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웅
박유향
며칠째 이어진 한파 때문에 지난주 내린 눈이 채 녹지 않고 있었다. 남편과 함께 T부부를 만나러 가는 길, 국도 변 메마른 나무 위에는 잔설이 남아 있었다. 나무 위에서 새가 푸드덕거리자 가지 위에 쌓여있던 눈이 흩어졌다. 흩어진 눈발은 허공에서 잠시 반짝이다가 이내 사라졌다. 또 눈이 오려는 걸까. 겨울 오후의 하늘은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히터 때문에 차안 공기가 답답했다. 가슴을 묵직하게 누르는 공기를 참으며 졸다가 깨기를 반복했다. 기시감이 느껴졌다. 지난밤 꿈에 나왔던 장면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T의 집은 남한산 자락에 있었다. 포장도로에서 벗어나 산비탈을 오르자 작은 산사가 나왔다. 산사를 지나 몇 채의 집이 모여 있고 T의 집은 그중 가장 입구에 위치했다. 근처에서 전화를 해두었던 터라 T는 집 밖에 나와 있었다. 등산용 점퍼와 모자 차림이었다. T는 유별나게 친절한 성격이었다. 같이 있는 모든 사람들을 세심하게 챙겨 친구들 사이에 인기가 좋았다. 나도 남편 친구들 중 유일하게 그의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었다. 물어볼 일이 있으면 그에게 전화를 했다. 다른 친구 부인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주차할 자리쯤이야 얼마든지 있었지만 친절한 T는 호들갑스럽게 자리를 안내했다. T의 아내가 현관 앞에서 웃고 있었다. 조용한 마을에 자동차 소리가 들리자 동네 개들이 일제히 짖었다.
거실에 들어서 T가 모자를 벗자, 성긴 머리카락이 어쩔 수 없이 눈에 들어왔다. 오면서 내내 마주하기 싫다고 생각했던 순간이었다. 마지막 봤던 여름에 비해 얼굴도 몰라보게 수척해져 있었다. 그때는 T가 췌장암 진단을 받기 전이었다. 그는 언제나처럼 유쾌하고 활기 넘쳤었다. 그 당시 아마도 몸속 깊숙한 데 숨어있었을 암세포가 이제 온몸에 퍼져 기세를 떨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무너져가는 나무처럼, 50대 중반의 남자가 검은 숯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무엇에도 거역할 힘이 없는 마른 나무가 깊고 어두운 늪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남편한테 들어 T의 모습은 충분히 상상해 두었지만 실제로 보니 마음먹었던 만큼 태연할 수 없었다. 나는 속으로 연습해 두었던 대로 눈을 크게 뜨고 생각을 딴 데로 돌렸다. T부부와 남편은 천연덕스럽게 농담을 주고받았다. 나도 따라 웃었다.
T의 아내가 다과를 준비하러 주방에 간 사이 T는 그동안의 병세에 대해 이야기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항암치료를 하고, 병원에 갔다 오면 사나흘은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힘들고, 이틀정도는 컨디션이 괜찮다고 했다. T는 웃으면서 이야기 했지만 우리는 달리 대꾸할 말이 없었다. 할 말을 찾지 못하고 티브이에 시선을 던졌다. 볼륨을 최대한 낮춘 티브이에서는 격투기 경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거실을 둘러봤다. 짧은 겨울 오후의 빛이 사위어 가는 거실, 서쪽으로 난 창을 통해 들어온 햇살은 바닥에 음영을 만들었다. 오후의 햇살은 힘이 없었고, 해가 들지 않는 쪽에는 묵직한 정적이 내려앉아 있었다.
석 달 전 남편은 T로부터 가슴통증이 심해 병원에 가야해서 저녁 약속을 못 지키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후 나는 T가 암 진단을 받고, 입원을 하고, 이런 저런 검사 끝에 수술도 불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퇴원했다는 소식을 남편을 통해 전해 들었다. 중년에 들어서 간간이 동년배 친구들이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는 했지만 이렇게 가까운 친구에게 닥친 경우는 처음이라서 남편은 그간 내내 마음의 갈피를 못 잡는 것 같았다. 불과 서너 달 전까지만 해도 늦도록 함께 술 마시고 짓궂은 농담이나 하던 친구였는데 이제는 서로 다른 길을 걷는 사이가 되어 이렇게 어색한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는 것에 T도, 남편도 당황스러운 것 같았다.
T의 아내가 모과차와 과일을 가지고 왔다. T의 아내는 성격이 활달한 여자였다. 밝은 인상 때문에 외로워본 적도, 힘든 일을 겪어본 적도 없을 것 같았다. 그런 그녀가 앞으로 조용히 혼자 차를 마시는 시간이 많아질 것이란 생각이 자꾸 들었지만 애써 지웠다.
