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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보다    
글쓴이 : 박병률    17-11-04 08:02    조회 : 4,977

                                               

                                                   간보다

  1, 아내가 고우면 처갓집 말뚝 보고 절한다?

 

  아내의 생일날이었다. 불고기 익는 냄새가 코를 자극할 때 사위가 장모님 축하합니다.” 하며 상추쌈을 한 입 싸서 아내 입에 넣어 주었다. 가만히 보니까 상추 위에 불고기를 얹고 젓가락을 자기 입으로 쭉쭉 빨았다. 그리고 그 젓가락으로 쌈장을 듬뿍 찍어서 고기 위에 올려놓았다. 아내는 그런 줄 모르고 고맙네.’라고 말한 뒤 웃으면서 받아먹었다. 그다음 상추를 들더니 자기 젓가락을 입으로 쭉 빨아먹고 고기를 얹었다. 젓가락을 입으로 또 빨아먹고 쌈장을 고기 위에 올려놓았다. 상추쌈 완성! 자기 입으로 들어가나 했더니 내 앞으로 내밀었다. ‘들자니 무겁고 놓자니 깨진다는 말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결심했다.

  “사위 사랑은 장인이야!”

  큰소리로 생색을 내고 받아먹었다. 한 번 더 고마움을 표시했다.

  “사위가 싸준게, 고기가 겁나게 달짝지근 하데이.”

  그날 밤 잠자리에서 아내가 나한테 물었다.

  “사위가 당신한테 상추쌈을 싸줬지예, 상추 위에 고기 한 점 올리데예, 그리고 젓가락을 입으로 쪽, 빨아먹고 쌈장을 올렸지예. 진짜 꿀맛 나던교?”

  나는 아내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오히려 흉내를 냈다.

  “사위가 상추쌈에 꿀을 발라줬지예? 나는 두 눈으로 똑똑히 봤지예.”라고. 장기를 둘 때장이야 하면 멍이야.’ 하듯 아내와 말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내가 다시 한번 사위 사랑은 장인이라고 하자, 아내는 장인이 아니라 장모라고 우겼다. 아내의 말끝에서 내 결혼 초년병 시절이 떠올랐다.

  눈이 많이 오고 추운 겨울날, 처가에 들렀을 때였다. 처가 친척들이 방안에 가득 모여 있었다. 나는 무심코 코트를 입은 채 어른들께 절을 했다. 절을 한 다음 어른들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는데 처 큰아버지라는 분이 한 말씀 하셨다. “절을 할 때는 코트를 벗고 해야 하네.”라고. 나는 그때 얼굴이 화끈거리고 땀이 비 오듯 했다. 그 후 나는 처갓집 마당에 들어서기 전에 옷 매무새를 살피고 혹시 실수할까 봐 긴장이 되었다.

처가집은 소를 키웠기 때문에 마당 한구석에 두엄자리가 있고 쇠말뚝이 꽂혀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아내와 함께 마당에 들어서면서 큰소리로 외쳤다. “장인어른, 장모님 안녕하세요?” 라든지 저희 왔습니다.”라고.

  장모님이 집에 계시면 버선발로 사위 마중을 나올 텐데, 집에 아무도 없을 때 외양간에 있는 소가음매하고 대꾸를 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만약 소가 쟁기질하러 나갔다면 집은 텅 비어있고 영락없이 쇠말뚝에 절하는 꼴이다. ‘사위는 백년손님이라고 흔히 말하듯, 처가에 가면 씨암탉을 잡아줘도 나는 왠지 모르게 장인, 장모님이 어렵게 느껴졌다. 내 성격 탓도 있겠지만 장인, 장모님 앞에서 아내 손을 잡는다든지, 맛있는 것이 있어도 우리 사위처럼 어른에게 상추쌈을 싸드린다는 것은 엄두도 못 냈다. 하지만 자식들이 앞가림할 만큼 성장하다 보니 내 배짱도 덩달아 두둑해진 모양이다. 작년 가을, 아내와 함께 단풍구경 삼아 덕수궁 돌담길을 거닐었다. 저녁노을이 질 때 아내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슬며시 잡았다. 아내가 웃으면서 한마디 건넸다. “신혼 때 내가 손을 잡으면 뿌리치대예.”하며 핀잔을 주었다. 그때는 그랬을망정, 사람들이 보든 말든 아내 손을 꼭 잡고 앞뒤로 흔들었다. 하기야 장인어른이 돌아가실 무렵에는 목욕탕에서 등도 밀어드렸지만, 어느 틈에 벌써 내가 사위를 보다니.

