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한 번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무엇하고 사는지도 생각해 보지 않았을 것이다. 심하게 말하면 내가 바람이 나도 모를 사람이다. 내 친구들은 나를 참견 안하는 남편의 성격을 무척 부러워했다. 남편이 도사급 이라며 내가 시집은 정말 잘 갔단다. 나는 그런 ‘무 개념 도사’는 좋아하지 않는다. 단순하고 세상 철이 없는 그는 늘 평화스러운 비둘기의 얼굴로 저 혼자 행복해 했다. 최소한의 경제 활동을 하면서.
작년 가을, 아들 둘이 동시에 이년 여 공부를 더 해야 한다고 집을 떠났다. 남편과 나만 남았다. 나는 제안을 했다. 남편 보고 이제 그만 따뜻한 나라로 훨훨 떠나보라고 했다. 내가 주는 모이만 먹고 날지도 못하는 ‘닭 비둘기’로는 이제 그만 살라고 했다. 비둘기도 훈련을 시키면 1분 동안에 1km를 날 수 있다 한다. 그러니 당신도 훈련하면 잘 나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해 주었다.
남편과 나는 결혼생활을 잠정적으로 해지 했다. 억지로 이름을 붙이자면 ‘졸혼’관계가 된 것이다. 호적까지 건드린 것은 아니다. 각자 살고 싶은 곳에서 살아 보기로 했다. 경제적인 문제나 여러 가지 다른 문제 일체를 당분간 의논을 않기로 했다. 나는 한국으로 친정 식구를 찾아 왔다. 남편은 평소에 늘 가고 싶었던 곳, 그리고 친구도 좀 있는 중국으로 떠났다. 우리는 매너리즘에 빠질만한 충분히 지겨운 시간을 지나왔다.
얼마 전, 남편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비둘기 2세 아들을 찾아간 모양이다. 아들이 나에게 전화로 하는 말이, 아빠는 정말 질투가 날 정도로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다 한다. 남편은 끝내 적응 못했던 아내의 동토에서 풀려난 것이다. 진작 내 몰아 줄 걸 하는 후회를 잠깐 했다. 하지만 비둘기의 귀소본능이 걱정이 된다.
비둘기남편은 귀소본능을 아주 잃어버릴지, 아니면 어떤 메시지의 쪽지를 입에 물고 나타날 지 자못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20009 / 4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