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작고 따뜻한 존재로의 여행'
조금 남은 기차 시간을 두고 역전 가판에서 고른 책이다. 보는 순간 얼른 집어든 것은 저 한 줄의 제목 때문이었다. 날 여기까지 불러낸 게 혹시 너였니 싶은 호기심과, 어쩌면 여행을 떠나는 우리와 그 날에다 운명 같은 필연도 좀 꿰어 맞추고 싶었을 것이다.
개찰구를 통과한 사람들은 상기한 얼굴로 서성거렸고, 그 틈에 끼어 있던 우리도 막 플랫폼 안으로 들어서는 기차를 보는 순간엔 조금 두렵기까지 했던 것 같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짐을 풀고 앉던 의자 밑 발판에 두 발을 얹고야 조금씩 편안해질 때, 잠깐 두고 온 사람들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숨 한번 몰아쉬며 호흡을 고른 기차는 순식간에 다시 푸른 들판으로 달려나갔다. 일렁이는 초록빛과 무한 공간의 하늘로 우리도 풍덩 뛰어들었다. 흥분과 설렘에서 깨어날 때마다 도시의 간판들이 바뀌고 마침내 입고 있던 겉치레의 옷도 벗어버렸다. 집에서 잠시 멀어지는 대신 앞에서 열리는 세상 속에 이미 우리는 바람이고 구름일 뿐이었다.
얼마를 달렸을까. 갑자기 우린 내릴 곳을 바꾸고 싶어졌다. 그저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고 싶었다. 이 얼마나 즐겁고 신기한 일인가. 직장에서든 집에서든 아니면 내 안에서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세상이려니, 삶의 굴레라는 게 늘 그렇지 않은가.
낯선 도시의 허름한 정류장에 햇볕을 등지고 앉아 있자니 자꾸 웃음이 났다. 발장난도 해 가며 힐끔거리며 이방인이란 생각을 조금씩 털어 내던 우리 앞에 정말 꿈꾸던 풍경처럼 작고 아름다운 길들이 하나씩 열리는 느낌이었다.
구불거리는 산길을 돌아 찾아간 주말의 산사(山寺)란 생각만큼 고요하지 않다. 그래도 향내 묻은 절에 취해 말을 삼가고 잠시 거니는데 대웅전 옆 생강나무 잎들이 반짝거렸다. 저 생강나무에선 정말 생강 냄새가 날까. 부처의 말씀이 은근히 맵게 스민 건 아닐까 실없는 상상으로 웃으며 잎 하나를 떼어 혀끝에 댄다. 매운 맛 대신 묻어나던 향내를 털며 뒷길로 돌아가 더 높은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루가 다 저문 밤에도 우리의 여정은 계속 되었으며 남은 것은 꿈으로도 이어졌으리. 안개에 가라앉은 시골의 새벽녘은 참 아름답다. 그 새벽에 묻어오는 고요한 생각들이 좋다. 도시에서 태어난 사람에게도 시골은 왜 늘 고향 같을까.
기운 담 밑의 소박한 꽃들, 이방인의 냄새를 알아 챈 개들의 거친 숨소리, 논밭 사이의 가르마 같은 길, 막 잠에서 깨어난 사람들의 순박한 냄새 이런 것들 때문일까. 자연과 닮았기에 자주 안기고 싶은 걸까. 오랜 세월 힘들다 말이 없는 저 커다란 느티나무의 우거진 잎들 사이로 햇빛 한 줄기가 눈부시게 떨어졌다.
아! 아침은 놓을 수 없는 희망처럼 온다. 어제와 같은 오늘인데도 늘 새로운 기운을 싣고 와 우리에게 나눠주며 용기를 북돋운다. 가게 앞에서 마신 자판 커피가 유난히 달콤했던 걸 보면 그 날 아침도 우리에겐 분명 또 한번의 희망이었을 것이다.
한낮으로 갈수록 너무 뜨거워 그을린 피부에 가벼운 호들갑이지만 사실 그게 뭐 그리 대수일까. 차라리 먼지 나는 길 위를 걸으며 주운 생각들이 삶의 헤진 곳을 다시 깁고 꿰매어 고운 무늬의 추억 한 필로 잘 짜여지길 바랄 뿐이다.
덜컹대는 기차의 연결 통로에 부대껴 오면서 몸은 피곤해도 마음은 아주 편안했다. 행복을 찾기 위해 집을 떠나는 어리석음이여, 짧은 하룻밤 새의 아주 작은 깨달음이여!
어느 곳에든 길은 홀로 외로운 듯 놓여 있지만 자신을 밟고 가는 나그네를 항상 기다리기에 쓸쓸하지 않다. 사람도 어쩌면 혼자인 것이다. 그러나 그 혼자라는 것의 진정한 이해야말로 더불어 함께 할 수 있는 온전한 저력임을 저 길이 내게 가르쳐 주었다. 그러니 내 삶의 풍경이 뿌옇게 흐려질 때마다 나는 또 길 떠나리라. /
<월간 에세이 2003. 11월호(등단작) >