 

   2. 싱거운가, 짠가?

 

  여름날 오후, 내가 잘 다니던 부동산 중개사무소 앞을 지나는 중이었다. 맑은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더니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집이 있지만, 쉬어갈 요량으로 부동산 중개사무소에 들렀다. 사장이 내 또래고 무엇보다 친절해서 우리 집 방이 나오면 주로 그 집에 내놓는 편이다. 내가 사무실에 들르면 언제나 미안할 정도였다. 커피도 타 주고, 사과도 깎아주고, 때론 오미자도 한 컵 따라주었다.

  그날, 문을 열고 들어서자 커피를 타고 티스푼을 입으로 쪽 빨아먹었다. 나는 순간 포착을 했지만 사장은 내가 들어오는 줄 몰랐던 모양이다. 의자에 앉기도 전에 커피 한잔해야지.”하며, 내 의사도 묻지 않고 그 티스푼으로 커피를 떠서 잔에 넣고 천천히 저었다. 그리고 티스푼을 한번 더 빨아먹고 소형 냉장고에 집어넣었다. 그러고 보니까 사장은 매번 커피를 탈 때마다 냉장고에 들어있던 스푼을 꺼내서 커피잔을 저었다. 나는 처음에 티스푼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소독을 하는 줄 알았다.

  내 생각이 허물어지는 순간, 아내 생일날 사위가 상추쌈을 싸서 내 입에 넣어줄 때와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사장이 커피를 내 손에 쥐여주었다.

  “먹어. 말어?”

  잠시 갈등이 생겼다. 망설이다가 웃으면서 울며 겨자 먹듯 했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가사가 들어있는 조용필의 노래<그 겨울의 찻집> 노랫말이 머리에 둥둥 떠다녔다.

  “아따, 내 입에 간이 딱 맞네. 자네는 커피를 탈 때 싱거운가, 짠가 간을 보는 모양일세.” 이어 조심스럽게 우리 사위 이야기를 꺼냈다.

집사람 생일 때 말일세. 우리 사위는, 상추에 자기가 먹던 젓가락으로 고기를 올려놓고, 젓가락을 두어 번 빨아먹더니 쌈장을 올려놓더군, 그런데 말이야, 집사람은 그런줄도 모르고 고맙다.’며 받아먹더라고.”

  “당연히 몰랐은 게 받아먹었지, 알았다면 먹었겠어?”

  ()

  사장이 아주 단호하게 말하길래 나는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그와 맞물려 어머니가 밥알을 씹어서 어린 동생 입에 넣어주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그다음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이유식을 수저로 떠서 맛을 본 뒤, 그 수저로 아이를 떠먹이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부동산 사장이 타준 커피를 마셨다. 누구랑 주거니 받거니, 이런 일들은 무엇보다 정을 우선순위로 세웠기에 가능한 모양이다. 나는 사장과 오랜 정을 쌓았다. 정이란, 고무줄과 같아서 잡아당기면 늘어나고 놓치면 줄어든다. 그런 까닭에 오늘 벌어진 일에 대하여 사장한테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입을 다물고 있다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한바탕 쏟아지던 비가 그치고 햇살이 눈부시다. 자리에서 일어서며 천장에 매달린 CCTV를 손으로 가리켰다. “CCTV는 잘 돌아가는겨?”

                                                                       한국산문 2017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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