남편은 그동안 병원에 갔다 올 때마다 “놀라울 정도로 둘이 천연덕스럽다”고 감탄했었다. 병에 걸린 당사자나 그 배우자나 도무지 불행을 겪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실감이 안 나는 게 아닐까” 내가 말했었다.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 건지 모를 것 같아” 라고도 했다.
그들은 이제껏 본 적 없는 절대적 불행 앞에서 차라리 담담함을 택한 것 같았다. 친절한 T와 명랑한 그의 아내는, 화를 내고 반항하는 것보다 순응하고 따르기로 운명과 타협함으로서 남은 시간을 평화롭게 보내고 있는 듯했다.
T는 자신이 떠나고 난 후 가족들이 처리해야 할 일 중 몇 가지를 남의 이야기 하듯 남편과 의논했다. 투병생활 초기엔 T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다그치던 남편도 이제는 이런 이야기들을 작별인사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남편은 친구를 안심시키려고 애썼고 편안하게 보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때였다. 덩 덩 덩, 종소리가 울렸다. 산사에서 저녁 무렵 치는 종이었다. 새들이 푸드덕, 날고 잔설들이 흩어졌을 것이다. 산사에서 울린 종소리는 산으로 퍼져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마감하고 있는 T의 집으로, 서쪽 창을 통해 햇살이 들어오고 있는 거실로, 침묵하고 있는 거실 어두운 한켠으로, 식탁 위에 놓인 한과 선물상자 위로, 소리 없이 싸우고 있는 티브이 속 격투기 선수들 틈으로, 마시다 만 모과차가 담겨있는 찻잔으로, 자신이 죽은 뒤 남은 가족을 걱정하는 T의 성긴 머리카락 사이로, 스물 몇 해를 같이 산 남편의 유언 같은 말을 가만히 듣고 있는 그 아내의 드리워진 속눈썹으로 스며들었다.
“이 시간 쯤 절에서 종을 치더라구요.” T의 아내가 말했다.
“컨디션 좋을 때는 오후에 잠깐 산책 나갔다가 저 종소리 들리면 돌아와. 산에서 어두워지면 무섭더라구” T가 말했다.
나는 겨울 오후 마른 나무 사이를 걷는 T를 상상했다. 휘적휘적 걷고 있는 그는 몹시 춥고, 또 외로워 보였다. 무엇보다 그는 어둠이 자신을 덮칠까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일본에 가서 무슨 절 입구까지만 가고 들어가 보지도 않았었잖아” T가 몇 해 전 함께 갔던 일본 여행 이야기를 꺼냈다. 동경의 하라주쿠 거리 부근이었다. 절 앞에서 마침 축제가 열리고 있어서 퍼레이드만 구경하고 그대로 돌아왔었다. 아쉬움 같은 건 없었다. 즐거운 시간이었고, 축제 같은 날들이었다.
“그때 못 갔던 거 지금 가볼까” 옆에 있는 산사에 가보자는 말이었다.
우리는 모두 일어났다. T는 외투와 모자와 장갑을 챙겼다. 산사까지는 몇 걸음 되지 않았다. 낡은 법당과 사랑채 하나가 전부인 작은 절이었다. 종은 대체 어디서 친 걸까. 둘러보았지만 종도, 종을 쳤을만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인적 없는 겨울 산사는 을씬년스러웠다. 우리는 말없이 경내를 둘러봤다. 산 그림자가 드리운 마당엔 채 녹지 않은 눈이 얼어 있었다. 늙은 개 한 마리가 우리를 보며 느릿느릿 지나갔다. 산사에서 살고 있는 이 개는 낯선 방문객에게 적대감도 호의도 없는 것 같았다. 다만 검고 깊은 눈으로 이따금씩 우리를 쳐다볼 뿐이었다.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천천히 발걸음을 돌려 차가 세워져 있는 곳으로 왔다. 그리고 인사를 했다. T와 나는 악수를 했다. 늘 하던 또 보자는 말은, T도 나도 하지 않았다. 손을 흔드는 T부부를 뒤로 하고 산길을 내려왔다. 나뭇가지 사이로 산사가 보였다. 늙은 개가 우리를 향해 서 있었다.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는 검고 깊은 눈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산을 내려와 국도로 접어들자 속력을 잔뜩 올린 차들이 스쳐 지나갔다. 우리도 서서히 속력을 올렸다. 백미러로 멀어져가는 산을 봤다. 막이 내리듯, 산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