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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추죽    
글쓴이 : 오길순    18-11-12 09:36    조회 : 5,714

                              

                                            부추죽

 

                                                                              오길순

   “이거 드시고 벌떡 일어나십쇼

  홍합을 넣어 쑨 부추죽을 내놓으며 축원처럼 말했다. 죽이라면 전복죽도 심드렁한 남편에게 벌떡이라는 말이 작용한 것일까? 맛있게도 들었다. 얼마 전 대상포진을 앓아온 그도 어쩌면 보양식이 그리웠을 것이다.

  부추는 오색식물이다. 흰 줄기, 노란 싹, 파란 잎, 붉은 뿌리, 검은 씨앗이 슈퍼푸드의 영양을 두루 갖췄다. 고대 서양에서는 전장에 부추를 가져갔다고 한다. 상처에 부추즙이 약이 된다고 믿은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웨일즈에서는 군모에 부추를 달고 나라꽃 국화로 삼았다. 성악가이기도 했던 네로가 부추로 목을 가다듬었다는 일화는 오색식물의 남다른 효능일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쯤이었다. 하루거리가 유행했다. 왜소한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 하루걸러 짚단낟가리에 몸을 묻고 해바라기를 해야 했다. 펄펄 끓는 삼복인데도 학질의 한기를 견딜 수 없었다.

  그 때 부추죽이 생기를 주었다. 엄마가 죽에 굵은 소금 몇 알만 넣었는데도 소태 같던 입맛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 식생활이 궁하던 차에 게 눈 감추듯 먹은 초록색 덕분인가. 희고도 부드러운 감자의 면역력 때문인가. 한기로 휘적거리던 고개가 조금씩 생기를 찾았던 것 같다.

  섹스피어는 <한 여름 밤의 꿈>에서 이성을 마비시키는 매혹적인 눈매를 부추 눈매라 했다. 여섯 잎 푸르도록 하얀 작은 꽃이 치명적인 상상을 주었나 보다. 한 여름날, 흰 눈이 내린 듯한 부추 꽃 밭두렁을 걸으면 온갖 나비들이 놀고 있다. 좁쌀만 한 부추꽃향기에 이성이 얼얼하도록 마비되었는지 꽃 속을 정신없이 날았다.

  천국문지기 베드로는 지옥의 어머니에게 부추줄기를 내려주었다. 어머니가 이승에서 거지에게 베푼 것은 부추 한 올 뿐이었던 때문이다. 그래서 실현될 수 없는 희망이 부추의 상징이란다. 꽃말인 무한한 슬픔처럼 신의 명령을 진정으로 실천한 부추 한 올 때문에, 베드로는 지금도 어머니를 구하지 못한 슬픔 속에 빠져 있을 것만 같다.

   부추는 기양초, 파옥초라는 익살스런 이름도 있다. ()대신 구채(?菜)로 쓰지만 구근(?根), (?), (), 편채자(扁菜子), 구채자(?采子), 난총(蘭?), 월담초, 구자 등 다양한 이름 중 정구지, 솔에 익숙하다. 한 해 일곱 번이나 돋는 부추는 신의 선물 같기만 하다. 김치, , 녹즙으로 담당하는 부추의 식생활이 귀하게만 여겨진다. 봄 부추는 인삼녹용과도 바꾸지 않는다니 겨울을 이겨낸 생명의 근기 때문일 것이다. 위장병이나 면역력 향상에 좋은 감자와는 단짝 친구이니 맛 또한 찰떡궁합이다.

   “안젤라, 부추 따러 와.”

  오늘도 이웃이 부른다. 10년 단짝처럼 지내온 그와는 취미도 비슷해서 끊임없이 이야기가 샘솟는다. 봄이면 산마을 쑥을 캐고, 여름이면 원추리 숲을 만났다. 가을이면 단풍 산을 오르고, 겨울이면 눈길을 걸었다. 동네노인회여행을 갈라치면 그는 벌써 내게 안내자가 되었다. 시장도 바자회도 성당도 동행하는 그가 있어 한 10년 타향인 줄도 잊고 살았다. 길을 나설 때마다 지란지교의 우정이 이럴까, 서로가 웃으면서 묻곤 한다.

  그의 뒤란에는 뒷산향기만 먹고도 잘 자란 식물들이 너부러져 있다. 지난 30년 동안 거름한 번 준 적 없이 그저 땅심만으로 자란 것들이니, 흔히 무공해작물이다. 봄에는 영춘화 산도화가 피고 여름이면 능소화 상사화가 만발했다. 10여 미터 탱자나무 울타리 아래 과꽃이며 분꽃이며 채송화가 반길 때면 그 곳에 오래 머물고 싶어진다. 꽈리 나리 더덕 등도 피고 지는 숨어 있는 정원에서 온갖 채소와 꽃들을 보면 그 조화로움이 경외스럽다. 특히 가을이면 새들이 먹고 남긴 홍시감이 발길에 툭툭 밟힌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산 밑에서 쉼 없이 피고 지는 작물 들. 그 중에 일곱 번이나 제 몸을 베어주어 인간을 이롭게 하는 부추들.

  지난 밤 고라니가 쉬어갔다는 다래넝쿨 아래서 그와 매실차 한 잔을 나누노라니, 떡갈나무 숲 속에서 원시인이 엿볼 것만 같아 가슴이 서늘해진다. ‘땅심만 먹고도 잘 자란 우정의 부추죽으로 남편도 벌떡 일어나지 싶다  

 

 

                        (마음의 양식 <<행복의 나라로>>,국방부.2018.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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