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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김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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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하나의 디아스포라    
글쓴이 : 김미원    12-05-13 20:19    조회 : 4,446
또 하나의 디아스포라
김미원
한때 대중가요계를 주름 잡았던 통기타 가수들이 나와 옛이야기도 나누고 노래도 하는 TV 프로그램에서였다. 조영남 씨가 한 가수의 장례식에 갔더니 고인 생전의 히트곡을 부르는데 우스운 가사 때문에 웃음이 나오는 걸 참느라고 혼났다며, 자기 장례식장에서 <모란동백>을 불러달라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울컥 눈물이 났다.
나 어느 변방에 떠돌다 떠돌다/어느 나무 그늘에/고요히 고요히 잠든다해도/또 한번 모란이 필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 <모란동백>부분, 이제하 작사, 작곡
그가 어느 변방에 떠돌다 쓸쓸히 죽는 모습이, 아니 내 모습이 떠올라 울컥했던 것 같다. 변방이란 단어 하나만으로도 코끝이 찡한데 쓸쓸히 떠돈다니...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모든 인간은 쓸쓸히 변방을 떠돌다 세상을 마감하는 게 아닐까.
그 노래를 듣는 순간 프랑스에서 만났던 시인 가이드 L이 떠올랐다. 파리 드골 공항에 도착했을 때 파리지앵답게 트렌치코트를 입고 나타난 선한 인상의 그를 보고 역시 프랑스의 가이드는 멋쟁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버스에 올라 그가 마이크를 잡는 순간 좋은 느낌이 깨졌다. 그는 우리 일행을 ‘여사님’으로 불렀다. 말끝마다 여사님으로 마무리하는 그가 가벼워 보여 신뢰가 가지 않았다. 게다가 저녁 식사를 하면서 맥주 한 캔을 시켜 마시는 게 아닌가. 그는 약간 불콰한 얼굴로 프랑스 혁명과 에디트 피아프와 위고를 이야기했다.
여행 둘째 날, 그는 35명이나 되는 일행을 인솔하면서 노트르담성당에서 소르본느 대학까지 횡단보도를 몇 개씩이나 건너는데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장서 걸었다. 덕분에 우리 일행은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서로를 챙기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몇몇 사람들 입에서 ‘가이드를 바꿔야한다’는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행이 계속될수록 우리 일행은 어느 새 그에 대해 관대해져 갔다. “흔들리는 버스에서 마이크나 잡는 아들이 서러워 아버지는 회환의 눈물을 흘리셨어요.” 교장선생님이었던 아버지는 자기 모습을 보고 대취하셨다며 아무렇지 않은 듯 말을 뱉는 그의 마르고 긴 얼굴이 안쓰러워 보였다. 충청도 양반의 후예인 그는 한국 대학과 대학원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프랑스 소르본느대학에서 박사과정으로 한국과 프랑스의 현대시를 비교연구했다고 한다. 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왔다가 가이드를 하며 눌러앉아 17년째 파리에 살고 있다고 했다.
프랑스 여행 종반 무렵 우리는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해변 디에프 성 근처에서 하루를 묵었다. 별이 총총 빛나는 까만 그믐밤, 우린 해변에 둥그렇게 둘러앉았다. 성 전체를 감싸며 켜있는 불빛이 묘한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디에프 성 때문이었을까. 하얀 포말로 부서지는 파도 소리, 갈매기 울음 소리 때문이었을까. 우리는 경쾌한 노래보다는 슬픈 노래들을 불렀다. 그의 차례가 되자 삐쩍 마른 몸을 비틀어 가며 외로움에 몸부림치듯, 절규하듯 <갈 수 없는 나라>를 불렀다.
내가 헤매어 찾던 나라/맑은 햇빛과 나무와 풀과 꽃들이 있는 나라/그리고 사랑과 평화가 있는 나라/그러나 그 곳은 갈 수 없는 낙원/네가 가버린 갈 수 없는 나라 - <갈 수 없는 나라>부분, 조해일 시, 이주호 작곡
난 그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어둠이 가려주는 줄줄 흐르는 눈물을 그대로 두며 그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에게 한국은 갈 수 없는 나라일까. 한 때 청운의 꿈을 꾸고 부푼 가슴으로 프랑스 땅을 밟았던 그가 흔들리는 버스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는 지금 모습을 후회하는 걸까.
그날 밤 뿌리던 내 눈물은 그를 향한 것 뿐 아니라, 이 세상 여러 나라에 뿔뿔이 떨어져 살고 있는 이방인이자 흩어진 사람들(디아스포라)을 향한 것이었다. 아니, 잠깐 왔다 가는 인생에서 변방의 어느 낯선 여인숙의 하룻밤같은 인생을 사는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에게 흘리는 눈물이었을 게다.
헤어지는 날, 그는 강씨 부인(그는 아내를 그렇게 불렀다)이 한국의 일회용 커피를 제일 좋아한다며 우리에게 남은 것들을 놓고 가라며 비닐 봉투를 돌렸다. 그는 일회용 커피믹스, 고추장, 김 등이 가득 든 비닐 봉투를 들고 우리가 탄 버스를 향해 오래오래 손을 흔들었다. 그동안 짧게 스쳤던 많은 가이드들이 생각났다. 그들과의 이별은 서운함을 동반한 슬픔, 그들을 그곳에 떨어트려놓고 나 혼자 고국으로 돌아가는 미안함을 느끼게 한다.
한국에 돌아와 그가 건넨 시집을 펼쳤다. 1997년에 발행된 시집 사진 속에서 주름도 없고 눈도 크고 콧날도 오똑한 청년이 사진 속에서 웃고 있었다. 문득 어느 누구도 발자크, 위고, 플로베르를 시인의 감수성을 지닌 문학 전공자인 그 보다 더 잘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어로 마담(madame)을 여사님으로 높인 것이라는 생각도. 프랑스에 가시거든 시인 가이드를 찾아 보시길...
 
월간에세이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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