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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산과 아들    
글쓴이 : 오길순    18-10-30 17:41    조회 : 5,307

                                       돌산과 아들

                                                                                             오길순

 인도 영화 <<The Mountain Man>>의 주인공 만지히는 아내가 실족사한 돌산을 향해 울부짖는다.

  “한 번 잡으면 끝까지 간다!” 

   “너와 나 오래 싸우게 될 거야.”

  그 후 오로지 염소 세 마리를 팔아 산 망치와 정으로 돌산과 싸운다. 90미터 돌산을 다 허물기까지 26살 청춘은 48살 장년이 되었다. 9미터, 길이 110미터의 길을 내는데 22년이 걸렸다. 산이 오지 않으면 내가 간다는 마호메트, 아니 우공이산을 실천한 오지의 사랑꾼, 다슈라트 만지히의 실제 이야기에 숙연해진다.

  이제 4,5킬로만 걸으면 사람들은 문화시설을 만난다. 60킬로나 되던 학교 병원 시장도 가까워졌다. 실족사 위험도 사라졌으니 사람들 감격이 오죽하랴!

  한 자루 펜과의 싸움도 돌산 넘기였을까? 지난 9년을 아들은 오로지 펜 한 자루를 등불 삼았다. 그 동안 이 곳에서 잠을 설친 부친보다도 본인의 고뇌는 짐작도 어려울 일이다. 다행히도 201776, 우리 부부는 런던유씨엘(University College of Londun)졸업식에 초대를 받았다.

   “부모님, 졸업식에 오실 수 있어요?”

  그런데 대답이 어려웠다. 때 마침 시작한 일 때문이기도 했다.

  9년 전 아들이 떠날 때, 한 이태 후면 만나겠지, 싶었다. 그런데 펜과의 싸움은 녹녹하지 않았다. 돌산 쌓기처럼 힘겨워 보였다.

  본인의 적은 저축액도 결핍의 그림자였을 것이다. 미숙한 영어 또한 발목을 잡았을 것이다. 사회학에서 보건경제학으로 바꾸기까지 추락과 실족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세인트 엔드류스와 요크주립대학교 등에서 두 번의 석사를 마친 후, 곧 취업할 줄 알았다.

  2011, 며느리의 출산 뒷바라지를 위해 도착한 요크에서 청소에 몰두하는 아들을 보았다. 폭풍의 도시답게 바람 찬 요크의 3, 아들은 청소기를 든 채 땀을 뚝뚝 흘렸다. 어미도 왠지 가슴이 마구 뛰었다.

   “아들, 왜 이렇게 깨끗이 청소해?” 물었다.

   “인터뷰를 해요.”

   “런던으로 가야 하는 것 아냐?”

   “아뇨, 화상통화로 해요.”

  직접 대화도 어려울 박사인터뷰를 화상으로 하다니! 시험관과 통화하는 한 시간 내내 어미의 무릎이 절로 꺾였다. 아들의 공부방 밖에서 긴 눈물의 기도를 올렸다.

   “신이여, 자비를 베푸소서. 신이여, 평화를 주소서.”

  생애 가장 길었던 한 시간이었으리라. 국내취업시장은? 해외에서의 취업은? 인터뷰에 떨어지면 빈손으로 귀국할 아들의 형편에 눈물이 앞을 가렸다. 누가 그랬나? 행복은 내 것이 아니어도 불행은 다 내 것이라고. 유학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여겼었다. 무심했던 일들은 꼭 발목을 잡았던가?

  2009, 아들이 외국은행에 사표를 냈을 때 내심 두려웠다. 청년들이 선호하는 직장이기도 하여 아까운 마음도 있었다. 한 해 전 결혼한 가장이니 그 마음이 어떠했으랴! 대양을 향해 떠나려는 조각배인 양 아들의 등이 비장해 보였다. 혹시 어미의 오랜 직장 생활로 가방 끈을 길게 한 건 아닐까? 공항의 이별이라더니 온갖 상념으로 아득한 공항대합실에서 눈물만이 앞을 가렸다.

  이후 9, 아니 논문 통과까지 56개월, 참으로 지루한 시간이었다. 더러는 학위를 끝내기도 전에 탈진한 사람 이야기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잠자다가 어찌 되었다는 유학생 이야기도 상처로 돌아왔다. 부모형제는 또 얼마나 애를 태웠을 것인가. 이가 빠지도록 공들인 통계자료를 한 순간에 잃고 다시 시작한다는 유학생 이야기도 아프게 저몄다. 밥을 풀 때도 길을 걸을 때도 묵주를 놓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지혜로운 며느리 덕분에 마음이 조금 놓였지만 걱정은 끝없이 이어졌다.

  2,3년 전 아들이 1차 심사인 바이바를 통과했을 때였다. 부친과 나는 곧 학위가 나오는 줄 알았다. 그러고도 2년을 더 연구할 때는 이 길이 과연 맞는 길인가, 수없이 의문이 들었다. 드디어 논문 제출 후 감감무소식 6개월은 끝내 아들이 실족하는 줄만 알았다.

  이후가 더 문제였다. 아들에게 부정맥이 생겼다. 칼날 같은 시험관 눈초리에 답을 더듬거렸을 터였다. 두 세 시간 송곳질문 앞에서 실력 발휘를 못한 게 그리 되었지 싶었다. 내 심장도 부정맥인 양 벌렁거렸다. 다행히도 한의원 처방전이 희망을 주었다. 내 젊은 날부터 건강을 지켜준 한의원은 온 식구들의 주치의나 다름없었다. 그 분 손은 언제나 명약이려니, 해외 속달로 한약을 부치고는 보이스톡으로 전했다.

   “아들아, 건강이 우선이야. 쉬엄쉬엄 해.”

  사실 삶의 포물선 같은 젊은 날, 심혼을 바친 정점이 흐트러진다면 어이 감당하랴! 학위 도중인데도 이방인을 기꺼이 채용했던 교수님의 격려와 동료들에게도 대한민국의 청년모습을 꼭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 동안 아들의 연구논문이 국제저널에 여러 편 소개되었다. 주 저자 혹은 공동저자로 발표된 논문들은 인류의료복지에 기여할 것이다. 에이즈로 고통하는 아프리카 사람들에게는 경제지원을 꿈꾸게 하고, 난민들에게는 후생과 의료복지를 도모할 것이다. 염소 세 마리로 돌산을 허문 만지히처럼, 펜 한 자루로 돌산을 넘은 아들에게 파이팅을 외쳤다. ‘한번 잡으면 끝까지 간’ <<마운틴 맨>>처럼 사랑꾼 만지히의 말로 대신 전해본다.

   “그렇게 힘이 세?”

   “신에게 의지 하지 마라.” 그래. “좋다! 멋지다, 최고다!”

 

 

            ( 마음의 양식, <<행복의 나라로>> 국방부,2018.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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