 격렬한 춤동작으로 나온 땀으로 격정을 식혔다.
나는 그 동안 봉산탈춤에 중요한 덕목을 잊고 살았다. 화해가 있고 미움은 없다. 비록 풍자와 해학으로 사회를 고발할 지라도 결국은 화합을 원하는 것이다. 민중은 지극히 순박하고 정이 많아 미움을 남기지 않는다. 그래서 탈춤의 전 과장 놀이를 끝내고는 썼던 모든 탈을 상징적으로 태워버리는 것이다.
나는 탈 대신 선글라스를 끼기 시작했다. 탈을 쓰고 주저리주저리 내뱉고 눈 가리고 아웅 하던 달콤한 유혹을 떨쳐 버리기가 아쉬웠기 때문일까. 아직도 나의 속성을 못 버렸다.
뭔가 늘 고발할 건수를 노린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비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내 눈에 붙어 있는 검은 유리에 상이 잡히면 누군가는 나의 해학과 풍자를 감당해야한다. 상대를 미워하고 편견이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냥 탈춤을 추면서 일삼던 익숙한 버릇이다. 상대가 못 받아들이고 난감해 해서 ‘사설’ 에 익숙한 내 입을 다물어야 함은 정말 쓸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언제 쯤 나는 까만 색안경을 불구덩이에 과감하게 던질 수 있을까?
아직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